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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초단편소설,들 13] 행성 탐사 대원 A씨는 왜 검열 삭제 대상이 되었나

등록 2020-12-29 18:34수정 2020-12-29 19:01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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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기 : <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10월7일 정부는 임신 주수와 사유에 따라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한 낙태죄 개정안을 내놓았다. 바로 다음날인 10월8일 오후 에스엔에스(SNS)에 하나의 해시태그가 올라왔다.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전혜진 작가가 제안하고, 문녹주 작가가 해시태그를 만든 뒤 지금까지 20명 가까이 되는 작가가 임신중지와 그 권리를 다룬 초단편 소설을 써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와 에스엔에스 개인 계정 등에 올렸다. 같은 주제를 다채롭게 엮어낸 소설들을 작가들의 동의를 얻어 <한겨레> 낙태죄 폐지 특별 페이지에 싣는다.

※ 작품을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행성 탐사 대원 A씨는 왜 검열 삭제 대상이 되었나

코코아드림

10/xx/20xx

PLENET HTRAE - 365 기준 23:11 녹음 시작.

대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일하는 HTRAE-365 우주 탐사대원 긴급 구조 서비스 센터입니다. 전화하신 분의 성명과 소속, 체류 중인 행성을 밝혀주신 뒤 용건을 얘기해주세요. 상담원의 통화는 행성 간 거리에 따라 최소 10분에서 최대 1일 후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A 저는 DINB-666 행성 202.01.0.11 좌표에서 암석 채집 및 연구 일을 하고 있는 연구원 [검열삭제/ 편의상 A로 호칭] 입니다. 어.... 제가 조금 큰 문제에 마주하게 되었어요. 아주, 아주 큰 문제요.

무슨 일이시죠? 저희 긴급 구조 서비스 센터는 행성 내에서 치료할 수 없는 부상의 경우 우주탐사진료협회와 연계하여 해당 행성으로 전문의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우주선 고장 문제라면 각 행성마다 거주하고 있는 전문 수리공들에게 연락해 파견하는 서비스를 제공 중입니다. 어떤 큰 문제이신지 말씀을 해주시면 그에 따른 조치를 즉각 취해드리겠습니다.

A 아, 신이시여. 드디어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만세!

선생님?

A 질질 끌 것도 없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제가.... 임신을 한 것 같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A 저기요?

어.... 축하드립니다?

A 아뇨, 이건 축하받을 일이 아니에요. 당장 저의 사활에 대한 문제라고요, 아시겠어요? ...죄송해요, 제가 지금 상황이 영 아닌지라 예민해져서 날을 세웠네요.

실례가 아니라면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말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그래요, 그래도 이 행성의 사람들보단 당신이 더 잘 통하는 것 같네요. (한숨) 저는 이 행성에 도착한 지 2년 반이 지났고 거주 1년이 지났을 무렵 [검열 삭제/ 본인의 요청, 편의상 B로 호칭]와 연인 관계가 되었어요. 그 이는 굉장히 자상했고 매너가 좋았죠. 그래서 저는 조금 안심했는지도 몰라요. 이번에는 콘돔 없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면 확실히 마음을 놨던게 틀림 없었고 지금 생각해도 제가 너무 안일했어요, 시발!

선생님,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주세요. 진정하시고, 구체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뱃속의 아이를 지우고 싶어요. 낙태 허가서를 발급해주세요.

(침묵)

A (한숨) 그래요, 내가 개소리 한다고 여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난 진지해요. 차라리 나도 내가 술에 취해 농담하는 거였으면 좋겠다고요!

선생님, 굳이 낙태를 해야 하실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겁니다. 선생님 뱃속의 아이도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에요.

A 시발, 지금 장난해요? 내가 그런 말 하나 듣자고 비싼 행성 간 통화 비용을 내면서 전화를 건 줄 알아요? 왜 모두들 내 생각은 하지도 않는 거죠? 그래요, 말 나온 김에 제 사정을 조금 더 털어놔보죠. 이 행성에는 강력한 방사능이 존재해요. 우리가 나고 살던 그 행성에서 쓰는 방사능이 아니라 서서히 신체 기능을 무너트리는 특수한 방사능이요. 저는 그 방사능이 덕지덕지 묻은 행성의 암석을 채집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 강력한 방사능은 취급주의 품목이라 행성 복귀 후에도 특수 처리된 격리실에서 특수 제조된 약을 먹으며 방사능 성분 제거 후 사회에 나설 수 있고요. 이게 무슨 소린지 아세요? 내 신체 기능은 이미 특수 방사능에 절어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요. 그런데 여기서 애를 낳으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요? 그래요, 당신 말마따나 이 소중한 생명 하나 지키려고 필요하다면 우주항공우편으로 제 몸 상태에 대한 진단서를 떼서 보내줄 수도 있어요. 물론 그 우편물이 도착할 때 쯤에는 몇 주가 훌쩍 지나있겠지만요, 시발!

선생님, 그러면 일단 최대한 빠른 우주항공편으로 복귀를 하신 뒤 아이를 출산하시는 것을....

A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출산으로 해결될 문제면 이렇게 전화도 안 했겠죠! 지금 이 곳의 의사 말로는 아이가 14주차에 들어섰대요. 이곳에서 복귀 항공편은 반년에 한 대씩 뜨는데 일주일 전, 그러니까 내가 임신한 걸 안 그 날에 떠서 날아갔다고요! (울먹이는 소리) 저기요, 제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살고 싶다고요,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나는 무조건 죽거나 몸이 무너지는게 거의 확정인 사람이에요. 복귀를 생각 안 해봤겠어요? 오죽했으면 우편만 전달해주고 가는 무인 우주항공선에 몰래 탑승하는 것까지 생각해봤다니까요? 허가서 하나만 발급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젠데?

...저희가 낙태 허가서를 발급해 드리려면 일단 발급에 드는 비용과 아이의 보호자, 그러니까 아버지 되는 분의 동의서를 제출해 주셔야 하고요.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실 것인지, 실제 본인이 임신을 하신 것인지에 대한 진단서가 필요합니다. 해당 비용에 대해서는 낙태 자체가 보험처리 불가한 내용이라 자비로 부담을 하셔야 하는 점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고요, 일단 그 B 라는 분은 이 사실을 아시는지....

A 알죠, 너무 잘 알아서 의사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있는 돈 다 털어서 일주일 전에 항공편을 타고 도망갔는걸! 그 새끼가 여기 있었으면 적어도 여기서 이렇게 혼자 일을 해결하려 들지는 않았겠죠!

(장시간의 침묵)

A ...저기요. (한숨) ...보내라는 서류도 다 보낼 수 있고 필요한 돈도 다 지불할 수 있으니까 허가서 하나만 좀 보내줘요. 많은 거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나도 살고 싶어요. 내 몸인데 내가 선택할 권리조차 없는 거에요? 이 곳의 의사도, B도, 당신도 정말.... 이제는 무책임한 건지 어쩐건지 감도 안 오네요. 평생 같이할 것처럼 굴던 B는 도망가고, 의사는 낙태의 ㄴ 자만 꺼내도 살인마 취급하고 그쪽은 그나마 말이 통하는 줄 알았더니....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

A ...제가 같은 말을 더 반복해야 할까요?

(타자 치는 소리) 선생님, 그러면 일단.... 제가 낙태 허가서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절차가 복잡한 건데, 이번만 몰래 해드리는 걸로 처리하겠습니다. 원래 이러면 안되는데 특별히 도와드리는 겁니다, 아시겠죠?

A ...예, 아주 감사해서 눈물이 다 나네요.

현재 태아의 주 수와 성함, 그리고 수술하실 병원 명 알려주세요.

A ...제 이름은 A, 태아는 지금 15주 차가 되었고 병원은....

잠시만요. 15주요?

A 네, 알았을 때 14주였으니 15주가 맞죠.

음.... 죄송합니다. 발급이 어려우실 것 같네요. 원칙적으로 14주를 초과한 태아는 낙태가 불가능합니다.

A ...무슨 소리에요, 나는 지난 주에서야 알았는데? 그리고 방금 전까지 도와준다면서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주 공동 특례법에 의거하여 14주를 초과한 태아는 낙태가 불가능합니다. 만일 낙태 시도시 특례법이 적용되어 해당 행성 내 처벌 규정에 따라 징역 혹은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낙태 가능 주수를 넘긴 태아를 낙태하려 시도할 시 공동 특례법에 따라 선생님의 정보를 다른 행성 및 현재 거주하고 계신 행성의 모든 병원에 전달해야 해서 통화 종료 후 일괄적으로 정보가 전달될 예정인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낙태의 반복적 시도를 막으려는 절차이니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침묵)

선생님, 몸이 안 좋으신 것도 알겠고 급하신 것도 알겠는데 생각을 다시 한번만 바꿔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저도 업무를 마친 직후에는 힘이 들지만 저희 집에 있는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희망을 얻는답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축복을 저버리려 하지 마세요. 법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정말 죽을 만큼 힘들어도 아이의 얼굴을 보게 되면 모든 고통이 싹 가시는 기분일겁니다. 저희 와이프의 말로는 그렇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 순간을 기회 삼아 지금 가지고 계신 마음을 고쳐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상담원으로써 해드리는 말이 아니라 두 아이의 아빠로서 제가 해드리는 말입니다, 아시겠죠?

A 시발, 차라리 지금 죽고 말지.

...선생님? 선생님, 그게 무슨 소리신가요? 선생님?

10/oo/20xx

PLENET HTRAE - 365 기준 00:41 녹음 종료.

1차 수정 - 우주 공동 특례법에 의거 연구원 [검열 삭제] 기록 말소.

2차 수정 - 관련 사건 조사 후 당사자의 녹취록 내 언급 삭제 요청 승인 - [검열삭제]로 표기

<끝>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참여 작가 코코아드림

※ <한겨레>는 작가의 동의를 얻어 작품을 게재합니다. 해당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발췌 및 전재를 금합니다.

바로가기: <한겨레> 특별페이지 ‘낙태죄 폐지’ https://www.hani.co.kr/arti/delete

바로가기 :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 #낙태죄_전면폐지_2000자_엽편_릴레이 셀렉션 https://britg.kr/novel-selection/125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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