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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최고의 안주는 이 여름날이 아닌가!

등록 2021-07-29 04:59수정 2021-09-27 22:40

권은중의 화이트
짜고 매운 한식엔 화이트가 찰떡
가격도 합리적이라 데일리로 최적
권은중 제공
권은중 제공

와인이 주류 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과 홈술의 증가 때문이다. 수요가 늘어난 만큼 소비자들은 정보에 목마르다. 권은중 음식평론가와 임승수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저자가 4주에 한번 화이트&레드 콘셉트로 화이트·레드와인 그리고 이에 어울리는 안주를 추천한다. 첫회는 일반적인 각 와인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20년 전쯤 프랑스 보르도의 와이너리를 갈 기회가 있었다. 보르도는 고대 로마 때 깔아놓은 도로가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로 고색창연했다. 그곳에서 중세 연회를 재연한다는 전통 레스토랑에 갔었다. 중세 연회의 특징은 온갖 고기를 구워 산처럼 수북이 쌓아 놓고 며칠 동안 먹고 마시는 것이다. 고기를 먹는 것으로 신분을 과시하던 때였다.

그 레스토랑은 중세 때 썼을 법한 화덕과 풀무 등을 이용해 고기를 끊임없이 구워 고객에게 잘라 주었다. 그렇지만 고기를 즐기지 않던 나는 “이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레드 와인(이하 레드)을 마시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비슷한 경험을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도 했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지역의 음식은 프랑스와 비슷하다. 눅진한 소스에 온갖 고기를 즐겨 먹는다. 이 지역의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도 특이하다. 구운 소갈비와 돼지고기를 갈아서 속을 채운 고유의 라비올리(아뇰로티라고 부른다)를 소뼈 육수를 조려 만든 소스와 함께 먹는다. 이곳에서 ‘타닌의 채찍’으로 불리는 네비올로를 마시는 것은 당연했다. 이처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 음식은 술을 규정한다.

한국 음식은 추운 날씨에 대비해 발효와 절임 음식이 발달해 맛이 풍부하다. 그래서 음식이 짜고 맵다. 이런 음식에는 막걸리, 청주, 소주와 같은 단 술이 어울린다. 그렇다면 와인과 한식의 궁합은 어떨까? 불고기나 삼겹살 같은 고기 요리는 진판델이나 피노 누아르 같은 레드가 어울리기도 하지만 뜨거운 찌개와 매운 양념은 종종 레드와 충돌한다.

반면 화이트 와인(화이트)은 구운 고기를 제외한 한식과 대체로 잘 어울린다. 상큼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나 드라이한 리슬링은 한식과 궁합이 좋다. 특히 스파클링 와인은 떡볶이·순대와도 잘 맞는다. 내가 데일리 와인으로 화이트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다.

가격 또한 훌륭하다. 레드의 하이엔드급은 수백만원을 호가하지만 화이트는 10만원대면 접근할 수 있다. 또 미국 대통령이나 유명 팝가수도 즐긴다는 화이트 가운데 몇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게 적지 않다.

이런 멋진 신세계로 나를 인도한 화이트는 뉴질랜드 말버러의 소비뇽 블랑이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클라우디 베이를 비롯해 많은 와인을 마셔보았는데 거의 실패가 없었다. 그러다 ‘생 클레어 비카스 초이스 소비뇽 블랑 스파클링’(Saint Clair Vicar’s Choice Sauvignon Blanc Bubbles)을 알게 되었다.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스파클링은 처음이었는데, 2만원대인 이 와인은 두 와인의 장점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상큼한 향과 맛에 상쾌함까지 갖춘 이 와인은 집에 있는 냉동 피자와도 어울리는 마성의 친화력을 지녔다. 그저 냉장고에 뒹굴고 있는 채소와 과일, 치즈 어떤 것으로든 안주를 만들어도 근사한 파티의 기분을 낼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와인의 최고 안주는 한여름의 날씨다. 아주 차갑게 해 마시면 라임과 레몬그라스의 맛이 나는 이 와인은 여름 해질녘과 잘 어울린다. 1년 중 낮이 가장 길어 황혼이 아름다운 이때, 이 와인은 사람의 마음을 한껏 고양해준다.

권은중(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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