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테린과 샤또 딸보 까이유 블랑. 권은중 제공
와인을 즐기다보면 지인들끼리 모여 블라인드 테스트나 루프트탑 파티 같이 재미있는 행사를 한다. 음식 페어링도 그중의 하나다. 이달 초 한 동호인 모임에서 퓨전 닭꼬치집에서 페어링 내기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동호인 5명이 닭꼬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한병씩 가져와서 겨뤄보자는 것이었다.
승부욕이 솟아 <뉴욕타임스> 같은 외국 언론들의 닭꼬치와 와인 페어링에 대한 기사를 쭉 검색해봤다. 미국 뉴욕 등 주요 도시의 일본 닭꼬치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도 살피기도 했다. 화이트 와인 신봉자인 나는 최강의 화이트를 가져가겠다고 큰소리를 쳐놓은 터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닭꼬치와 어울리는 화이트는 대체로 독일 리슬링, 프랑스·미국 샤르도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스파클링으로 압축됐다. 리슬링·샤르도네는 선택의 폭이 워낙 넓어 건너뛰었고 스파클링은 뭔가 정정당당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스파클링은 분명 닭꼬치의 간장·된장 양념과도 100% 어울릴 것이 뻔했다.
고심 끝에 고른 것은 샤또 딸보의 까이유 블랑이었다. 샤또 딸보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이 이곳 레드를 좋아해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 보르도의 와이너리다. ‘털보’같이 친근한 우리말을 떠올리게 하는 샤또 이름은 1453년 100년 전쟁 막바지에 보르도에서 전사한 영국의 유명한 장군 존 탈보트에서 유래했다. 프랑스 와인에 적장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100년전쟁 이전부터 영국인들이 보르도 와인을 주로 소비했기 때문이다.
딸보의 포도밭은 자갈지대다. 그래서 화이트인 까이유 블랑(프랑스말로 흰 돌이란 뜻)도 힘차다. 70~80%가 섬세한 소비뇽 블랑으로 만드는데도 단단함이 느껴진다. 거기에 프랑스산 오크통에서 향을 얻기 위해 통 속을 금속 막대로 저어주는 작업(바투 나죠)을 한다. 이는 프랑스 부르고뉴 샤르도네 제조법으로 바닐라·향신료 향을 와인에 입히기 위한 과정이다. 보르도의 샤또 딸보는 1930년대부터 드라이한 화이트를 만들기 위해 경쟁 지역인 부르고뉴의 방법까지 적극 도입한 것이다. 영국 장군의 이름에, 부르고뉴 양조술까지 끌어들인 이 와인 스토리는 국경을 뛰어넘는 퓨전 닭꼬치와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날 간 닭꼬치 집은 짚불을 태워 향을 입히거나 트러플 소스를 이용하는 등 강한 풍미가 특징이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까이유 블랑은 퓨전식 닭꼬치와는 완벽하게 맞지 않았다. 특히 고추나 간장을 많이 쓴 동양식 닭꼬치와 마시면 금속성 맛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처음 나온 닭테린(고기를 굳혀 차갑게 먹는 전채 요리)이나 마지막의 트러플 소스를 얹은 구운 닭요리와는 잘 어울렸다. 소비뇽 블랑의 발랄함과 오크 숙성의 바닐라·허브향이 닭살의 잔 맛을 향긋하게 마무리해 줬다.
결국, 내가 가져간 샤또 딸보의 화이트는 페어링 내기에서 스파클링은 물론 이탈리아 레드에게도 졌다. 단단한 오스트리아 리슬링이나 향긋한 프랑스 게뷔르츠트라미너를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드라이한 화이트가 귀한 보르도 지방에서 고유의 품종을 최선의 양조법으로 빚어낸 까이유 블랑이 내기에 진 게 아쉽지만은 않았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