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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서울은 푸르다…겸재·성종 흔적 따라 걷는 도심 속 숲길

등록 2021-08-20 10:20수정 2021-08-20 13:43

서울 양천로·선정릉 숲길 여행
겸재 정선 그림 탄생한 숨은 명소
조선 왕릉 돌아보는 고즈넉한 길
도심서 역사·문화 오롯이 느끼기
서울 강남 도심 한복판에 있는 선정릉은 도시인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이다. 허윤희 기자
서울 강남 도심 한복판에 있는 선정릉은 도시인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이다. 허윤희 기자

코로나 시대의 두번째 여름이 가고 있다. 올해 여름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콕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 그래도 마음 한구석 꿈틀대는 여행 욕구를 누를 수 없다. ‘아, 어디로든 떠나야지’ 하루에도 몇번이나 마음이 요동친다. 하지만 떠날 곳도 마땅치 않다. 이럴 때 도심에서 해결하는 것도 한 방법. 서울의 한적한 숲속으로 걷기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난 15일,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도보해설관광 코스(현재 코로나19로 인해 44개 코스 중 34개만 운영) 가운데 ‘양천로 겸재 정선’, ‘선정릉’ 두곳을 다녀왔다. 두 코스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여유 있게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숲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궁산 근린공원에 있는 소악루.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렸던 장소이다. 사진 허윤희 기자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궁산 근린공원에 있는 소악루.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렸던 장소이다. 사진 허윤희 기자

소악루에서 본 한강 풍경. 사진 허윤희 기자
소악루에서 본 한강 풍경. 사진 허윤희 기자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궁산 땅굴의 내부 모습. 사진 허윤희 기자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궁산 땅굴의 내부 모습. 사진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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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한양 풍경을 상상하며

서울 강서구 가양동 ‘양천로 겸재 정선’ 코스는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산책길이다. 겸재 정선과 양천의 인연은 꽤 깊다. 겸재 정선이 1740년부터 1745년까지 5년간 양천 현령(현재 강서구청장)을 지내면서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등의 작품을 남겼다.

‘양천로 겸재 정선’ 코스는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 앞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서울관광재단의 서울도보해설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배정받은 배정희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났다. 배 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자칫 지나칠 뻔한, 지하철 출구 앞에 있는 하마비를 보았다. 하마비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뜻의 비석이다. 태종 13년(1413년)에 종묘나 대궐 앞에 세워졌으나, 이후 향교 앞에도 이 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성현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의미다.

하마비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양천향교가 있다.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다. 향교는 교육 문화의 산실이었던 곳으로, 현재는 예절 교육, 다도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향교에서 나와 골목을 지나면 2009년 4월에 문을 연 겸재정선미술관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겸재의 <총석정>, <청풍계도>, <산수도>, <청하성읍도> 등 원화 23점이 전시돼 있다. 겸재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곳을 지나치지 말기를.

겸재정선미술관 맞은편에는 궁산 땅굴 역사전시관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궁산 땅굴은 높이 2.7m, 너비 2.2m, 길이 68m에 이른다. 지금은 낙석 위험이 있어 땅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입구만 볼 수 있다. 배 해설사는 “궁산 땅굴은 2008년 인근 주민들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며 “일제 때 무기나 탄약 등 군수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 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양천로 겸재 정선 코스의 백미는 숲길이다. 겸재정선미술관과 궁산 땅굴 근처에 있는 궁산 근린공원에 들어서면 녹색길이 이어진다. 높이 76m의 나지막한 궁산에는 산책하기 좋은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동네 주민들만 오가는 조용한 공원이라 도보 여행지로 제격이다. 작은 공원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 많다. 특히 공원 서쪽에 있는 정자 소악루는 최고의 한강 전망대다. 이곳에 가면 한강과 북한산, 인왕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300년 전 겸재는 소악루에서 한양과 한강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소악루 안쪽 해설판에는 겸재가 양천 현령으로 일할 때 소악루에서 그린 <안현석봉>, <소악후월>에 관한 내용이 쓰여 있다. 고층 빌딩, 아파트가 없는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당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과거의 풍경을 상상하고 현재로 돌아와 한강을 보며 ‘물멍’에 빠졌다.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잊게 해줬다.

양천로 겸재 정선 코스 9호선 양천향교역 1번 출구→하마비→양천현아지→양천향교→겸재정선미술관→궁산 땅굴 전시관→궁산 산책로→양천고성지→성황사→소악루→겸재정선미술관

선정릉의 왕릉으로 향하는 관람객들. 사진 허윤희 기자
선정릉의 왕릉으로 향하는 관람객들. 사진 허윤희 기자

관람객들이 선정릉의 숲길을 걷고 있다. 사진 허윤희 기자
관람객들이 선정릉의 숲길을 걷고 있다. 사진 허윤희 기자

선정릉에 있는 조선 제9대 성종의 능. 사진 허윤희 기자
선정릉에 있는 조선 제9대 성종의 능. 사진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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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숲속

서울 강남 도심 한복판에 숲이 있다. 선정릉 코스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서 나와 빌딩을 지나면 만나는 청량한 녹색 지대다. 이 코스는 선릉과 정릉으로 나뉘는데 서쪽에는 조선 제9대 성종과 그의 비인 정현왕후의 능(선릉)이 있고, 동쪽에는 이들의 아들인 조선 11대 중종의 능(정릉)이 있다. 이 둘을 합쳐 ‘선정릉’이라 부르며, 세 능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여 ‘삼릉공원’으로도 불린다.

선정릉에 들어서면 도시의 매연에 막힌 코를 뻥 뚫리게 하는 소나무 향을 맡을 수 있다. 왕릉 주변에서 자주 보는 소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선정릉은 도심 한복판에서 산림욕을 즐기기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날 선정릉 코스 해설을 맡은 안경실 문화관광해설사는 “선정릉은 강남 도심의 허파 같은 녹지대이자,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선정릉 코스에서는 조선 왕릉의 배치와 특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왕릉 입구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하는 곳인 재실이 있고, 이곳이 신성한 장소라는 것을 뜻하는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 앞에는 참도라는 돌길이 이어져 있다. 참도는 신이 이용하는 신도와 살아 있는 왕이 걷는 어도로 나누어져 있다. 참도가 끝나는 지점에는 정자각이 있다. 정자각은 향을 올렸던 곳으로 실제로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정자각 뒤편에는 왕릉이 있다. 왕이 잠들어 있는 무덤 주변에는 돌을 깎아 만든 동물 조각이 세워져 있고, 무덤 앞에는 혼유석이라는 넓은 돌이 있다.

안경실 해설사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세운 조선 시대에는 왕릉 조성과 관리에 효와 예를 갖추어 정성을 다했다”며 “왕릉을 만들 때 풍수 사상에 따라 최고의 명당을 선정하고 주변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지도록 조성한 것도 조선 왕릉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세 능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정현왕후릉에 오르면 도시의 고층 빌딩 풍경이 보인다. 수백년간 도시의 개발 속에서도 옛 모습을 간직해온 선정릉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 되는 선정릉의 푸른 빛깔이 더욱 빛나 보인다.

선정릉 코스를 걸으면 왕릉뿐 아니라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 ​선정릉은 숲이 자연림 상태로 울창하게 보존되어 있다. 선정릉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선정릉 재실 앞의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이 500년 된 것으로 선정릉의 역사와 함께했다. 숲길을 걸으면 신나무, 배초향, 금낭화, 때죽나무, 옥잠화, 비비추, 산딸나무, 꼬리조팝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식물 옆에 이름과 특징에 관한 내용을 담은 팻말이 있어 식물 공부 하기에도 좋다.

선정릉 같은 서울의 한적한 길을 걷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서울관광재단에서 운영하는 해설프로그램인 서울도보해설관광 누리집(dobo.visitseoul.net)을 방문해보자. 이 누리집에서 해설 신청을 하면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다양한 코스를 탐방할 수 있다. 경복궁, 창덕궁, 북촌, 청계천, 남산성곽, 몽촌토성, 성균관 등 코스가 있다. 이용료는 무료다. 한번에 최소 1명에서 최대 3명까지 해설 신청을 받는다.

선정릉 코스 선정릉 매표소→재실→선릉 역사문화관→홍살문→정자각→비각→성종릉→정현왕후릉→정릉

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서울 낙산성곽의 야경. 서울관광재단 제공
서울 낙산성곽의 야경. 서울관광재단 제공

역사의 숨결 느끼며 성곽둘레길 한바퀴

한적한 길을 걷고 싶은 도보 여행자들을 위한 길이 있다. 서울 시내 옛 성곽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 낙산성곽과 남산성곽 코스가 그것. 서울도보해설관광(dobo.visitseoul.net) 신청을 하면 문화관광해설사의 전문 해설을 들으며 걸을 수 있다.

낙산성곽 ‘보물 제1호’ 흥인지문에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까지 이어진 낙산성곽 코스는 한양도성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 도성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만나는 낙산공원 전망대에서는 서울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도보 코스: 흥인지문-한양도성 박물관-팔각정-낙산 정상(전망대)-낙산전시관-낙산1길-마로니에공원(소요 시간: 2~3시간)

남산성곽 남산 동쪽 기슭부터 정상까지 이어진 남산성곽 길은 조선 시대 태조 때 만든 석성부터 세종, 숙종 때 지은 성곽까지 다양한 시대별 축성을 볼 수 있는 코스다. 수표교, 봉수대 등 조선 시대 역사 유적과 국립극장, 남산 서울타워 등 현대 문화시설도 이 코스에서 만날 수 있다.

도보 코스: 3호선 동대입구역→장충단공원→한양도성→국립극장→(버스 이동)→봉수대→남산 서울타워→(버스 이동)→안중근기념관(소요 시간: 2~3시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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