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같은 패턴이 오히려 더 트렌디하게 느껴지는 비에프지에프(BFGF)의 블랭킷. BFGF 제공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고 일교차가 심해지는 시기가 되면 무엇보다 유용하게 사용되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블랭킷이다. 담요를 뜻하는 말인 블랭킷은 14세기 영국의 직물업자인 토머스 블랭킷이 보온과 수면을 위한 제품을 제작한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소재와 크기에 따라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면, 리넨, 거즈, 플란넬 등 얇고 시원한 소재, 겨울에는 울, 자카르, 폴리에스테르, 페이크 퍼 등의 두툼하고 따뜻한 소재의 블랭킷을 주로 사용한다.
캠핑이나 피크닉처럼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때, 장시간의 기차나 비행기 여행을 할 때에도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실내에서도 공기가 서늘한 외국에서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블랭킷을 집 안 곳곳에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온돌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 블랭킷이 트렌디한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떠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테리어 측면에서 보자면 블랭킷은 집 안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을 때 무엇보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쿠션 커버 여러개나 이불 커버를 바꾸는 것보다 블랭킷 하나만 있으면 더욱 빠르고 경제적으로 공간의 느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넓게 펼쳐서 거실 소파를 덮으면 소파를 새롭게 커버링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침실에서 이불이나 베드 스프레드 대용으로 사용하기에도 그만이다. 러그처럼 바닥에 깔아도 된다. 요즘 유행하는 블랭킷 스타일링 방법은 액자처럼 벽에 거는 것이다. 허전한 빈 벽에 블랭킷을 걸면 벽지를 바꾸거나 그림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게 벽을 장식할 수 있다. 벽에 못을 박지 않고 압정이나 전용 핀만으로 쉽게 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덴마크 브랜드 펌 리빙의 미라주 블랭킷. 짐블랑 제공
블랭킷을 벽에 거는 방식을 제안하고 유행으로 이끈 브랜드는 미국의 ‘슬로다운 스튜디오’(Slowdown Studio)다. 이곳의 블랭킷을 구매하면 블랭킷을 벽에 걸어 연출하는 방법(‘How to hang a blanket?’)을 담은 종이를 받을 수 있다. 슬로다운 스튜디오 대표인 마크 헨드릭은 여러 신진 아티스트와 협업해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무드를 담은 블랭킷을 선보이고 있으며, 모든 제품은 태피스트리 방식(날실을 팽팽하게 건 다음 씨실을 꿰매듯이 짜 넣는 평직 방법)으로 제작되어 더욱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서래마을에 있는 편집숍, ‘룸퍼멘트’(Room ferment)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미국 시카고의 디자인 브랜드, ‘스튜디오 헤론’(Studio Herron) 역시 전통 직물 공예 방식으로 현대적인 패턴의 블랭킷을 제작한다. 도톰한 자카르 소재로 만든 기하학적 패턴의 블랭킷은 양면을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이 특징이다. 사용하다가 싫증이 날 때 뒷면을 사용하면 전혀 다른 배색의 패턴을 볼 수 있다. 스튜디오 헤론의 블랭킷은 국내에서는 ‘오, 타피스’(O, Tapis)에서 소개하고 있다. 디자이너 릴리안 마르티네즈가 만든 ‘비에프지에프’(BFGF)의 블랭킷은 왠지 어설퍼서 더 귀여운 스타일의 스케치를 담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유명 브랜드 로고, 만화 캐릭터, 과일 등을 끄적인 낙서를 그대로 옮긴 듯한 패턴이 독특하다. 서울숲에 있는 ‘박국이숍’에 가면 실물이 더 매력적인 비에프지에프의 블랭킷을 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덥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담은 슬로다운 스튜디오의 블랭킷. 슬로다운 스튜디오 제공
블랭킷은 때로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고 있기도 한다. 에르메스, 구치, 로로피아나 등의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브랜드만의 고유한 패턴을 담은 블랭킷을 선보이고 있으며, 비트라의 임스 울 블랭킷(Eames Wool Blanket)에는 1930년대 레이 임스가 그린 추상 그림을 모티브로 한 십자가와 도트 패턴이 있다. 비트라는 블랭킷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10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독일 제조업체와 함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귀여운 동물이나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패턴 패브릭으로 인형, 쿠션, 침구 등을 제작하는 영국 디자이너 도나 윌슨의 블랭킷은 그녀가 사랑하는 자연과 동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색도 화려하고 패턴도 귀여워서 어린이 방에도 잘 어울린다. 러그로 유명한 파펠리나(Pappelina)에서는 러그와 똑같은 색상과 패턴의 블랭킷이 있어 세트로 사용할 수도 있다. 덴마크 브랜드인 펌 리빙(Ferm Living)은 매 시즌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패턴의 블랭킷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사막의 식물과 오아시스 패턴의 ‘미라주’(Mirage)가 가장 인기 있는 시리즈로 손꼽힌다. 잘 짜인 아름다운 한장의 블랭킷은 생각보다 많은 구실을 한다. 집 안을 화사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어깨에 걸치거나 무릎에 덮으면 금세 따뜻함을 전달해주고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까지 선사하니까. 오늘, 이 계절에 어울리는 블랭킷 하나를 골라보는 건 어떨까.
정윤주(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막과 오아시스의 이미지를 담은 펌 리빙의 미라주 블랭킷. 짐블랑 제공
레이 임스가 디자인한 패턴이 있는 비트라의 임스 울 블랭킷. 루밍 제공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스튜디오 헤론의 블랭킷. 스튜디오 헤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