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천장 마감재를 걷어내자 경사 슬래브 지붕이 드러났다.
“너 그러다가 죽는다.”
목숨을 위협하는 공갈·협박이 아니다. 낡은 집을 사서 고치고 새로 지어 올린다고 했더니 부모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실제로 어머니가 젊으셨을 때 옆집 아저씨가 1년 동안 고생해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지었는데 동네에서 제일 건강하던 분이 완공하고 얼마 안 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공사를 준비하면서 집 짓다가 10년 늙는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뜻이다. 무거운 자재를 옮기거나 위험한 일은 숙련된 시공 작업자들이 맡아 하고 그분들을 감독하는 현장관리자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했다. 착공에 앞서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산재고용보험에도 가입해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도 했다.
내부 마감재 철거가 시작되고 이틀째 되는 날 아침. 건축사 ㅎ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건축주님,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현장에 와주실 수 있나요? 큰 문제가 생겼어요.” 혹시 사고라도 난 건가 물으니 다행히 그건 아니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려간 현장에는 ㅎ소장과 구조안전진단팀, 시공팀, 철거팀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2층 천장을 철거한 자리에 평평한 옥상 슬래브(콘크리트로 만든 판 구조물)가 있어야 하는데 대신에 경사 슬래브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1층과 2층의 구조를 살려 대수선하고, 그 위에 한 층을 더 증축하는 것인데 3층의 바닥이 되어야 할 평슬래브가 없으니 설계를 많이 수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축허가 심의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수선 공사에는 필수적으로 수직 하중을 버티는 철골을 세워 보강하는 작업이 들어가니, 지붕을 해체하고 철골 기둥 위에 보를 올려 새 슬래브를 얹으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니냐 물었더니 그 또한 불가능하다고 했다. 구조안전진단팀의 얘기로는 벽돌을 쌓아 세운 얇은 벽체들이 오랜 세월 동안 경사 지붕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라 경사 지붕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벽과 지붕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는 거였다.
안쪽으로 내려앉으면 작업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고 바깥쪽으로 무너지면 옆집 벽을 때리게 된다. 시공회사와 계약을 맺은 철거팀장의 낯빛이 어두웠다. 이 상태라면 절대로 작업 진행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뒤통수가 묵직했다. ㅎ소장과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일단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철거 허가를 다시 받아내려면 안전대책을 다시 세워 4주에 한번 열리는 건축심의를 통과해야 하니 최소 한달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철거를 다시 시작하게 되더라도 경사 지붕을 최대한 안전하게 해체하려면 일반 철거현장보다 훨씬 촘촘한 간격으로 잭서포트(수직 하중을 버티기 위해 임시로 세우는 기둥)를 받쳐놓고 조금씩 조심스럽게 작업해야 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늘어난다. 시공회사의 스케줄도 문제다. 우리 집 작업이 끝나면 시작할 다른 현장이 기다리고 있는데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잭서포트를 촘촘히 세우고 조심스럽게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더 큰 문제는 돈과 시간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을 모두 쏟아부을 요량으로 예산을 계획했으니 앞으로 들어갈 추가금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다. 또 살고 있던 집에서 6월에 이사해 새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던 계획도 틀어져 공사가 끝날 때까지 임시로 머물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니 그제야 어머니의 충고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위산이 역류해 속이 쓰렸다.
철거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ㅎ소장은 설계 수정안을 준비했다. 2층까지 철거한 이후에 남아 있는 1층은 대수선 공사를 하고 그 위로 두 층을 새로 올리는 계획이었다. 신속한 진행을 위해 2, 3층의 뼈대는 경량목구조로 정해 시공회사의 견적을 다시 받았다. 건축주의 형편을 고려해 시공 이윤을 많이 낮췄다고는 했지만 처음보다 늘어난 숫자들은 뒷목이 뻣뻣해지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두달 가까이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 철거 허가가 나왔고 현장에 다시 작업자들이 투입되었다. 철골 기둥을 세우기에 앞서 얇은 1층 시멘트 바닥을 깨고 1m가량 파 내려가니 오래된 타일 바닥이 보였다. 해방 이후 지어진 개량형 한옥 주택의 주방에 흔히 깔린 작은 푸른색 타일이다. 등기부등본에는 1983년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그보다 더 오래된 집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게 구획을 나누어 오랜 시간 작업자들의 손으로 지붕을 해체하고 안전을 확보한 뒤에 소형 포클레인을 올려 나머지 부분을 헐어낼 수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차도 한가운데에 마을을 지켜주고 소원도 들어준다는 오래된 정자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데, 150살이 넘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서울 목동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기 전에도 이곳에 마을이 있었고 사람들이 집을 지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파낸 바닥에 레미탈(포대에 담긴 공사용 시멘트)을 부어 튼튼한 기초를 만들고 잘 굳은 뒤에 철골 기둥을 세우고 보를 연결해야 안전하다. 보는 1층 천장(2층 바닥) 슬래브를 떠받치는 구실을 하는데, 표면이 고르지 못한 슬래브와 보가 맞닿는 부분의 틈새는 에폭시를 주입해 딱딱하게 굳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잘 마른 에폭시는 돌에 버금가는 단단함을 갖는다고 한다. 2층의 철거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잘게 구획을 나누어 오랜 시간 작업자들의 손으로 지붕을 해체하고 안전을 확보한 뒤에 소형 포클레인을 올려 나머지 부분을 헐어낼 수 있었다.
타들어가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빨리 흘러 6월 이사 날이 되었다. 급한 대로 구한 임시 숙소에는 가족들의 여름 옷 몇 벌과 아이가 초등학교와 학원에 다닐 책들만으로 피난 보따리를 싸서 옮겼고, 나머지 대부분의 이삿짐은 컨테이너에 보관하기로 했다. 여름 내내 뜨겁게 달궈진 컨테이너 안에서 살림살이들이 못 쓰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지만 딱히 대안이 없었다. 아이가 무심하게 던진 말 한마디가 또 뒷골을 때렸다. “아빠, 추석 전에는 새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임호림(어쩌다 건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