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큰 구멍을 뚫어 건물 바깥쪽으로 배연관을 빼내고 지붕까지 연결해 달아놓으니 집 자체가 거대한 연통이 붙어 있는 난로 같은 모양이 되었다.
집을 짓는다고 하니 지인들은 조물주보다 더 위대하다는 ‘건물주’가 되는 거냐고 부러움 섞인 질문부터 했었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라는 단어는 단순히 건물의 주인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자가 건물을 통해 고정적인 임대소득을 얻는 불로소득 자산가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아내는 1층에 조그만 가게와 원룸 하나씩을 넣어 임대하자고 했다. 하지만 건물주가 되고자 하는 그의 원대한 꿈은 내가 1층을 쓰겠다고 선언하면서 곧 무너지고 말았다.
작업장에 육가공 장비가 다 들어오게 되면 조명을 추가로 설치하고 전기 사용량을 계산해 전기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
나는 요식업 자영업자다. 몇해 전부터 작은 프랜차이즈 피자집을 운영했었는데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던 때에 코로나 역병이 창궐해 2년 넘게 쉬면서 집을 지었던 거다. 팬데믹이 지나가면 언젠가 다시 먹는 장사를 시작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가게를 열려면 보증금과 월세를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이른바 ‘목이 좋은’ 곳이라면 임대료도 만만찮게 비싸고 터무니없는 권리금을 요구하는 곳도 많으니 이것저것 따져보면 내 집에서 마음 편하게 장사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문제는 목이 너무 안 좋은, 그것도 골목 제일 안쪽에 있는 집이라는 것이다. 반경 100m 안에 음식점 하나 없다는 건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먹는 장사를 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말도 된다. 내가 새로 시작하려는 가게는 ‘델리카트슨’(델리숍)인데 쉽게 말해 햄, 소시지, 베이컨을 만들어 파는 가게라고 생각하면 된다. 온라인판매와 포장·배달에 집중하면 가게 위치와 상권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육가공품을 생산하게 되면 매장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아직 집기류들이 다 들어오지 않아 썰렁하지만 곧 분주하고 시끌벅적한 가게가 되길 기대한다.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려면 관청(지방자치단체,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필요에 따라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도 생긴다. 공간은 건축법에 따른 용도별 건축물의 종류상 근린생활시설로 지정되어 있어야 한다. 업종과 영업 규모에 따라 1종과 2종의 구분이 있으니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주거용으로 분류되어 있는 공간을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자체에 문의해 변경할 수 있는 곳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위치가 보호시설에 가깝거나 변경하려는 건물에 위법 요소가 있거나 오·폐수 정화시설의 용량이 부족하다면 용도 변경이 안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대수선과 증축 공사를 하면서 1층 공간을 근린생활시설로 신고해서 이런 문제들은 모두 피해 갈 수 있었다.
사업자의 자격 요건도 갖춰두어야 한다. 요식업종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건강진단결과서(옛 보건증)와 외식산업 관련 교육 이수증명서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거기에 더해 육가공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식육즉석판매가공업’ 신고가 필요해 온라인으로 축산물위생교육을 받은 뒤 허가증을 받을 수 있었다.
소시지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작업장 온도를 낮게 하는 것이다. 보통 섭씨 18도 안팎을 유지해야 하고 무더운 한여름에도 22도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원료육을 곱게 갈면서 일정한 양의 소금을 첨가하면 염용성 단백질이라는 것이 추출되어 고기 반죽에 결착력이 생기는데, 이것이 탱글탱글한 소시지 식감의 핵심이다. 반죽 온도가 올라가면 결착력이 약해져 완제품을 익힐 때 맛있는 육즙이 빠져나와 식감이 퍼석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소시지 작업장에는 불을 쓰면 안 된다. 가열형 소시지를 완성하기 위해 오븐이나 화구를 놓으려면 열을 차단할 수 있도록 별도의 격리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내 경우,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과 계단실을 중앙에 배치하고 양쪽에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을 계획해 각각 30㎡ 남짓한 작업장과 매장을 두기로 했다.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매장 안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도 갖출 생각이다.
작업장과 매장을 꾸미는 데도 꽤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 햄, 소시지를 만드는 장비류는 대부분 비싼 수입 기계인데 코로나 시국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쳐 원자재 가격과 국제 운송료가 많이 올라 예상보다 지출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물을 많이 쓰는 육가공 작업장이다 보니 쉽게 녹슬지 않는 재질의 금속을 써야 하는데, 작업대나 선반을 만들 때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조금 비싸지만 의료용 기기를 제작하는 ‘304’등급 이상을 써야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업장과 매장 뒷문이 통하는 작은 뒷마당 바닥에는 콘크리트가 깔려 있었는데, 나무 데크를 설치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 집과 이웃집 사이에 있던 낮은 담에도 나무살을 높게 덧붙여 서로의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매장이 완성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뒷마당에 4인용 테이블을 두개 정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집과 이웃집 사이에 있던 낮은 담에도 나무살을 높게 덧붙여 서로의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대수선과 증축 공사를 하면서 1층의 용도를 미리 예상해서 작업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챙길 수는 없었기에 다시 손을 대야 하는 곳이 꽤 많았다. 매장 주방에는 오븐과 화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연기와 음식 냄새가 빠져나갈 배기구를 달아야 한다. 특히 소시지를 훈연 처리하면서 연기가 많이 올라오는데 이걸 효율적으로 빼내려면 넓은 후드와 성능 좋은 모터가 필요하다. 벽에 큰 구멍을 뚫어 건물 바깥쪽으로 배연관을 빼내고 지붕까지 연결해 달아놓으니 집 자체가 거대한 연통이 붙어 있는 난로 같은 모양이 되었다. 예쁘고 매끈한 외관이 망가져 속상했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전기 용량과 조명도 계획했던 것에서 벗어나 다시 작업해야 한다. 많은 양의 고기를 갈고 반죽하는 가공 기계들은 고전압·고전력(380V·3상) 모터가 달린 경우가 많다. 일반 가정용 전기(220V·단상)를 사용하는 장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기계 장비 또한 계획했던 것보다 높은 사양으로 변경하면서 전기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신고 서류를 접수하고 나서 현장 점검을 나온 구청 보건과 주무관은 조명을 지적하기도 했다. 220럭스 이상의 밝은 조명이 필요한데 작업장이 기준보다 아주 어둡다는 것이다. 전등도 충분히 더 설치하기로 했다. 무엇 하나 계획한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법이 없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내성이라도 생긴 것일까?
글·사진 임호림(어쩌다 건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