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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햅쌀밥에 김치 한 조각, 밥심으로 올해 넘긴다

등록 2021-10-14 04:59수정 2021-10-14 09:27

요리연구가 3인이 추천하는 제철 식재료 밥
청주·소금 ‘신의 한 수’ 나카가와 히데코의 ‘밤밥’
프라이팬으로 짓는 가을 해물 요리 김희종의 ‘해물밥’
몸이 푸근해지는 가을 자연식, 문숙의 ‘우엉현미밥’
일년 중 이맘때만 만날 수 있는 귀한 햅쌀 밤밥. 나카가와 히데코씨가 지었다. 사진 임경빈 어나더원비주얼 실장
일년 중 이맘때만 만날 수 있는 귀한 햅쌀 밤밥. 나카가와 히데코씨가 지었다. 사진 임경빈 어나더원비주얼 실장

밥심. ‘밥을 먹고 생긴 힘’이라는 뜻이다. 최정은 사회복지법인 윙 대표는 이 ‘밥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로에서 소셜다이닝 ‘비덕살롱’을 운영하는 그는 자주 지친 이들에게 밥심을 선사하며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최근 최 대표는 밥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절감하는 경험을 했다. 하루는 그의 살롱 앞에서 한 노숙인이 길가 쓰레기봉투를 열고 먹을 것을 찾는 듯하기에 조심스레 불러다 밥을 해 먹였다. 밥을 새로 짓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된장찌개, 스팸구이, 계란프라이를 만들어 상을 차렸다. 손님은 먼저 맨밥 두 공기를 비우고 난 뒤 반찬과 밥 두 공기를 더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한다.

“스팸을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너무 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허기질 때 제일 먹고 싶은 게 밥이잖아요. 식탁을 차릴 때 저는 가장 밥을 중시하는데, 밥을 잘하는 일이 또 그만큼 어려워요.”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20년 양곡소비량 조사’를 보면, 작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7.7㎏이었다. 통계 작성 이후 최소치였던 2019년에 견줘 또다시 1.5㎏ 감소했다. 30년 전인 1989년의 연간 소비량(121.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쌀밥은 힘이 세다. 한국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보물 같은 주식이 쌀이다. 갓 수확해 도정한 쌀로 지은 밥의 풍미는 산해진미 부럽지 않다. 귀한 햅쌀밥을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모아보았다.

소셜다이닝 ‘비덕살롱’을 운영하는 최정은 대표가 쓰는 나무 밥통. 최기 작가(강원대 생활조형디자인학과 교수)가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자란 다릅나무로 깎은 그릇과 뽕나무 고사목으로 만든 주걱이다. 사진 최정은 제공
소셜다이닝 ‘비덕살롱’을 운영하는 최정은 대표가 쓰는 나무 밥통. 최기 작가(강원대 생활조형디자인학과 교수)가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자란 다릅나무로 깎은 그릇과 뽕나무 고사목으로 만든 주걱이다. 사진 최정은 제공

나카가와 히데코의 밤 솥밥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야트막한 언덕 주택가에 유명한 요리교실이 있다. 요리연구가이자 작가인 나카가와 히데코(중천수자)씨가 2008년부터 운영해온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이곳엔 13년 동안 대학생, 의사, 변호사, 교수, 기자 등 다양한 직군의 수강생이 매달 평균 150명 가까이 드나들었고 같은 수의 대기자가 줄을 잇는다. 코로나 대유행 탓에 요리교실을 잠시 쉬는 동안 그는 책을 완성했다. 한식, 일식, 지중해식 등 비장의 레시피 30가지를 담은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이다.

20대 때부터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살았고, 결혼하며 귀화한 그는 책의 마지막 챕터에 한국 토종 쌀 이야기를 썼다. 2011년부터 한국 토종 쌀을 연구·생산하고 있는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를 만나고 토종 쌀의 매력에 빠졌던 것이다. 그의 요리교실 팬트리에도 화도, 올벼, 원자벼 등 이름도 낯선 한반도 토종 쌀들이 여러 봉지 놓여 있었다. “서로 다른 토종 쌀로 온갖 밥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토종 볍씨를 남기는 사명감이 큰 우보농장과 함께 연구를 하는 셈이죠.” 나카가와씨가 특히 좋아하는 쌀은 화도. 찰지고 단맛이 좋다. 토종 쌀 용천으로는 모로코식 수프를, 묵직하고 깊은 여운이 있는 토종 쌀 북흑조로는 차돌박이와 우엉솥밥 레시피를 만들어 책에도 실었다.

요리연구가이자 작가인 나카가와 히데코씨. 사진 임경빈 어나더원비주얼 실장
요리연구가이자 작가인 나카가와 히데코씨. 사진 임경빈 어나더원비주얼 실장

그가 추천하는 가을 밥은 밤밥. 핵심은 아주 적은 양의 청주와 소금인데, 이 두가지가 익힌 밤의 잡내를 없애주고 풍미를 돋운다. 맹물로 지은 밤밥은 시간이 지날수록 쉰 듯한 냄새가 나지만 청주와 소금을 넣고 지은 밥은 식고 나서 더 단맛이 난다. 햅쌀로 밤밥을 지을 땐 따로 쌀을 불리지 않아도 된다. 가마도상(뚝배기 모양의 밥솥. 뚜껑이 이중이라 밥물이 넘치지 않는다), 무쇠솥, 압력밥솥으로 지어도 된다. 밤 대신 고구마, 호박, 생땅콩을 넣어 같은 방법으로 지어도 맛이 있다.

“햅쌀로 밥을 지을 땐 보통 밥을 할 때보다 물을 조금 적게 넣어야 죽이 되지 않아요. 넓은 플레이트에 가득 담아 덜어 먹는 것이 예쁘고 편할 것 같아요.” 플레이팅도 단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예쁘다.

△밤밥 (2~3인분)

쌀 2컵(300g. 기호에 따라 20% 정도 찹쌀을 섞어도 된다), 밤 400g, 소금(천일염) 1과1/3작은술, 청주 1큰술, 물 360㎖.

1. 밤은 껍질을 제거한다.
2. 쌀(백미)은 씻은 후 30분 정도 물기를 잘 뺀다.
3. 전기밥솥이나 냄비에 쌀, 분량의 물, 청주, 소금을 넣고 잘 섞다가 밤을 얹어 밥을 짓는다.

쌀, 밤, 소금, 청주, 물만 있으면 된다. 햅쌀로 밥을 지을 땐 물을 약간 적게 잡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 임경빈 어나더원비주얼 실장
쌀, 밤, 소금, 청주, 물만 있으면 된다. 햅쌀로 밥을 지을 땐 물을 약간 적게 잡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 임경빈 어나더원비주얼 실장

김희종의 프라이팬 해물밥

프라이팬 뚜껑을 여니 해산물 향이 훅 끼쳐온다. 문어와 조갯살, 새우의 화려한 색감이 눈에 띈다. 밥은 노르스름하니 먹음직스럽다. 자글자글 익는 소리까지 합쳐 오감을 자극하는 밥. 한숟갈 떠 넣으니 고급스러운 단맛이 입안에 맴돈다.

“간장도 소금도 넣지 않았지만 간이 맞죠?” 2000년대 초 1세대 맛집 파워블로거이자 이태원 레스토랑 오너셰프를 거쳐 <모두의 솥밥>을 낸 김희종 셰프. 그가 선보인 가을 밥은 프라이팬 해물밥. 쌀은 개별 포장된 프리미엄 쌀들을 주로 구입하는데, 비싸지만 산화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프라이팬 밥을 할 때는 불린 쌀을 볶는 것이 핵심이에요. 불렸다 볶지 않으면 쌀알이 골고루 익지 않습니다.” 스페인 요리인 파에야와 비슷해 보이지만 토마토나 사프란이 없어도 된다. 다만 가을 제철 식재료인 바지락만은 꼭 넣었으면 한단다.

김희종 셰프. 김희종 제공
김희종 셰프. 김희종 제공

팬을 선택할 때는 바닥이 넓적한 무쇠팬이나 사각 전골냄비류도 괜찮지만 코팅된 무쇠팬이 가장 좋다. 재료를 풍성하게 올려야 하니 면적이 조금 넓고 높이가 있는 것을 선택한다. 또 하나 중요한 도구는 뚜껑. 가정에서 주로 쓰는 지름 26~28㎝ 프라이팬에 맞는 뚜껑을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구멍이 없어서 증기가 덜 빠지는 것을 고르는 편이 낫다.

프라이팬 해물밥은 작은 모임에서 해 먹기 좋다. 1~2인 가구라면 먹고 남은 것을 냉동했다가 굴소스나 소금, 시중에 파는 카레가루를 조금 넣어 볶음밥으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한끼 식사로 그만이지만, 와인과도 어울린다. “내추럴 와인, 화이트 와인 모두 괜찮고 고량주와도 무척 잘 맞아요.” 최고의 술안주는 밥이라는, 오랜 술꾼들의 이야기와도 일치한다.

프라이팬 해물밥. 김희종 제공
프라이팬 해물밥. 김희종 제공

△해산물 프라이팬밥 (2~3인분)

쌀 2컵, 물 2컵, 양파 반 개, 바지락 300g, 새우 5마리, 문어 다리 1개, 올리브 6~7알, 레몬 1개.

1. 쌀은 한시간 불려 채반에 물기를 뺀다.
2. 양파는 잘게 썰고 바지락은 해감 후 깨끗이 씻는다. 새우는 몸통 껍질만 까서 준비한다.
3. 올리브오일에 쌀과 양파를 2~3분간 볶다가 물을 넣고 해산물과 올리브를 전부 넣어 중약불에 12분간 뚜껑 덮어 밥을 짓는다.
4. 밥이 다 되면 레몬즙을 짜고 올리브오일을 두른다.
문숙의 가을 자연식, 우엉밥

자연치유 전문가, 요가 지도자이자 배우인 문숙씨는 오랜 경험을 녹여낸 요리책 <문숙의 자연식>을 2015년 냈다. 유튜브 채널 ‘하루하루 문숙’을 통해 만들기 쉽고 건강에도 좋은 자연식 레시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자연식은 가공하지 않은 제철 식재료로 간단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건강한 음식을 가리킨다.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만 보약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먹는 밥을 보약으로 생각하면 되는 셈이다.

“한국인들이 다양한 식경험을 하게 되면서 식생활이 서구화하고 밥을 덜 먹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어렵게 길러 가을 한철 한번만 수확하는 우리 쌀은 좀 더 존중해야 할 귀하디귀한 곡물입니다. 조상의 경험과 수천년 전통을 무시할 수 없죠.”

자연치유 전문가, 요가 지도자이자 배우인 문숙씨. &lt;한겨레&gt; 자료사진
자연치유 전문가, 요가 지도자이자 배우인 문숙씨. <한겨레> 자료사진

자연을 통째로 먹는 것으로 유명한 마크로비오틱에서도 현미는 매우 중요한 곡물로 일컬어진다. 우엉을 함께 넣어 지은 현미밥은 누구에게나 좋지만, 특히 육류와 해산물까지 먹지 않는 비건들에게 문숙씨가 권하는 음식이다. 그는 “가을 제철 식재료인 우엉은 뿌리채소 중에서도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리는 채소로, 항균과 소염작용을 한다”며 “약효가 거의 허브에 준하는 채소로서, 샐러드를 많이 먹어 몸이 차가워지거나 중심이 가라앉지 않고 자꾸 흔들릴 때 먹으면 더욱 좋은 식재료”라고 말했다. “먹었을 때 몸이 푸근해지는 음식이 좋다”고 그는 말했다.

우엉은 껍질을 까지 않고 쓰는 것이 좋은데, 맛이 아리기 때문에 잘 씻어서 완전히 익혀 먹는 것이 좋다.

현미우엉밥. 도서출판 샨티 제공.
현미우엉밥. 도서출판 샨티 제공.

△현미 우엉밥

현미, 물, 검은콩 약간, 우엉, 바닷소금 약간, 생강 1조각 (*계량은 자신의 컨디션이나 재료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권한다)

1. 현미와 콩을 밤새도록 잘 불려 준비해놓는다.
2. 우엉을 깨끗이 씻어 닦아놓는다.
3. 압력솥에 쌀을 안친 뒤 우엉과 콩을 넣고 바닷소금 조금과 생강 1조각을 넣고 45분에서 1시간가량 푹 익힌다.
4. 10~15분 정도 기다렸다가 뚜껑을 열고 뜨거울 때 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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