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상재 ‘스페이스 비’ 갤러리. 임지선 제공
바야흐로 공예의 전성시대. 몇년 전부터 ‘공예’라는 흐름을 트렌드 시장에서 유의미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각종 전시회(페어)나 공예를 소개하는 공간이 등장하고, 기존 공예가들을 조명하는 동시에 신진 공예가들의 브랜드와 작업을 수면 위로 띄우는 상황이다.
2006년부터 시작한 공예트렌드페어는 최근 몇년 동안 큰 성장세와 인지도의 상승을 보여줬다. 규모도 매년 커지고, 예술감독을 선정해 주제와 연출을 맡기는 등 페어에 방문할 때마다 그 깊이와 폭이 확연히 넓어졌음을 체감한다. 또 그만큼 공예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걸 느낀다. 수요 없는 공급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젠 주변에서 걸출한 공예 작가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유리, 금속, 도자, 종이, 나무를 다루는 신진 작가들도 계속해서 눈에 띈다. 좋아하는 도예가는 누군지, 이런 도자 브랜드를 사 모으고 있다는 등 이전에는 낯설었던 대화가 엠제트(MZ)세대 사이에서 오간다. 고집스러운 장인의 영역이라고만 느껴지던 공예. 이제는 가장 궁금하고 갖고 싶은, 트렌드의 중심에 서서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동시대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 공예, 이를 다루는 공간들은 어떠할까?
윤현상재 ‘스페이스 비’ 갤러리. 임지선 제공
‘윤현상재’는 타일 회사다. 그런데 타일만 다루지 않는다. 아니 가끔은 타일을 이야기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재료, 더 나아가 물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예술, 디자인, 건축을 통해 하고자 하는 브랜드 철학을 표현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타일 골목에 위치한 윤현상재는 수입 타일을 취급하는 여러 타일 회사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기획력을 가지고 있다. 판매를 넘어 공예의 한 장르로 존재하도록 윤현상재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스페이스 비’(space BE)와 공예편집숍 ‘윤현핸즈’는 서로가 공조하며 깊이 있는 전시와 기획을 선보인다. 종종 소규모 브랜드와 비(B)급 제품들을 저렴하게 내놓는 플리마켓형 상점을 ‘보물창고’라는 이름으로 열기도 한다. 이처럼 공예를 예술과 건축의 시선으로 담고, 브랜드로서의 강점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윤현상재의 현명한 태도와 장기적인 관점에 속으로 박수를 보낼 때가 많다. 이번에 열린 스페이스 비의 50번째 전시 ‘비사이드 위드…’(Beside with…)는 두 파트로 나뉘어 두개의 층에 걸쳐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구리 주전자, 찻잔과 받침, 찻잎을 우리는 도구와 차함, 유리 물잔과 접시, 나무 소반, 손으로 빚은 주물 수저와 티스푼, 더 나아가면 의자와 함, 장, 반상과 같은 가구의 영역까지 나타난다. 두 파트는 각각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조력자’, ‘테이블 위 나의 소우주’라는 제목으로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물들을 공간 속 맥락에서 다시금 바라보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윤현상재의 공간은 타일쇼룸보다 이러한 공예를 전시하는 공간의 영역이 더 크다는 것이다. (구조가 특이하고 재미있는) 채광이 잘 들어오는 층은 타일보다 되레 이 전시공간에 양보하고 있었다. 공예가 갖는 매력과 브랜드로서의 확장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어느 공간에 공예품이 있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표현하고 있다.
높아지는 공예에 대한 관심,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새롭게 문을 연 공간이 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옛 풍문여고를 리모델링하여 올해 7월 문을 연 ‘서울공예박물관’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으로 공예품 전시뿐만 아니라 연구와 아카이빙, 공예를 경험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공예를 매개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며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겠다는 소개말처럼 전승공예부터 현대공예까지 그 아우르는 폭이 넓다. 박물관은 지어질 때부터 풍문여고 터를 선택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건물의 모양은 그대로 살리되 내부만 리모델링하는 식으로 교실을 트거나 다듬으며 크고 작은 전시공간을 만들어냈다. 옛것 사이에 피어난 현대적 공간들이 지금 공예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울공예박물관의 기획전시와 상설전시는 공예의 지역적, 시대적, 장르적 흐름을 하나씩 짚어내어 다루고 있다. 장인의 일상기물이라든지, 자수의 역사와 그 종류라든지. 보통의 집요한 관심으로 건져 올린 주제가 아니다. 나무와 칠, 뼈, 뿔, 조개껍데기, 섬유, 종이. 당시 사대부나 왕실의 관심사와 장인의 지대한 노력에 혀를 내두르는 공예의 깊이에 브랜드로서의 공예는 여기 어디 즈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가늠해보기도 했다. 전시동뿐 아니라 이를 더 체험하고 이해하도록 만든 어린이박물관이나 공들여 만든 공예 별당을 둘러보며 제품으로서의 브랜드가 아닌, 문화로서의 브랜드로 공예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예가 왜 이토록 주목을 받는 걸까? 고가의 브랜드가 된 소반부터 가마에서 구워져 나오자마자 예약이 걸리는 도자 브랜드까지.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화와 취향의 다분화,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가속화된 ‘나의 공간’에 대한 관심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나의 공간과 삶에 대한 재조명, 보여주고 싶은 일상도 중요하지만 내가 향유하는 나의 진정한 일상도 중요해진 요즘, 철학을 담은 공예품이 주는 기쁨을 우리는 차츰 깨달아가고 있다. 마치 옛 선조처럼 말이다. 공예는 하나의 예술이다. 우리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가장 작고 풍부한 예술. 그 역사 또한 예술의 궤와 같이하지 않는가. 잘 만들어진 향초꽂이 하나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그 곡선과 소재, 감촉과 형상에 매료될 때가 많다. 가성비가 좋은 예술이랄까. 내 손안의, 내 삶 속의 예술이라 느껴질 때가 많다. 윤현상재의 전시에서 작은 타이틀로 내걸었던 제목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테이블 위 나의 소우주, 공예를 접하고 소장한다는 건 딱 이런 거 아닐까. 저 멀리 벽면, 유리장 안의 손댈 수 없는 세계가 아닌 내 테이블 위 깊고 작은 우주와 같은.
임지선(브랜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