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의 과정 자체를 체험할 수 있는 하우스도산.
체험이 브랜드의 화두로 떠오른 지 제법 되었다. 방식과 형태는 달라도 체험은 늘 브랜딩의 중심에 있었는데, 비엑스(BX·Brand Experience)가 경영 및 마케팅의 주요 단어로 부상하면서 모든 브랜드는 브랜드 경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품과 같이 증정하는 굿즈로 기억의 도구를 만들거나 샘플을 통해 직접 경험을 구성하는 방식 등으로. 아마 이 글을 읽으며 한두가지 흥미로웠던 브랜드 경험이나 체험이 떠오를 것이다.
경험과 체험을 찾아보니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경험은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이라면, 체험은 개인의 주관 속에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생생한 의식 과정이나 내용이다. 체험은 주관적 평가와 감상인 동시에 의식 속으로 더 파고들어간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경험이 아닌 체험을 만들어내고 있는 세 공간을 통해 브랜드를 들여다보자.
해피바스와 섬세이는 각각 보디케어 브랜드, 보디 드라이어 브랜드이다. 해피바스는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중 하나로 대중에게 익숙한 편이다. 반면 섬세이는 아직 낯선 브랜드로 보디 드라이어만을 판매하고 있다. 바람으로 몸을 건조시키는 보디 드라이어는 대중에게 아직 생소한 제품이지만, 호텔이나 고급 스테이 중심으로 사용이 늘고 있다.
두 브랜드는 모두 대중에게 어필하고 싶다. 한 브랜드는 굳어진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환기하며 제품력을 주지시키고 싶고, 다른 브랜드는 낮은 인지도를 높이며 생소한 제품을 알리고 싶다. 그런데 두 브랜드 모두 제품 특성상 소비자에게 제품을 일일이 사용하게 하거나 향과 촉감과 같은 비시각적 느낌을 경험하도록 유도하기 쉽지 않다. 이제는 체험이 워낙 대중적인 브랜딩 수단이 되었기에, 제품을 경험하는 쇼룸으로 유도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아졌다. 그래서 이들은 체험형 전시를 하는 공간을 구상했다. 매장에서 제품을 경험하는 것 그 너머의 체험으로 브랜드를 인식시키기 위해 아예 공간 안으로 우리를 불렀다.
건물 안에서 자연의 감각을 체험하는, 섬세이 테라리움.
섬세이는 자연을 건물 안으로 넣었다.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연이 만약 사라진다면’이라는 주제 아래 시각, 촉각, 후각 등 오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인 테라리움을 지하 1층부터 4층 루프톱까지 구획했다. 동굴로 진입하는 듯 묵직한 인공 돌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든 빛이 차단되며 잊고 있던 세밀한 감각이 깨어난다. 다음으로는 물이 흐르는 공간으로 이어져 물이 닿는 촉감을 음미하고, 바람의 결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공간에선 연하게 산들거리는 바람을 느껴본다. 포레스트(forest) 공간으로 이동하면 자연광이 들어오며 실제 새들이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는 자연의 한 장면을 옮겨다 놓은 곳에서 감각의 체험을 하게 된다. 참 재미있다. 이 공간을 나가는 순간까지 제품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데도, 매우 자연 친화적이고 인공적이지 않은, 나의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라이프 브랜드를 만나고 왔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거품멍전(展)은 해피바스의 체험형 전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달콤한 향이 가득 느껴지고, 어두운 공간 가운데 희고 부드럽고 풍성한 거품이 내려와 거품 폭포를 만들고 있다. 거품과 관련된 영상, 향 사우나 등으로 브랜드가 다루는 제품의 특성을 극대화시켜 체험하도록 되어 있다. 한편에 놓인 비눗방울채를 흔들며 커다란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노라면 어릴 적 거품욕조에 빠져 해맑게 즐거워했던 순간마저 연상된다. 그래, 어렸을 때 처음 접했던 이 브랜드와의 첫 기억, 바로 그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점이 제법 현명한 브랜드 체험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랜 브랜드 해피바스를 새롭게 감각할 수 있는 거품멍전.
리테일 브랜드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누데이크를 품고 있는 공간 하우스도산은 조금 더 나아갔다. 공간을 특별하게 체험하고 기억하도록 경험의 과정 그 자체를 공간에 짜 넣었다. 이번 8월 시작한 아트 프로젝트 ‘라이브 제로’(LIVE ZERO)는 하우스도산에 일종의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단순한 공간, 건물이 아니라 이 공간(space) 자체가 장소(place)가 되도록 말이다. 여러 브랜드를 품은 하우스도산이 가진 능동적이고 다양한 페르소나를 보여주듯 작가 김민희가 상주하며 빈 캔버스에서부터 시작해 작업을 완성해간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은 실시간으로 유튜브 스트리밍으로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공간의 과정 자체를 공유하고 경험하여, 모든 순간이 자기 것이 되도록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라이브 제로라는 프로젝트 네이밍 역시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을 통해 공간이 살아 있는 경계로 넘어오는 찰나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브랜드 저마다의 마케팅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 지쳤다면, 아예 공간을 통해 브랜드를 직접 소화해보는 거다.
이제 나는 체험을 체험한다. 브랜드에서 내놓는 체험형 쇼룸, 체험형 플래그십 스토어가 비슷한 문법이라 느껴진다면, 아예 공간 자체를 체험으로 만든 곳은 어떨까?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문을 나가는 때까지, 체험에 체험을 중첩시킨 이 새로운 공간의 시도들이 무척이나 재밌다.
글·사진 임지선 브랜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