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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꿀잠이냐 중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등록 2021-10-21 05:00수정 2021-10-21 07:23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우습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중독이 두렵다. 술이나 커피, 콜라 등을 즐기다가도 돌연 장기간 끊는 것은 나 스스로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싶어서다.

잠을 좀 못 잤느냐, 몹시 못 잤느냐, 죽을 것같이 못 잤느냐. 이 중 죽을 것같이 못 잤을 때만 수면유도제를 먹는다. 왜 그럴 때 있잖나. 평소 약해진 신체 부위가 기력이 쇠한 틈을 타 우수수 튀어나올 때. 관자놀이가 난타당하듯 댕댕거린다거나, 뼈처럼 딱딱해진 승모근이 욱신거린다거나, 땜질이 뜯겨나간 어금니가 선뜩거린다거나. 대개 이 모든 증상은 동시에 나타난다. 불면이 누적되다 피로가 폭발하는 순간이자, 쌈짓돈 같은 수면유도제를 꺼내야 하는 타이밍이다.

한달에 최대 2회. 복용 제한을 엄수한다는 얘기는 지난 글에 썼다. 지금의 균형이 거저 얻어진 건 아니다. 내성과 의존성으로 얼룩진 카오스를 겪었다. 한때 처방전이 불필요한 일반의약품이라는 이유로 수면유도제를 막 먹을 때가 있었다. 게보린이나 타이레놀 같은 건데 뭐 어때, 하는 생각이었다. 도장깨기 하는 심정으로 약국을 순회하기도 했다. 종류별로 쟁여둔 수면유도제를 보면 희한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신나게 삼키고 쟁인 이유는 뻔했다. 그만큼 좋았던 거지. 복용 초기에는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처음 먹은 수면유도제는 ‘단자민(달콤한 잠)’과 ‘자미슬(잠이 솔솔)’이었는데, 작명한 분을 만나면 밥이라도 사고 싶을 정도다. 약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아니 너무 찰떡같게도 어찌나 꿀잠을 잤던지 이튿날 내내 개안한 기분이었다. 혹시 라식 수술 한 적 있으신가. 과거와는 180도 다른, 신세계를 영접하는 순간 밀려오는 황홀감. 급상승한 삶의 질 덕에 세상만사 꽃길로 보이는 착시효과. 그간 나만 모르고 살았나 싶은 약간의 억울함까지. 수면유도제를 처음 먹었을 때도 그랬다. 개운하다 못해 캡틴마블이라도 된 듯 호랑이 기운이 솟았다. 뭐야, 이렇게 쉬운 거였어? 불면증 별거 아닌데?

행복한 착각은 부작용을 감지하면서 끝났다. 그전에는 일반의약품인 수면유도제라도 내성과 의존성이 있으며, 그게 얼마나 일상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몰랐다. 사실 그 정도 상식은 유튜브에도 넘치니 몰랐다기보다 모르는 척한 쪽이 맞겠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 격이다.) 어쨌든 간에 수면유도제를 사나흘씩 연달아 먹던 어느 날, 나는 약효가 떨어진다고 느꼈고, 어리석게도 복용량을 늘렸다. 지옥문이 열린 건 그때부터였다. 2분의 1 알이 2알이 되고, 2알을 먹어도 못 자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성이 생긴 약을 더 많이 먹는 것. 그게 바로 의존성인데, 그땐 자고 싶다는 절박함에 사무친 나머지 그 사실 또한 외면하고 말았다.

자, 그때로 잠시 돌아가보겠다. 나는 자정 무렵 침대에 누웠다. 샤워는 일찌감치 마쳤다. 약도 이미 먹었다. 미스트를 뿌린 베개에서는 아로마 향이 나고, 명상가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들린다. 내공이 느껴지는, 차분하고 나른한 목소리. “호흡에 집중합니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보디스캔을 하며 몸의 감각을 느껴봅니다.” 여긴 발꿈치… 여긴 손등… 여긴 뒤통수….

완벽해! 그래, 모든 게 완벽하다. 숙면을 부르는 환경으로만 치면 잠의 신, 아니 그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감탄할 수준이다. 하지만 뭐지? 이 불쾌한 느낌은? 어딘가 찌릿찌릿하다. 어쩌면 찌릿찌릿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찝찝한? 찝찝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형용하기 힘들다. 분명한 건 내가 지금 잠이라는 걸 자보려 하지만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말똥말똥하다면 이 순간에 매달리는 대신 다른 짓이라도 해볼 텐데, 지금 내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탁하고 무겁다. 잠이 든 것도, 안 든 것도 아닌 상태. 불면의 차원이 평소와는 다른 상태. 약을 먹어도 안 된다는 절망감이 극에 달한 상태. 고통스러운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기나긴 밤이었다.

이튿날은 종일 편두통에 시달렸다. 이제 옵션은 두가지였다. 약을 아예 안 먹거나, 더 늘려야 했다. 2알을 3알로 늘리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 더 많이! 더 세게!를 외치게 될까 두려웠다. 우습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중독이 두렵다. 술이나 커피, 콜라 등을 즐기다가도 돌연 장기간 끊는 것은 나 스스로 그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싶어서다. (지금은 술과 커피를 ‘거의’ 끊었다.) 결국 나는 약으로 나를 기절시키는 일을 한동안 관두기로 했다. 단지 ‘중독’이라는 말에 부여된 부정적인 뉘앙스, 그러니까 중독은 의지력의 문제이니 ‘노오오오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에 굴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젠 내성과 의존성을 떨쳐냈기에 하는 말이지만, 원칙 없는 복약은 화학적으로 실패했을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수면유도제를 과용하는 행위는 뭐랄까, 내 안에 무력감을 축적하는 동시에 자존감도 갉아먹었다. 약을 먹는 동안 나는 종종 나 자신을 비하했다. 종류별로 사둔 약을 보며 위안을 얻었고, 약을 먹고 나면 쏟아지는 졸음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약에 의존하는 나 자신을 한심해하는 자아와 그런 나를 영영 통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아, 딱하게 보진 마시라. 아까 말했듯 지금은 쌈짓돈처럼 신중히 복약 중이니까. 시행착오 끝에 균형과 원칙을 찾았다. 목표가 있다. 지금 먹는 것마저 끊는 것, 외부 요인에 일절 의존하지 않은 채 불면을 탈출하는 것이 목표다. 만약 당신이 수면유도제를 복용하려 한다면 지난 글 ‘잠 못 드는 내가 ‘약’에 신중한 이유’(<한겨레> 9월25일치 37면)도 참고해주길 바란다. 복용팁은 개똥철학으로 보일지언정 순도 100% 경험치에 의거한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지난 글과 이번 글 사이에 계절이 바뀌었다. 이거 쓰는 동안 너무 추웠다. 가을 없이 닥친 겨울이다. 잠이 허락되지 않는 이들에게 온기가 허락되기를.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1. 일반의약품 수면유도제에 디펜히드라민이나 독실아민 성분만 있는 건 아니다. 생약 성분 ‘레××’도 유명하다. 꾸준히 먹으면 효과가 있다. ★★★★☆

2. 한때 광풍이었던 천연성분 멜라토닌은 해외 직구가 몇년 전 금지되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멜라토닌은 일반의약품 아닌 전문의약품이니 잘 알아보고 먹어야 한다. ★★★☆☆

3. 침대에는 잠이 올 때만 눕는다. 침실에서 티브이(TV)를 치운다. 잠자리에서 일하지 않는다.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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