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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분 명상…‘힘들다’는 감정, 회피 말고 인정하기 [ESC]

등록 2023-05-27 09:00수정 2023-05-28 11:49

자는 것도 일이야

화병 유발하는 위협·박탈·수치·굴욕·자책·좌절감
휴일 드라마 몰아보기로 현실 회피했으나
소모적 일에 시간 탕진하고 후회만
명상으로 위로하니 오랜만에 깊이 잤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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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꿀잠의 적이다. <자존감 수업>을 쓴 윤홍균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말했다. “밤에 잠이 안 오는 건 불안해서고, 새벽에 벌떡 깨는 건 화가 나서”라고. 요새 나는 후자다. 잠 못 자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그 양상이 다르다. 불면과 과면이 교차하면서 출몰한 증세가 있으니 새벽녘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는 거다. 화병일까. 왜 그런 거 있잖나. 옛날 할머니들이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쳐대는.

화병은 왜 생기는가. 화가 나서다. 정확히 말하면 화는 나지만 분출하지 못해서다. 엄격한 가정환경 때문이건, 여성에게 수동성을 강요하는 성별 고정관념 때문이건 후천적으로 분노 조절이 너무 잘 되도록 교육받은 게 문제다. 분노는 어떨 때 싹트는가. 영국 심리학자 스티븐 파인먼의 저서 <복수의 심리학>를 보면 신동근 정신의학 전문의가 추천사에 쓴 말이 있다. 분노를 유발하는 데는 7가지 감정이 있다고. 현재 내게 해당하는 건 6가지다. 좀 보자.

첫째, 제도는 평등하지 않고 기회는 공평하지 않으며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고 느낄 때 엄습하는 생존에의 위협감. 둘째, 갑질하는 상사나 재벌을 보며 내게 분배돼야 할 이익을 그들이 가져갔다고 느낄 때 밀려오는 박탈감. 셋째, 타인들 앞에서 명예를 훼손당했을 때 느끼는 수치심과 굴욕감. 넷째, 등에 칼이 꽂힐 때 심리적으로 관통하는 배신감. 배신당한 자신을 어리석게 여겨 자책하게 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감정. 다섯째, 상대방 필요에 의해서만 착취당하고 이용당했다는 느낌. 당해서는 안 될 일을 당했다고 느끼게 하며 인간의 존엄을 심각하게 손상하는 감정. 여섯째,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좌절감과 절망감.

아, 비릿하기 짝이 없는 감정들. 구질구질하다. 내면이 곤궁한 상태인 내가 싫어지…려다 그러지 않기로 한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딱 여기까지만. 내 감정을 인정하는 데서 멈추기로 한다. 피해자인 나를 비난하거나 경멸하지 않기로 한다. 이용을 넘어 악용당한 내가 멍청했고, 내가 닥치고 침묵해야 했고, 내가 권위주의와 권력에 더 순응했어야 한다는 자조는 가해자의 자기합리화를 강화해줄 뿐이니까.

최근 심리상담을 받았다. 누군가에겐 별일 아니겠으나, 내게는 별일이다. 이걸 대놓고 말하기까진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깡나연’이라는 별칭을, ‘깡다구’라는 말을 좋아했다. 나는 내 약한 모습을 인정하기도, 드러내기도 싫었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되길 원했고, 실로 외로움을 타거나 겁이 많은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혼자서도 뭐든 곧잘 했다. 여행하기나 밥을 먹는 소소한 행위부터 진지한 문제 해결까지. 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여겼다.

이런 내가 상담을 받게 된 건 내 회피행동에 문제의식을 느껴서다. 특정 사건 후 한동안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과수면이 몰려오면 퇴근하자마자 옷만 벗고 허물어지듯 잤고, 불면이 극심할 땐 희뿌옇게 동이 틀 때까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휴일에는 넷플릭스나 티빙으로 드라마 몰아보기만 했다. 여행할 기력도 없었다. 술 생각도 안 났다. 모임도 피했다. 나에게 무해한 수준을 넘어 도움을 주려는 이들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나 타인들 앞에선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오래도록 연마한 포커페이스일 뿐이었다. 램프의 요정을 램프에 가두고 뚜껑을 덮는 것처럼, 들끓는 분노를 차폐해버리다 보니, 우울감과 무력감이 슬그머니 똬리를 틀었다. 거기서 허우적대는 나 자신을 한심해하는 것. 비난은 나를 향했다.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버림으로써 목표를 상실하게 된 것도 문제였다. 자타공인 워커홀릭이었는데, 예전처럼 화장실에서도 일 생각에 골몰하던 습벽이 사라져버렸다. 올봄은 일상의 균열을 버텨내는 시간이자, 인간이란 어디까지 추잡하고 사특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자문하게 된 계절이었다. 나는 내 무기력을 탄식하며 상담가에게 말했다.

“할 일이 산적한 상황에서 드라마만 봤더니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일에 시간을 탕진하고 나면 후회가 막심하고 죄책감이 드는데, 막상 다음날이 되면 또 다른 드라마를 찾아서 봐요. 별 관심도, 재미도 없는 드라마인데도요. 이런 제가 한심하고 초라하고 찌질해 죽겠고...수면은 엉망진창이고요.”

몇 차례 대화를 나눈 뒤 상담가가 그랬다. 내가 소위 ‘힘들다’는 감정을 ‘쪽팔린다’고 여기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불안이나 우울 같은 감정을 잘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 보기로 회피하는 거라고.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아, 내가 지금 회피하고 싶어 하는구나. 뭘 회피하려는 걸까? 어라, 나는 지금 화가 난 거구나, 불안한 거구나, 그렇게 내 감정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회피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난 힘들 때 이런 쪽으로 도망치려 하는구나, 인정하고 충분히 이해해주라고. 판단하거나, 평가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해주라고.

지난주부터 무력과 우울로 위장된 분노를 배출하기 위해 시작한 루틴이 있다. 매일 아침 10분 명상이다. 잡념을 없애기보다는 자기 위로를 위한 명상에 가깝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정말 잘해왔다고, 수고했다고, 나 자신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러면 이상하게 눈물이 찔끔 난다. 그래, 타인이 제아무리 나를 망가뜨리려고 해도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뭐가 문제겠어. 지금껏 이보다 더한 일들도, 아니, 비교조차 무의미할 만큼 더한 어려움들도 잘 이겨내 왔잖아? 이렇게 날마다 조금씩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인정해준다면 언젠가 화병은 자취를 감추고 숙면의 천사가 내게 강림하지 않을까.

벌써 효과가 발휘되는지 어째서인지 어제는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수면의 질이 폭망할 정도로 게임이나, 음주, 넷플릭스 시청에 몰입한다면 내면의 고통이 뭔지 들여다봐야 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글로 쓰거나 말로 풀어내면 도움이 된다. 특히 상냥함과 친절함, 웃는 얼굴을 강요당하며 자란 여성들이여, 사회가 여성의 분노에 관대하지 않다는 이유로 분노를 차단하려다 우울이나 무기력에 잠식되지 말자. 분노는 발산하고, 나에겐 귀한 마음을 주자.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

방송기자를 거쳐 디지털 뉴스매체, 디지털 영화 매체를 맡고 있다. 엠비티아이(MBTI) 중 파워 제이(J) 성향이지만, 10년 이상 장기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책, 영화, 명상이 에너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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