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삼청동’의 전경. 기와 같은 기존의 박공지붕이 있는 작은 갤러리나 미술관 같다. 임지선 제공
어느 도시를 가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구글 지도를 켜고, ‘이솝’(Aesop)을 검색한다. 나라마다 꼭 매장이 한두개 정도씩 있는데, 대개 주요한 대도시 위주로 있지만 꼭 상권 논리에 입각해 자리를 잡지도 않는다.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나 이야기, 분위기에 더 좌우된달까. 가장 뜨는 곳에 늘 있진 않지만, 가장 가고 싶은 곳에 늘 있는 브랜드 이솝.
사실 이솝의 공간·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글은 많다. 심지어 이에 대한 논문도 여러 건 검색될 정도니까. 그럼에도 ‘이솝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어본다. 브랜드로 공간을 읽을 때, 특히나 매장을 통해 도시를 읽어낼 수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게다가 이솝은 한 도시를 대변하는 어마어마한 랜드마크나 상징성을 갖는 비주얼을 죄다 때려넣은 모습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아니다. 오히려 여행하며 지역의 이솝 매장을 찾아갈 때마다 정작 코앞에 가서 헤맬 때가 왕왕 있을 정도.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달까, 쭉 걸어오던 거리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곳. 굉장히 은근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이솝은 늘 같은 듯 다른 모습을 유지한다. 그 미묘한 다름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솝 한남. 마치 가마 내부에 들어온 것 같은 붉은 벽돌 마감이 인상적이다. 임지선 제공
이솝은 도시를 말한다. 그 도시를 다 보지 않더라도, 이솝에 가면 그 도시를 알 것만 같다. 이솝은 그 디자인과 브랜딩, 메시지와 공간을 보았을 때 국적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은 브랜드다. 1987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시작한 스킨케어 브랜드라지만 미국, 혹은 유럽, 아니면 동양적인 느낌이 복합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솝 본사 리테일 건축 담당 매니저에 따르면 이솝 매장은 현지 매장 개발팀, 본사 디자인팀, 그리고 건축가가 모두 모여 짓는다고 한다. 지역적 특색과 브랜드 철학, 그리고 미적 가치를 한곳에 담기 위함이라 하는데, 아마 우리가 어느 도시를 가든 이질감 없이 매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솝의 아이덴티티를 아낌없이 느끼는 것은 이러한 까닭일 것이다.
한국에는 소개하고 싶은 이솝 매장이 세개 있다. 삼청동, 한남동, 가로수길. 역시나 강남역, 명동 같은 전통적인 주요 상권이라고 할 순 없지만 왠지 마음에 드는 이성과 약속을 잡을 때 먼저 생각나는 동네다. “사고 싶다”의 느낌보다 “걷고 싶다”의 느낌이 어울리는. 이솝은 늘 그런 느낌이다. 이솝 한남의 경우 마치 가마 내부에 들어온 것 같은 붉은 벽돌 마감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는 흙의 질감이 느껴지는 한국 전통 가마 내부의 모습과 분위기를 담았다고 한다. 약간 낮은 층고에 야트막한 경사길에 있는 건물(사운즈 한남)의 위치, 그 안의 흙을 파내어 만든 듯 붉고 아늑한 빛의 매장. 한국적 이야기를 은근하게 담으면서도 그 어느 시선으로 봐도 특정한 결로 치우치지 않는다.
삼청동의 매장도 다른 듯 닮았다. 목재와 스테인리스가 조화롭게 내부를 구성하고 기와 같은 기존의 박공지붕이 유지되어 있다. 삼청동을 걷다 이곳을 보면 작은 갤러리나 미술관 같다고 느낄 것이다. 삼청동 특유의 은행나무 잎 가득한 거리와 오래되고 손때 묻은 낮은 건물들, 그리고 예술이라는 이 지역의 아이덴티티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
가로수길의 이솝은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든 한지를 벽면에 사용하고, 직접 공수한 소나무 소재의 카운터가 자리 잡고 있다. 어쩐지 한국 전통 건축의 느낌이 나면서도 너무 치우쳐 불편하지 않은 곳. 화려한 외관을 갖고 있진 않지만 어쩐지 시선을 끌며 한국의 공간이란 느낌을 은근히 말하고 있다.
비슷하지만 다른 결을 담아내기가 어디 쉬운가. 도시의 의미와 분위기를 그때마다 담아내는 것 역시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일. 이솝의 다름은 지역에서 온다. 그 장소, 위치, 공간이 담고 있는 많은 것들은 바로 그 지역에서 자라나고 배어 나오기 때문에 다르고 미묘하다. 우리는 그러기에 도시를 경험할 때 겪는 작고 수많은 디테일을 이 매장 한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다시금 이솝을 꺼내 들고 기억과 경험을 다듬어 글을 썼다.
이번 가을을 기점으로 하늘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비교적 안전한 국가들 위주로 항공권 판매가 이뤄지면서 나도 그간 꽤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항공권 앱을 다시 켜본다. 가보지 못한 도시의 이솝을 천천히 검색하며 지도를 들여다보는 건 항공권 검색 뒤에 따르는 작고 한가로운 취미가 된다. 만약 2022년 휴가 계획으로 처음 가보는 도시를 선택하게 된다면, 꼭 이솝을 통해 도시의 이야기를 경험하러 가보길 바란다. 선반의 재료, 벽돌, 수전과 싱크볼 하나까지도 그 지역이자 도시를 담고 있으니까.
임지선 (브랜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