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토마토 소스를 얹은 샤르퀴트리와 켄들 잭슨 샤르도네. 권은중 제공
미국인들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날씨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조사를 해보면, 다른 지역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캘리포니아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가상의 캘리포니아 이웃을 의식해 자신이 가진 행복의 조건을 면밀하게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초점 착각’(focusing illusion)이다.
내가 그랬다. 미국 와인은 비슷한 가격대의 프랑스의 와인에 견줘 결코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본기가 더 좋은 와인도 많다. 어떨 땐 과하다 싶다. 그래서 프랑스 평론가들은 미국 와인의 농밀함을 ‘잼’이라고도 빈정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도 비슷한 가격이면 프랑스 화이트에 더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착각이 아니라 프랑스 와인에 대한 맹신이었다.
켄들 잭슨의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는 이런 착각을 교정해준 캘리포니아 와인이다. 이 와인을 처음 찾아 마신 이유는 ‘연설의 달인’으로 불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긴다는 뉴스를 접하고서였다. 내가 오바마를 좋아했던 이유는 연설도 연설이지만, 소수자이면서도 당당한 그의 태도도 한몫했다. 그는 흑인이고 이슬람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어떤 그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오바마가 집에서 즐겨 마시는 와인이라니 궁금했다.
와인의 첫 느낌은 농밀함이었다. 과일 향, 바닐라 향 그리고 버터 향이 느껴졌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고전적인 양조법을 따라 오크통에 7개월간 숙성시키고 바토나주(bâtonnage, 발효 후 침전된 효모 등을 저어주는 과정)를 했기 때문이다. 바토나주를 하면 향과 바디감이 중후해진다. 또 이 와인은 서늘한 기후의 캘리포니아 해안가 샤르도네로 만들어 산도가 높다. 이 와인은 산도와 풍미 그리고 바디감이 좋아서 해산물 파스타·피자 같은 일상식이나 치즈·샤르퀴트리같이 가벼운 안주와는 물론이고 생선구이나 가금류 같은 묵직한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이 와인이 미국에서 26년 동안 샤르도네 와인 가운데 판매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이런 장점 덕분이다. 가격도 프랑스 샤르도네에 견줘 저렴하고 맛도 복잡하지 않고 직설적이다. 이를 단순하게 여기고 이 와인을 쉽게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의견이 좀 다르다. 켄들 잭슨은 1982년 문을 연 비교적 젊은 와이너리다. 그래서 실험적이다. 이 와이너리는 특이하게 샤르도네만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를 비롯해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샤르도네만도 6종류나 된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와인부터 40년 넘은 나무에서만 수확한 포도로 빚어 장기숙성한 샤르도네까지 다양하다.
더 좋은 건 이 와이너리가 대중과의 소통에 힘쓴다는 점이다.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프랑스 등 구대륙 와이너리와 달리 켄들 잭슨은 누리집을 통해 자신의 와인에 대한 소개는 물론 페어링 할 수 있는 음식 등을 참 자세히도 알려준다. 또 서노마, 내파밸리, 오리건 등 주변 지역의 기후·지질과 포도 품종에 대한 설명도 입체적이다. 농밀한 맛뿐 아니라 이 와이너리의 친절함은 미국 와인에 대한 나의 착시를 바로잡아주기에 충분했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대추 토마토 소스를 얹은 샤르퀴트리와 켄들 잭슨 샤르도네. 권은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