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엠베(SMW) 베를린 리슬링. 권은중 제공
독일 리슬링은 와인의 북방한계선인 북위 50도 안팎에서 자란다. 이 지역은 춥고 흐리다. 그래서 포도 성장이 늦다. 하지만 이런 역경은 리슬링에 높은 당도와 산도를 선물한다. 라인강 지역이 중세 때부터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했던 까닭이다.
독일 리슬링에 반한 점은 당도가 아니라 산도였다. 나는 오랫동안 리슬링을 단 술로 생각해서 피해왔다. 그래서 리슬링을 고르는 첫번째 기준은 ‘달지 않아야 한다’였다. 주로 마시는 리슬링은 낮은 등급의 트로켄(영어로 ‘드라이’란 뜻)과 카비네트다. 하지만 등급이 낮아도 이 와인의 맛은 탁월하다. 달지도 시지도 않은 균형감에 사과, 멜론, 풀꽃 향이 가득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독일 리슬링에 우리집 냉장고를 내어주고 있을 때, 내 눈에 띈 와인이 베를린이었다. 이 와인이 눈길을 끈 건 지난해 국내 치킨 페어링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자체 광고였다. 치킨과 어울린다면 한식과도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와인과 함께 먹은 건 숙성 삼치회였다. 나는 삼치회를 갓김치와 젓갈을 넣은 된장과 함께 쌈으로 즐긴다. 양념치킨보다 더 강렬한 풍미의 한식 메뉴다. 직접 담근 14도 청주(밀누룩과 귀리누룩 반반 사용)와 함께 비교 시음해봤다.
이 와인이 치킨 페어링 1위를 했다는 건 허풍이 아니었다. 10도로 도수는 낮지만 진한 산미와 약간의 탄산이 갓김치와 된장의 진한 향취를 경쾌하게 바꿔줬다. 14도 청주의 단맛과 높은 알코올도 삼치회와 잘 어울렸지만 이 리슬링의 발랄함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에도 나는 이 와인을 불족발, 김치와 같은 강한 양념의 한식과도 먹어보았다. 모두 잘 어울렸다. 특히 냉동실에 상비해놓고 있는 우리 동네 명물 가래떡 떡볶이와는 찰떡궁합이었다.
와인서처 등 해외 와인 평가 누리집에서 판매 지역이 한국에 국한된 것으로 볼 때, 이 와인은 우리나라에서 기획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으로 보인다. 와인의 생산자는 한국에도 꽤 알려진 독일의 에스엠베(SMW)다. 에스엠베는 1983년에 자르강과 모젤강 유역의 32개 와이너리가 모여서 설립됐으며 독일 최우수 스파클링 와인상을 여러차례 수상한 관록 있는 생산자다.
그런데 특이하게 와인의 레이블에는 한국어와 독일어로 “무너뜨릴 벽은 많다”라고 적혀 있다. 분단국가인 독일과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나의 경험을 놓고 보면, ‘리슬링은 달다’라는 나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렇지만 이 와인이 무너뜨리고 싶은 벽의 하나는 ‘치킨에는 맥주’라는 한국적 공식인 것 같다. 치킨과의 페어링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한국 맥주 시장 잠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가격도 1만원대로 저렴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맛의 다양화 차원에서 도전해볼 만한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