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따뜻한 집이 되도록 해가 드는 남쪽에는 큰 창을 내었다. 계단실에는 1층부터 3층까지 수직으로 긴 창을 만들었다. 임호림 제공
주택의 외형과 내부의 디자인을 동시에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는 창호다. 창은 햇빛을 끌어와 조명의 역할을 하거나 바깥 풍경을 담는 액자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닫혀 있을 때는 벽의 일부가 되어 단열과 방음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하고 열어둘 땐 환기와 온도 조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창호가 제 기능을 하게 하려면 크기와 개수, 형태와 위치를 세심히 고려해 설계부터 반영하는 편이 좋다. 우리 집은 남서쪽을 바라보는 면에 큰 창을 많이 배치해 낮 동안 빛이 충분히 들어오도록 했다. 1~3층을 연결하는 계단실에도 남쪽으로 수직의 긴 창을 내어 밝게 했다. 북쪽을 향하는 면에는 각 층에 소방창 하나씩만을 두었다. 유리라는 재료의 물성 탓에 창 면적은 열손실과 비례한다. 역설적이게도 추운 계절 낮에는 태양광을 투과시켜 집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난방 효과를 고려한다면 해가 지나가는 남쪽 창의 전체 면적이 넓어야 하고 상대적으로 추운 북쪽 면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짓는 집의 구조에 따라 창호 선택의 기준은 달라진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외벽이 두꺼운 집은 이중 창호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우리 집처럼 경량목구조로 짓는 주택은 대부분 시스템 창호를 사용한다. 20~30년 전에는 집 안쪽에 맑은 유리창을 두고 바깥쪽에 불투명 유리를 끼운 창을 하나 더 달기도 했다. 두 겹의 창틀 사이에 생긴 공기층은 방음과 보온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때 단점은 창호 프레임이 두껍고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시스템 창호다. 일반 창호가 미닫이나 여닫이로 열리는 것에 비해 시스템 창호는 틸트(tilt), 슬라이드(slide), 턴(turn)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특수한 기능의 하드웨어가 장착되어 있다. 유리 사이에 특수한 가스를 채운 삼중 유리를 끼워 이중 창호보다 단열성, 기밀성, 수밀성, 방음성, 내풍압성이 더 뛰어나게 한 것은 물론, 견고하며 가볍다는 장점도 있다.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는 것은 큰 단점이다.
시스템 창호는 크게 북미식과 유럽식(독일식)으로 나뉜다. 북미식은 프레임이 얇기 때문에 가볍고, 위아래로 창이 열린다.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국 영화에서 부모님 몰래 창문을 열고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았다면 바로 그때 등장하는 것이 북미식 창호였을 가능성이 높다. 케이스먼트(casement)와 오닝(awning) 방식도 북미식 창호가 갖는 특징이다. 케이스먼트는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려 프레임 안에 숨어 있는 기계장치를 작동시켜 창을 수평으로 여는 방식이고 오닝은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바깥 위쪽으로 들어올려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북미식 창호는 대부분 공장에서 미리 생산된 기성품으로 수입 유통되기 때문에 규격을 벗어난 크기는 설치하기 어렵다.
틸트 앤 턴 방식은 요리할 때 음식 냄새가 빠져나가도록 창의 위쪽만 살짝 열 수 있고, 환기를 위해 창을 모두 개방할 수도 있다. 닫아두었을 때는 견고한 기계식 구조로 잠겨 밖에서는 열기 어렵다. 임호림 제공
유럽식 창호는 기능성 중심으로 만들어 프레임이 두껍고 무겁지만 사용자의 편의성은 더 높은 편이다. 이전에는 독일 제조회사에서 직수입하는 제품이 주류였는데, 국내 기업들도 생산을 시작해 지금은 유럽식이 시스템 창호의 대명사가 되었다. 열리는 방식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용도를 고려해 선택하고 주문하기를 권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고정(fix)창이 가장 저렴하고 여러가지 기능이 들어갈수록 비싸진다. 틸트는 창의 상부를 10~15도가량 건물 안쪽으로 기울이듯이 열어 환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틸트만 되는(T/O, tilt only) 방식 이외에도 틸트와 여닫이 기능을 조합한 틸트 앤 턴(T/T, tilt and turn), 틸트와 미세기를 조합한 틸트 앤 슬라이드(T/S, tilt and slide) 등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것들이 있다. 우리 집에는 주로 틸트 앤 턴 방식의 창들을 썼는데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많은 기능을 담고 있는 만큼 잘못된 조작으로 인한 고장과 파손에도 대비해야 한다. 열고 닫는 방식을 정확히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제조회사의 애프터서비스 보장 기간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긴 펜던트 등을 달아 밝고 따뜻한 빛 아래에서 식사나 독서를 하기에 좋다. 이곳은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임호림 제공
‘가성비’와 ‘가심비’라는 말이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꽤 괜찮은 성능의 물건을 선택할 것인지, 심리적 만족을 위해 좀 더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 제품을 선택할지 고민할 때 이 두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조명이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사실 조명은 켜고 끄는 것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다. 하지만 꺼두었을 때도 디자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강남의 고급스러운 전시 매장에 가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본다는 훌륭한 디자인과 놀라운 가격의 조명이 많지만, 을지로 조명 상가나 조명 전문 온라인몰에서도 무난한 디자인에 가격 착한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조명은 천장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전구를 삽입하는 다운라이트(downlight)로 계획했다. 집중적인 빛이 필요한 주방의 조리대와 거실에는 레일 조명을 달기로 했다. 필요에 따라 쉽게 전구를 추가로 달거나 뺄 수 있다는 것이 레일 조명의 장점이다. 방의 테두리(커튼 포켓)와 계단, 현관 입구에는 가늘고 긴 엘이디(LED) 조명을 매입해 눈부시지 않지만 적절한 밝기를 만들었고, 아일랜드 식탁처럼 포인트가 되는 곳에는 펜던트 등(천장에서 전선을 수직으로 늘어뜨리는 조명등)을 달았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조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전구의 색에 따라 전구색(웜화이트, 노란색에 가깝다), 주광색(쿨화이트), 주백색(내추럴화이트), 백색(퓨어화이트) 등으로 나뉘는데 형광등 느낌이 나는 차가운 백색을 싫어하는 우리 가족은 모든 조명에 전구색을 쓰기로 했다. 차분하고 따뜻한 집이 완성되어간다.
임호림(어쩌다 건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