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원웨어마스터 김천식 차장이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파타고니아 직영매장 작업대에서 옷을 수선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원웨어 서비스 이용하고 싶어 왔는데요.”
쌀쌀한 어느 겨울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직영점에 잘 차려입은 젊은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척 보기에도 연륜이 꽤 되어 보이지만 배색이 세련된 플리스 풀오버가 들려 있었다. 표면에 복슬복슬한 양털 같은 보풀(파일)을 일으켜 만든 플리스 제품은 보온성이 좋아 따뜻하면서도 가볍고 빠르게 건조되는 특성 덕에 겨울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래 입을수록 양털처럼 굵은 보풀이 생기는데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으며 복고풍의 멋이 더한다.
등산가이자 서퍼인 이본 슈나드가 설립한 친환경 글로벌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사명 아래 자원 재활용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11년 11월25일 이 회사는 <뉴욕 타임스>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실었다.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더 적게 생산하도록 소비자가 기업에 더 많이 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파타고니아의 원웨어 서비스는 제품을 고쳐서 입을 수 있도록 돕는 수선 서비스다. 낡고 찢어진 옷을 수선해 오래 사용하는 것이 급진적인 환경운동이라고 생각한 회사의 여러 캠페인 가운데 하나다.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고객이 수선을 신청하면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진행하는데 다른 브랜드의 옷도 맡길 수 있으며 품목도 가리지 않는다. 비용은 무료. 미국에선 2013년부터, 한국에선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7년째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이 서비스를 담당해온 전문가는 경력 50여년의 김천식(72·원웨어마스터) 차장이다. 그는 2015년 파타고니아코리아가 원웨어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각종 페스티벌과 아웃도어 현장에서 일을 해왔다. 팝업스토어 등 일시적인 행사 때마다 유감없이 그의 솜씨가 발휘되었다. 이를 눈여겨본 회사는 2019년 10월, 서울 가로수길 직영점을 시작으로 수선 서비스를 상시로 운영하기로 하면서 사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당시 69살이던 김 차장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기 위해 60살 정년퇴임 조항을 없애버린 것이다. 지난달 26일, 가로수길 파타고니아 직영점에서 김천식 차장을 만났다. 그는 겨울철 스키 시즌을 맞아 강원도 홍천과 서울을 오가며 수선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원웨어 튜토리얼’ 유튜브 영상을 보면, 그가 일러주는 바짓단이나 허리 줄이기 같은 간단한 옷 수선 방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굵고 투박한, 연륜 가득한 손에 바늘과 실이 들리면 마법같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파타고니아 직영매장 원웨어존에 선 김천식 차장.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고쳐서 아들에게 물려주는 옷
―파타고니아 입사 전 수선 경력을 간단히 알려주세요.
“고향이 서울이에요. 1950년 안국동에서 태어났거든요. 1969년부터 종로2가에 있던 아버지 양복점에서 재단과 봉제를 배웠으니까 경력은 50년이 훌쩍 넘었죠. 아버지가 30년 정도 양복점을 하셨거든요. 그 뒤에 저도 경기도 안산에서 양복점을 차렸고 그 뒤 의류 자재 회사를 운영하거나 수선을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무렵에는 일본 도쿄 우에노에서 6~7년가량 옷을 수선하거나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일감이 늘었을 것 같아요. 어떤 고객들이 주로 찾아오나요?
“요즘은 나이 드신 분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많이 찾아옵니다. 동절기에 수선 의뢰가 많습니다. 캠핑장에서 ‘불멍’을 하다가 옷에 구멍이 나서 찾아오는 분들, 10~20년 전 미국에서 산 파타고니아 의류를 맡기러 오는 분들도 있죠. 간단한 구멍에는 비슷한 실을 찾아 꿰매거나 와펜을 붙여줍니다. 플리스 제품 같은 경우엔 긴팔 소매를 잘라서 조끼로 만들기도 합니다. 옷을 다 해체해서 새로 붙이면서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땐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옷이 탄생하는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면요?
“언젠가 한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10~20년 전에 샀다는 캐주얼 의류를 수선하러 왔었는데 10대 아들한테 자기 옷을 물려주고 싶어서 낡은 부분을 리폼하고 크기를 줄이고 싶다고 하더군요. 원하는 대로 수선을 했고, 부모와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굉장히 뿌듯했어요. 고객들이 만족해할 때가 가장 흡족합니다. 버릴까 말까 하다가 고쳐서 입겠다고 결심하고 수선한 뒤에 나만의 디테일이 생긴 옷을 얻게 됐다며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어려운 점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의류는 디자인이 계속 바뀌니까, 저도 몇십년 경력을 갖고 있지만 늘 꾸준히 배워가며 한다는 이런 마음이죠. 연구도 해야 하고요. 새로운 원단과 소재도 계속 출시되니 그 또한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펴봅니다. 기술과 학문은 끝이 없다잖아요. 오늘 수선은 어떻게 하면 예쁘게, 그리고 빨리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옛날에 쓰던 원자재를 써달라는 고객들도 계시는데, 지금 더는 자재가 생산되지 않아 찾을 수 없을 땐 난처할 때도 있어요.”
(브랜드와 품목을 가리지 않는 무상 수선 서비스이기 때문에 동물 모피코트 기장 수선 등 다소 난감한 의뢰도 있었다. 그 뒤 회사는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동물복지에 신경을 쓰는 브랜드 철학과 맞지 않는 제품 같은 경우에는 수선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젊은 수선인 늘어나길
―시니어 인력으로서 사규까지 바꿔 채용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같은 일이지만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보니 애사심, 자부심 같은 게 확실히 생기더군요.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중시하니까 저 또한 그런 부분에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은퇴 뒤에 일에서 손 뗀 친구들이 무척 많은데 저를 부러워해요.(웃음) 손녀가 고등학생인데 용돈을 쥐여줄 수 있으니 좋죠.”
―요즘 헌 옷을 사 입는 빈티지 패션도 유행하고 있고, 수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기술이란 것은 무형의 재산이고 한번 배워두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젊은 사람들이 수선을 많이 익혔으면 좋겠어요. 새 옷을 사더라도 고쳐 입어야 할 때가 많고, 수선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젊은 후속 세대들이 수선인으로 많이 양성되었으면 합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굵고 투박한 그의 손에 바늘이 들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연륜이 쌓인 김천식 차장의 손.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파타고니아 원웨어존.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구멍 난 옷에는 파타고니아 와펜을 붙이기도 한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겨울철에 수선 의뢰가 들어오는 제품 상당수가 캠핑 때 불에 그을어 구멍이 난 옷들이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파타고니아 원웨어마스터 김천식 차장이 옷을 수선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