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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억지로 자지 말고, 억지로 깨어 있으라!

등록 2022-02-10 13:59수정 2022-02-10 14:29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예측불허한 상황도, 마음속 뒤엉킨 실타래도. 종국엔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다. 단지 그 시간을 감내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몫일 터.

밤을 꼴딱 새우고 출근한 적이 있다. 1시간이나 2시간밖에 못 잔 것도 아니고, 아예 꼴딱. 동트는 걸 보면서 오늘 하루 죽었구나… 했는데, 으응? 의외로 멀쩡했다. 에스프레소나 레드불 같은 카페인을 때려 붓지도 않았는데. 신묘하지 않나. 잠을 자건 못 자건 일상은 오십보백보라니.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 꽤 많으리라. 잠을 설친 새벽녘에는 좀비에 가까웠지만, 낮이 되니 그럭저럭 살아난 경험. 과학적 근거가 있다. 햇빛이 잠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뭔 말이냐. 인간은 항상성의 생물이라는 것이다. 해가 뜨면 뇌와 몸이 활동하고, 해가 지면 졸리는.

“아니, 이 자연의 섭리에 나는 왜 한쪽 발만 담근 신세인가. 해가 뜨면 깨어 있고, 해가 져도 깨어 있고?”

전국 50만 불면인들이여, 이런 한탄은 하지 말자. 잠만 더 못 자게 되니까. 머리만 대도 자는 이들은 말한다. 밤을 새웠다면…, 다음날 밤에 뻗으면 되잖아? 삑. 아무 말입니다. 밤샘 직후라고 꿀잠이 보장되진 않는다. 저마다 평균값이 다르다. 축적된 경험치로 보건대, 나는 D+2일이다. 그쯤에야 녹다운되듯 곯아떨어지더라. 합리적(?) 불만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왜 하루는 24시간이고 난리인가. 48시간, 아니 72시간이면 어때서? 와중에 물개박수 치는 분 있으니 그가 누구냐. 바로 우리의 불면증 동지, 악동뮤지션 수현님이시다.

“불면증 때문에 잠을 잘 못 자요. 아예 이틀 정도 안 잔 적도 있어요.”

수현이 한 예능프로에서 한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며칠을 새우다시피 한 뒤에 자는 잠은 사탕 같고 초콜릿 같다. 다디단 잠이다. 밥도 며칠 굶다가 먹으면 얼마나 맛있나. 잠도 그렇다. 공복에 들어온 탄수화물처럼 쫙쫙 흡수된다. 꿈 한자락 꾸지 않고 깊이 자는 잠. 수면압이 극에 달한 상태다. 수면압이란 수면 욕구가 농축된 힘이다. 수압을 떠올리면 쉽다. 물이 고일수록 수압이 높아지는 이치와 비슷하다.

수면압이 강하면 깊은 잠에 빠진다. 약하면 그 반대다. 바로 여기서 수면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안 잘수록 잘 자게 되는 아이러니. 요즘 불면계에 유행하는 수면제한법은 이걸 이용한 치료법이다. 뭔데 그리 야단법석일까. 좀 보자.

음, 원리는 별게 아니다. 일부러 수면 박탈을 반복해 잠을 자는 원동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불면증 환자들이 어떤가. 자도 자도 잔 것 같지 않으니 짬 나는 대로 눕는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된다. 그래 봤자 미세수면만 취하게 될 공산이 크다. 미세수면은 또 뭐냐. 얕고 짧은 잠만 자다 깨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수면제한법을 권하는 국내 신경의학 의사가 한 말은 이거다. “수면의 양을 포기하고 수면의 질을 취하라.”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자려고 노력하면 못 잘 것이요, 안 자려고 노력하면 꿀잠 잘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생즉사 사즉생”. 어어, 그러니까 불면일수록 자는 시간을 줄여라? 그래야 수면압이 높아져 꿀잠 잔다는 뭐 그런 얘기네.

반성의 시간. 나는 이번 연휴 때 내리 잤다. 자도 자도 졸렸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자야 한다고 믿었다. 최근 근무 환경이 급변해 일주일간 잠을 잘 못 잤다. 모자란 잠을 벌충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고, 몰아서 자면 되겠거니 했다. 착각이었다. 결과적으로 미세수면만 취한 꼴이었고, 침대 위에서 뭉갠 것에 불과했다. 연휴 마지막날 밤, 출근을 앞둔 내 정신은 얼마나 또렷했던가. 으이구, 미련한 영혼 같으니. 자려고 애쓸수록 긴장과 낙담을 껴안고 몸부림치는 나는 그야말로 불면의 덫에 포획된 짐승이 아니었으랴.

침대에서 구겨진 채 며칠을 보내서일까. 담이 와서 고개가 안 돌아가더라. 도수치료사를 찾아 갑자기 왜 이렇냐고 물었더니 그가 말하길, “갑자기 그러는 건 없어요. 다 시간이 걸려요. 근육이 경직되기까지도, 그걸 풀기까지도요.”

시간이 걸린다…. 그래,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예측불허한 상황도, 마음속 뒤엉킨 실타래도. 종국엔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다. 단지 그 시간을 감내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몫일 터. 나는 밤샘보다도 지난한 삶의 터널을 몇번이고 지나오지 않았던가. 잠 좀 못 자도 잘 살아진다는 사실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거면 됐지 뭐. 내일은 또 내일의 햇빛이 쏟아질 테니.

참고로 수면제한법을 아직 시도해보진 않았다. 이번에는 단지 다음 연재의 포석을 깔고 싶었을 뿐이다. 조만간 시도한 뒤 쓸 예정이다. 제대로 하려면 수면일지와 인지요법을 병행해야 한다. 내 수면은 72시간 패턴으로 조정될 확률이 높은데, 기왕이면 동지들과 함께하고 싶다. 악동뮤지션 수현이 제격이겠다. 아니면 아이유나. 그들과 불면클럽 조성하면 물개박수 좀 쳐주시라,는 헛소리인데.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걸까.

미, 미안합니다. 수면압 최고치예요.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1 아이유의 불면증 퇴치법. 눈을 감고 한가지 이미지를 떠올린 뒤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기. 예컨대 사과, 귤, 회전목마 같은 것들. 거기에 색칠까지 하는 건 업그레이드 버전. ★★★★☆

2 김석재 신경과 전문의가 말한 20분 법칙. 침실에서 20분이 지나도 잠이 안 오면 다른 방으로 옮겨간다. 옮긴 방의 조명은 밝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지루한 책을 읽으면서 졸릴 때까지 기다린다. 잠이 안 오는데도 침실에 누워 있으면 미세수면이 반복되고 수면압이 낮아지면서 깊은 잠을 못 자게 될 뿐이다. ★★★★☆

3 그래도 잠들지 않는다면 20분 법칙을 밤을 새워서라도 반복한다. 밤샘했더라도 수면압이 높아지면 다음날 양질의 수면을 취할 가능성이 커지니 걱정은 노노. 이때 낮잠은 절대 피해야 한다.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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