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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꿈꾸던 집, 살림살이 넣고 ‘현타’가 왔다

등록 2022-02-11 08:59수정 2022-02-11 09:24

너도 한번 지어봐: 비움과 채움
새집에 가져올 것과 바꿀 것 정리
가전제품 크기 파악해 설계에 반영
빼고 뺐는데도 여전히 많은 물건들

이상과 현실은 다르게 마련이다. 이처럼 비어 있던 공간에서 느껴지는 차분하고 고요함은 이삿짐이 들어온 뒤 모두 사라져 버렸다. 가구를 넣은 뒤의 모습. 임호림 제공
이상과 현실은 다르게 마련이다. 이처럼 비어 있던 공간에서 느껴지는 차분하고 고요함은 이삿짐이 들어온 뒤 모두 사라져 버렸다. 가구를 넣은 뒤의 모습. 임호림 제공

정해진 공간에 가구류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간과 동선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벽면과 일체가 되는 빌트인(붙박이) 가구와 가전제품을 설치하게 되면 배치에 대한 고민을 줄일 수 있고 깔끔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내부 설계를 하기에 앞서 건축사 ㅎ소장에게 예전에 살던 집에서 가져올 것과 새로 구입할 것의 목록을 정리해서 전달했다. 사용자의 필요를 설계에 반영하면 만족스러운 공간 구성은 물론이고, 새것의 구입과 헌것의 처분에 따르는 예산 지출까지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큰방 안쪽에 연결된 드레스룸에는 예전 집에서 사용하던 행거를 가져다 달기로 했고, 아이 방에 붙박이로 설치했던 옷장과 책상도 가져오기로 했다. 설치했던 제조업체에 연락해 이사하는 날에 맞춰 다시 달아주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주방에는 성인 8명이 마주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은 아일랜드 식탁을 만들기로 했기에 원래 쓰던 식탁은 친인척에게 주었다.

인테리어 목공 작업을 하면서 곳곳에 문을 달아 벽 안에 숨어 있는 공간을 넉넉히 만들었다. 덕분에 계절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넣어둘 곳은 충분했다. 서랍장, 아일랜드 식탁용 높은 의자, 낡아서 교체해야 하는 침대 매트리스, 침구류와 카펫 등은 새집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색상을 골라 이케아에서 구입했다. 직접 조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좋은 디자인의 가구를 선택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똥손’이나 ‘마이너스의 손’이 아닌 평범한 수준의 손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머리를 맞대고 조립설명서를 보며 나사나 부품을 챙겨주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만드는 재미는 더할 것이다.

 JUNLEEPHOTOS 제공
 JUNLEEPHOTO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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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선택 유의점

제품의 종류와 사용자의 관리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가전제품의 수명은 7~8년 정도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결혼 18년차에 접어드는 우리 부부의 경우 몇번의 이사를 하면서 딱 한번 가전제품들을 대거 교체했던 것 같으니 평균보다는 오래 쓴 셈이다. 냉장고와 티브이 상태는 아직 쓸 만했고, 세탁기는 이번에 아내가 원했던 건조기와 함께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물걸레질 기능이 있는 무선 진공청소기와 스스로 움직이며 가사노동을 도와줄 똑똑한 로봇청소기도 구매 목록에 넣었다. 에어컨은 새로 짓는 집에 천장 매립형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스탠드형과 벽걸이형으로 쓰던 것은 중고 장터에 내놓았다. 주방에는 전기레인지(인덕션)와 오븐, 식기세척기를 빌트인으로 설치하기로 했는데, 사려고 하는 제품을 미리 정해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크기와 전력 사양 등을 ㅎ소장에게 전달해 싱크대 하부장 설계에 반영했다.

새로 사는 거의 모든 가전제품은 한 회사 제품으로 고르기로 했다. 여러 가지를 사면 할인율이 적용되어 조금 싸게 살 수도 있고 디자인과 재질, 색상 등을 통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신 트렌드를 좇는 것이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해 전에 큐빅을 알알이 박아 넣고 꽃무늬로 장식한 냉장고가 잠깐 유행했는데, 지금 보면 손발이 오글거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요즘 ㅇ전자, ㅅ전자에서 내놓은 빌트인 가전 제품은 표면에 다양하고 알록달록한 색상을 넣어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구성하는 것이 유행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몇해 지나고 나면 식상해질 우려가 있어 배제하기로 했다. 물론 이건 순전히 개인의 취향이다. 나는 무채색이나 금속 질감을 좋아해 무난한 디자인에 꾸준히 출시하고 있는 제품을 선택해 예전 것과 새것 모두 비슷한 느낌으로 맞출 수 있었다. 최근에 출시되는 전자 제품들에는 애플리케이션(앱)과 와이파이 통신망을 통해 집 밖에서도 상태를 확인하거나 간단한 작동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가 있는 것이 많다. 같은 회사의 제품은 하나의 통합 앱을 통해 등록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벽면에 빈 공간을 만들어 문을 달아 수납 공간을 많이 만들면 가구 배치에 대한 고민을 줄일 수 있고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다. JUNLEEPHOTOS 제공
벽면에 빈 공간을 만들어 문을 달아 수납 공간을 많이 만들면 가구 배치에 대한 고민을 줄일 수 있고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다. JUNLEEPHOTO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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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넣은 뒤

입주를 며칠 앞두고 ㅎ소장과 협업하는 사진작가가 방문해서 집 곳곳을 촬영했다. 아직 짐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 넓기만 한 공간에 스타일리스트가 챙겨온 예쁜 촬영 소품들을 배치해 찍은 사진들은 멋진 건축잡지에 등장하는 화보처럼 보였다. 건축사에게 설계를 의뢰할 때 ‘전시가 끝난 뒤의 갤러리처럼, 깊은 산속에 있는 고요한 암자처럼, 차분하게 독서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을 원했고, 그것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입주하는 날이 되어 짐을 옮겼다. 이사하는 날에 다들 그러하듯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었고 짐을 풀고 정리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철거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 공사 기간이 처음 계획보다 석달 넘게 길어졌다. 그동안 컨테이너 창고에서 더운 여름을 보낸 이삿짐이 상하진 않았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살림살이가 문제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정리해야 할 것이 아직 많았다. ‘독서와 사색의 공간’은 온데간데없고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찬 살림집이다. 아이와 고양이는 집 안에 계단이 있는 집이 좋다고 위층 아래층으로 뛰어다니며 나의 원대한 로망을 방해하는 데 한몫을 더했다. 역시 이상과 현실은 다른 것인가. 이사를 마치고 심한 몸살과 함께 ‘귀차니즘’과 ‘번아웃’이 찾아왔다.

가전제조사들은 사용자에게 와이파이 통신망을 이용해 자사의 가전제품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밖에서도 제품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엘지전자 LG ThinQ 앱 갈무리
가전제조사들은 사용자에게 와이파이 통신망을 이용해 자사의 가전제품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밖에서도 제품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엘지전자 LG ThinQ 앱 갈무리

가전제조사들은 사용자에게 와이파이 통신망을 이용해 자사의 가전제품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밖에서도 제품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엘지전자 LG ThinQ 앱 갈무리
가전제조사들은 사용자에게 와이파이 통신망을 이용해 자사의 가전제품을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밖에서도 제품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거나 조절할 수 있다. 엘지전자 LG ThinQ 앱 갈무리

임호림(어쩌다 건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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