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맘카페를 둘러보다 올해 출산을 앞둔 부모들에게 이상한 훈수를 두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오지랖이 그렇게 넓은가요? 애가 생기니 주변에서 ‘올해는 호랑이띠라 아들을 낳아야 한다’며 호들갑입니다” 같은 하소연 글이 눈에 띄었다. 대체로 댓글들은 “띠가 무슨 상관인가요. 그런 거 따지면 어떻게 아기를 낳아요” 같은 반응이었지만, 오지랖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그리 맘 편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어른들 말씀이 범띠 해에 태어난 딸이면 고집이 세다는 둥 팔자가 어쩌고저쩌고하잖아요.” 듣는 부모 입장에선 갑갑할 노릇이다.
‘어른들 말씀’이란 이름으로 횡행하는 달갑지 않은 훈수들이 과연 어디서 나온 말인지 살펴봤다. 임인년(壬寅年)은 오행으로 검정색을 뜻하는 임수(壬水)와 십이지지 중 호랑이를 나타내는 인목(寅木)이 만나 ‘검정 호랑이의 해’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올해 입춘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사주팔자의 연주(年柱) 두 글자가 임인(壬寅)이 된다.
하지만 사주 여덟 글자 중에 띠를 나타내는 글자는 연주의 지지(연지 年支) 한 글자다. 다른 일곱개의 글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사주팔자가 달라지기에 띠를 나타내는 글자 하나가 팔자 전체를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띠별 운세니 띠별 궁합이니 하는 것들도 연지 한 글자만으로 ‘썰’을 푸는 것이라서 미래를 논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호랑이를 뜻하는 글자 인(寅)은 양의 목(木)기운으로서, 어떤 일을 시작하는 에너지이자 움직임이 강한 역마의 에너지다. 강한 생명력을 뜻하며 성별과 관계없이 긍정적으로 잘 쓰일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딸이 인목의 글자가 있는 범띠 해에 태어나는 걸 좋지 않게 여겨온 과거의 통념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남성은 양의 기운, 여성은 음의 기운을 가져야 좋은 팔자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온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받아 명리학이 잘못 쓰인 것이 아닌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오랜 세월 동안 아들을 낳으라는 논리를 퍼뜨리는 데 명리학이 얼마나 큰 기여를 했을까 생각하면 가끔 이 공부를 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명리학이 죄일까. 그걸 잘못 활용한 사람들이 죄라면 죄겠지. 2021년 합계출산율이 0.8을 찍었다는 발표가 최근 나왔다. 세상에 나오는 생명이 다 귀한데 호랑이의 해라고 특정 성별을 가려 낳는다면 비극적인 저출산 국가를 더 비극으로 끌고 가는 일일 것 같다.
봄날원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