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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SNS로 잠은 잃었지만, 얻은 것도 있다네

등록 2022-03-11 11:59수정 2022-03-22 14:35

강나연의 자는 것도 일이야

소셜네트워크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친구’와 공통된 관심사와 경험을 나누거나 그에게서 탁월한 식견을 읽어낼 때면 그동안 살면서 느낀 것과는 다른 차원의 기쁨을 느꼈다. 그야말로 소셜네트워크라는 말이 적합하게도 이 세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새벽 2시,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억울했다. 왜 안 그렇겠나. 불면으로 괴롭다가 간만에 잘 자고 있었는데. 비몽사몽 전화를 받았다. 어라,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액정에서 뭔가 꿈틀대고 있었다. 외국인 남자의 가슴 털 숭숭 상반신. 젖꼭지를 셀프 마사지하는 그의 손. 우웩, 마이 아이스! 수치심을 상실한 그의 몸부림이 나를 경악에 빠뜨렸다. 수치심은 인간만이 느끼며, 짐승은 수치심을 모른다. 인간이면 모름지기 수치심을 알아야 한다. 이건 그냥 짐승 새끼인 것이다.

“야이 슈밤할 생퀴야! @#^#$%*!!”

하긴 누군가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짐승 새끼 아닌 사람 새끼여서 저럴 수 있다는 말. 눈은 물론 오장육부까지 썩게 만드는 전화는 이후로도 걸려왔다. 밤이나 낮이나, 불쑥불쑥. 벨로 해놓으면 띠리리릭, 진동으로 해놓으면 지이이잉. 내 의사에 반하는 폭력이자 예고 없이 틈입하는 소음이었다. 그게 페이스북 비디오콜이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고, 온갖 피싱과 성폭력에 악용된다는 사실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야 알았다.

“아니, 저커버그 양반. 너무하지 않소? 안 그래도 못 자는 사람을 이렇게 괴롭힙니까?”

물론 나에게도 3할의 책임은 있다. 어째서냐. 디지털 뉴스매체에서 일하기 전까지 나는 다소 아날로그적인 중생이었다. 소셜미디어(SNS)는 계정만 파놓은 수준이었고, 뭐든 영상보다는 글로 보는 게 편했다. 티브이는 거의 장식품이었고, 아침에는 종이신문을, 퇴근길에는 종이책을 봤다. 일정 관리도 수첩과 볼펜으로 했다. 함흥냉면집에서 꿋꿋이 평양냉면 먹는 격이랄까. 명분이 있었다. 슴슴하고 느린 아날로그 문화가 나의 급한 성미를 중화한다는 뭐 그런 믿음이었다.

인정한다. 괴이한 명분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겠다. 그 시절 나는 충분히 젊었기에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결기를 특별하다고 여겼다. 변화를 외면하며 독야청청하는 동안 텍스트 지향에 대한 꼴같잖은 우월감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웃기는 짓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이 일터가 되고 나서야 보였다. 한국 사회는 매 순간 팽창하는 소우주였다.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유일한 재능은 빠르게 학습하고 적응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재능을 원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켜면 회사 기사부터 확인한다. 모바일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좋댓공’(좋아요·댓글·공유)은 얼마나 되는지. 모두 소셜미디어로 발행된 기사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등. 문득 의문이 든다. 이토록 소셜미디어에 죽네 사네 목을 매면서 사적인 소셜미디어라고 일절 안 하는 건 직무유기 아닌가? 암, 직무유기지. 그러니 어째. 방치되다 못해 죽은 계정부터 살리는 수밖에.

“있잖아. 오프라인에서는 일면식도 없는데 페이스북 친구가 됐어. 근데 막 댓글 달고 그래도 돼? 에스엔에스에서는 그러는 거 맞지? 어?”

몇달 전, 페이스북을 좀 해보겠다며 아르(R)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 정도로 나는 소셜미디어에 맹탕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내가 알겠니?”였지만. 자기 페이스북 친구 수를 보라나 뭐라나. 아놔, 그래. 너는 나보다 더한 족속이었지.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페북질’을 시작했고, 친구 신청이 들어오는 족족 수락 버튼을 누르는 우를 범한 끝에 한밤중 비디오콜 급습에 시달리게 되었다. 듣고 보니 덤앤더머급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누가 알았겠나. 내가 뭔데 사람을 가려 받느냐는 사해동포주의적 사고(?), 정치적 관점이나 취향이 일치하는 관계만을 고수하다가 확증편향에 빠지지는 않겠다는 자성적 다짐(?)이 나의 꿀잠을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줄이야. 이런 부작용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부작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눈팅’만 하다 직접 뛰어든 소셜네트워크는 몹쓸 인간들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독자 여러분처럼 따뜻하고 재밌는 이들이 더 많은 곳이었다. 소셜네트워크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친구’와 공통된 관심사와 경험을 나누거나 그에게서 탁월한 식견을 읽어낼 때면 그동안 살면서 느낀 것과는 다른 차원의 기쁨을 느꼈다. 그야말로 소셜네트워크라는 말이 적합하게도 이 세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건 때로 실재의 삶에서는 획득 불가능한 위로를 주었다. 무쓸모인데 빵 터지는 짤 놀이까지 해보라. 잠드는 시각이 늦어진다.

이쯤에서 눈치채셨겠지만, 문제는 역시 잠이다. 불면인일수록 오밤중 에스엔에스질을 자제해야 한다.

다음주 금요일인 3월18일은 수면의 날이다. 그날은 퇴근 뒤에 소셜미디어를, 아니 스마트폰 일체를 꺼둘까 싶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나 아리아나 허핑턴 같은 디지털미디어업계 거물도 매일 밤 잠들기 전이면 모든 디지털기기를 끈다는데, 나 같은 소시민이 못 그럴 이유가 있나. 그것도 겨우 하루인데. 덧붙이자면, 요즘은 당하지만은 않는다. 소셜미디어 메신저나 비디오콜을 남발하는 작자에겐 응징이 답이다. 왜 여러분도 아는 스리콤보 있잖나. 신고, 삭제, 차단. 여기에 휴대전화까지 무음으로 돌리면 꿀잠 준비 끝. 이젠 자기만 하면 된다. 아, 누가 이렇게 쉬우래?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1. 스마트폰 블루라이트(청색광)는 수면호르몬 멜라토닌을 억제해 불면증을 유도한다. 셰릴 샌드버그와 아리아나 허핑턴처럼 잠들기 30분 전에는 스마트폰을 끄자. ★★★★☆

2. 부득이하게 꼭 써야 한다면 블루라이트를 막는 애플리케이션이나 보호필름으로 빛 노출을 최소화하자. ★★★☆☆

3. 소셜미디어 보이스콜과 비디오콜을 조심하라. 한밤중 전화 공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프로필에 ‘사별’이라는 개인사가 쓰여 있고, 아이와 같이 노는 영상을 보여주는 이들은 동정심을 자극해 돈을 뜯어내는 피싱 유형이다. 그 영상 대개 녹화본이다. ★★★★☆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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