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외식의 최애 메뉴는 초밥과 피자다. 당연히 아내의 취향이다. 나는 사실 피자도 초밥도 그렇게 즐기지 않았다.(애초 취향은 중식에 고량주였다.)
하지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나. 아내 덕에 피자도 초밥도 제법 즐기게 됐다. 얼마 전까지는 초밥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청주는 단맛을 즐기지 않아 맞지 않았고 소주는 초밥의 미묘한 풍미와 충돌했다. 그래서 쌉쌀하며 탄산이 있는 맥주와 주로 초밥을 먹었다. 초밥의 전분기는 탄산과 궁합이 좋다. 그렇지만 와인을 즐기면서 ‘초밥+맥주’라는 공식은 곧 흔들렸다. 아내가 유일하게 먹는 술이 와인인 탓에 맥주의 퇴출은 사실 시간문제였다. 다만 어떤 와인을 먹느냐의 문제였다.
초밥과 어울리는 와인은 꽤 많다. 먼저 탄산이 들어간 스파클링이다. 스파클링은 강렬한 소스를 쓰는 떡볶이나 양념치킨과도 어울린다. 그러니 초밥쯤은 우습다. 하지만 스파클링은 모든 걸 경쾌하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기름진 참치나 묵직한 방어, 그리고 살이 담백해 숙성 때 쓰인 다시마 맛까지 끌어안고 있는 광어초밥과 마실 때는 아쉬움이 들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이런 스파클링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머드하우스의 소비뇽 블랑은 내가 초밥과 즐기는 뉴질랜드 와인의 하나다. 머드하우스는 소비뇽 블랑의 고향인 프랑스 루아르만큼이나 유명한 뉴질랜드 남섬 말버러 지역에 있는 와이너리다. 말버러는 “뉴질랜드 화이트는 실패가 없다”는 말이 나오게 한 근원지다. 이 지역 와인은 맛과 향은 탁월하지만 가격은 합리적이다.
머드하우스 소비뇽 블랑이 초밥과 잘 맞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레몬·라임의 풍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화이트 와인의 두드러진 장점이다. 여기에 갓 잘라낸 풀 향기나 레몬그라스 같은 향신료 그리고 열대과일의 맛까지 복합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런 기분 좋은 맛과 향기는 생선살부터 패류, 갑각류, 달걀 등 다양한 재료를 쓰는 초밥과 잘 어울린다. 특히 이 와인의 균형 잡힌 산도와 향은 생선이 갖는 비린 뒷맛과 밥알의 단맛을 입안에서 아주 조화롭게 만든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학꽁치처럼 여릿여릿한 생선의 살결까지 느끼게 해주는 이 와인의 섬세함이었다. 바닷가가 고향이어서 생선을 잘 아는 젊고 겸손한 후배와 함께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머드하우스 소비뇽 블랑은 단일 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드는 싱글 비니어드와 여러 밭의 포도를 모아 만든 와인 두 종류가 있다. 싱글 비니어드가 산도와 알코올 도수가 조금씩 더 높다. 가격도 약간 비싸지만 몇천원 정도 차이로 합리적 수준이다. 적은 비용으로 싱글 비니어드 와인과 일반 와인의 차이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이렇게 멋진 맛의 세계를 보여주지만 이 와이너리 이름은 겸손하게도 ‘진흙집’이다. 1998년 와이너리를 설립한 부부가 전세계를 여행하다 이 일대의 땅을 보자마자 반해서 진흙집을 짓고 포도밭을 만들기 시작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실용주의다. 이 와이너리의 슬로건이 “모험을 맛보라”라는 것도 재밌는 지점이다. 이 슬로건을 좇아 다음에는 홍어삼합이나 돔베기 혹은 자리물회를 놓고 이 와인을 마셔봐야겠다.
권은중(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