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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백제 유산, 흑백사진 같은 추억 숨쉬는 공주의 옛 골목

등록 2022-05-06 14:54수정 2022-05-06 15:02

허윤희 기자의 원도심 골목 여행 충청남도 공주

충청 행정 중심지였던 원도심
반죽동·봉황동·중동·중학동
근대 유적 남은 살아있는 박물관
테마 골목길 생기며 새로운 변신
1970~1980년대의 감성이 남은 ‘추억의 하숙촌길’. 허윤희 기자
1970~1980년대의 감성이 남은 ‘추억의 하숙촌길’. 허윤희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지난 4월19일,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나태주 골목길’. 하얀색 담벼락에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적혀 있었다. 삭막한 시멘트벽을 나 시인의 시와 꽃 그림으로 꾸민 벽화 골목이다. 벽화 골목을 따라 걸으니 ‘대통사 쉼터’가 나왔다. 백제 시대의 사찰인 대통사의 기와 등 유물이 나온 이곳에 도심형 문화유적공원을 조성한 것. 반죽동 일대 21곳에서 대통사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현재에도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반죽동과 봉황동, 중동, 중학동 일대는 공주의 원도심이다. 조선 시대 충청감영과 일제 강점기 때 충남도청이 있었던 이곳은 과거 충청도 행정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현재는 신관동으로 신도심이 조성되고 이곳은 쇠퇴한 구시가지가 되었다. 활기를 잃어가던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분 건 2010년대 초반. 옛 모습을 유지하면서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는 도시 재생사업이 진행되면서 잠자리가 놀다 간 골목길 등 테마 골목길이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엠제트(MZ) 세대들의 ‘뉴트로’(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신조어) 여행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상점 주인들의 흑백사진

공주 원도심에는 나태주 골목길, 감영길 등 7개의 테마 골목길이 있다.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제민천 양쪽으로 골목길이 형성돼 있다. 제민천은 금강으로 흐르는 길이 4.2㎞, 너비 5m 안팎의 도심 하천이다.

이날 찾은 나태주 골목길은 감영길으로 이어져 있었다. 감영길은 조선 시대 충청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충청감영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다. 공주사범대학부속중·고등학교 자리가 옛 충청감영 부지다. 한옥 기와로 된 학교 정문에는 ‘충청감영 포정사 문루’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예전 감영의 정문인 문루를 재현한 것이다.

학교 정문에서 대통교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의 가로수에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1960년대 금강교 앞에서 포즈를 취한 고등학생들, 1949년 공주 근화유치원 졸업사진, 1950년대 공북루 앞 빨래터…. 과거 공주의 풍경과 사람들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흑백사진 속 옛 공주 모습과 달리 감영길에는 2층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감영길에는 카페, 미용실, 문구점 등이 문을 열었다. 특이하게도 각 상점에는 주인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있었다. 마치 상점 주인이 가게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듯 서 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가게에 들어가면 사진 속 상점 주인을 만날 수 있다.

공방과 갤러리가 있는 감영길은 예술가의 거리라고도 불린다. 이곳에는 지역 작가들의 미술품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이 있다. 1960년대 문화당이라는 서점 건물에 둥지를 튼 이미정 갤러리. 매달 지역 작가들이 이곳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역 작가들이 만든 기념품을 파는 ‘가가상점’도 감영길에 있다. 가가상점의 서동민 대표는 2018년에 처음 공주 원도심에 온 뒤 이곳 매력에 빠져 공주 주민이 되었다. 근처에 무인책방인 가가책방도 운영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번아웃되었던 시기에 공주에 왔는데 이곳에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공주의 한적함과 편안함이 좋았어요.”

그는 공주 원도심의 매력을 골목길에서 느낀다. “제민천을 따라 걸으면 중간중간 골목 진입로들이 있어요. 중간에 어디든 가고 싶은 골목으로 불쑥 들어가 보는 것도 좋아요. 옛 골목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꽃 그림으로 꾸민 벽화 골목 ‘나태주 골목길’.
나태주 시인의 시와 꽃 그림으로 꾸민 벽화 골목 ‘나태주 골목길’.

70년대 하숙촌의 추억

감영길에서 제민천 방향으로 걸으면 봉황동에 있는 ‘추억의 하숙촌길’이 나온다. 담벼락에 1970년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주교대,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 등 학교가 밀집해 있는 원도심에는 하숙집이 많았다고 한다.

백순정 공주시 문화관광해설사는 “1970~80년대만 해도 공주사대부고 정문 쪽에서 제민천 근방까지 하숙집이 한 집 걸러 있을 정도로 많았다”며 “점점 학생들이 줄면서 하숙집도 사라졌지만 그 당시를 추억하기 위해 이곳에 하숙촌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하숙촌이 사라지고 여행객들을 맞는 게스트하우스와 한옥 카페와 공방, 갤러리 등도 하나둘 늘고 있다고 한다.

공주 원도심에서는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도 여러 곳이다. 1897년에 지은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중동성당, 옛 선교사 가옥, 1900년대에 세워진 공주제일교회, 일제의 적산가옥을 활용한 공주풀꽃문학관, 옛 공주읍사무소 등 제민천 인근의 근대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923년에 지은 옛 공주읍사무소는 근대 건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대 건축물의 특징, 건축 의미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와 근대 공주 시가지의 모습과 주요 근대 건물의 모습과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나태주 골목길에서 제민천의 다리를 건너면 공주 중동농협의 뒷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주민들은 이곳을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길’이라 부른다. 꽃 정원을 꾸미고 의자 등을 놓아 쉴 수 있게 했다. 예전에 많이 있었던 직물공장을 그대로 살려 카페로 연 곳이 있다. 카페 앞의 골목 바닥에는 추억의 놀이 ‘사방치기’가 그려져 있었다. 1970~80년대 골목에서 놀던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길 안쪽에는 낡은 파란 대문이 눈길을 끄는 카페 ‘루치아의 뜰’이 있다. 석미경 루치아의 뜰 대표는 1963년에 지은 근대식 옛집을 개조해 2013년에 카페 공간을 열었다. 당시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길에는 빈집이 많고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았다. 지금은 이 골목길이 알려지고 전국에서 찾는 이들이 늘면서 10년 사이 주변에 카페 40여개가 생겼다고 한다. “원도심은 오래된 세월이 축적된 곳이에요. 각 골목길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아요.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숨겨진 곳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오래된 골목길의 매력을 일찍 발견한 석 대표가 말했다.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을 지나 나오면 1967년에 문을 연 호서극장 쪽으로도 갈 수 있다. 극장 벽면에는 예전에 상영했던 영화 <공산성의 혈투> 포스터 그림이 남아 있다. 현재 영업을 하지 않는 호서극장은 내년에 지역 문화플랫폼으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

지역 작가들이 만든 기념품을 파는 ‘가가상점’. 허윤희 기자
지역 작가들이 만든 기념품을 파는 ‘가가상점’. 허윤희 기자

공산성 성곽길을 따라

먹거리 여행도 빠질 수 없다. 1937년에 형성된 역사 깊은 산성시장이 미식 여행지로 제격이다. 산성시장에서는 떡집, 과일가게, 식당 등 점포 700여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공주의 특산물인 알밤으로 만든 알밤모찌, 알밤인절미 등을 맛볼 수 있다. 오일장도 열린다. 끝자리 1일과 6일, 장 서는 날 맞춰 온다면 상설시장과 다른 오일장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산성시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백제의 성곽인 공산성(사적 제12호)을 볼 수 있다. 백제 시대엔 웅진성이라 불렸던 공산성은 당시에는 토성이었지만 조선 인조 때 석성으로 개축해 현재에 이른다. 공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공산성은 해발 110m의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총길이는 2.6㎞다. 성곽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성곽을 걷는 동안 문화재로 지정된 금서루, 진남루, 쌍수정, 영동루, 광복루, 공북루 등 여러 누각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색다른 볼거리를 구경할 수도 있다. 공산성에서는 10월 말까지 성곽을 지키는 수문병의 모습을 재현한 ‘웅진성 수문병 근무 교대식’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루 두차례 진행된다.

공주/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옛 중심지인 원도심의 골목 풍경과 역사 이야기를 전하는 ‘허윤희 기자의 원도심 골목 여행’을 8주에 한번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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