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한밭’의 100년 흔적, 5.17㎞ 붉은 선 따라 걸으며 만나다 [ESC]

등록 2022-11-26 16:10수정 2022-11-26 16:59

허윤희의 원도심 골목 여행 대전

대전역 근처 대흥·소제동 일대
경부선 개통 이후 근대도시 성장
전국 유일 1920년대 철도관사촌
근대 건축 충남도청사 등 볼거리
대전 동구 소제동(중앙동)의 대동천변 산책길. 허윤희 기자
대전 동구 소제동(중앙동)의 대동천변 산책길. 허윤희 기자

대전은 순우리말로 ‘한밭’이다. 너른 들판을 뜻한다. 이름처럼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은 충남 회덕군 산내면 대전리라고 불리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 대전역이 개통되면서 대전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1932년에는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들어서면서 지방행정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대전이 근대도시로 성장하면서 남겨진 100년의 유산들은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 사이 원도심 주변에 남아 있다. 원도심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중구의 대흥동, 은행선화동과 동구의 소제동(중앙동) 일대를 말한다.

철도관사촌이 있는 소제동의 낡은 담장을 벽화로 꾸몄다. 허윤희 기자
철도관사촌이 있는 소제동의 낡은 담장을 벽화로 꾸몄다. 허윤희 기자

철도 역사 남은 소제동

여행의 시작점은 대전역이다. 대전역의 동쪽 광장으로 나오면 주차장 쪽에 있는 낡은 목조 건물이 보인다. 철도 문화유산인 옛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국가등록문화재 제168호)이다. 1956년 지어진 이 건물은 면적 397㎡(약 120평)에 6.7m 높이의 단층 창고이다. 기차를 수리하고 정비하기 위한 자재와 부품, 장비 등을 보관한 곳이다. 예전에는 보급창고 3호 근처에 보급창고 1호, 2호, 4호, 재무과 보급창고 등이 있었지만 대전역이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잇따라 철거됐다. 홀로 남은 보급창고 3호 너머로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 본사가 있는 28층 쌍둥이 건물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보급창고를 뒤로하고 소제동(중앙동)으로 향한다. 대전역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소제동은 1920년대에 ‘소제호’라는 호수를 매립해 조성한 철도관사촌이다. 188명의 일본인 철도기술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해방 이후에는 대전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공간이다. 한때 철도 관사가 100여채 정도 있었지만 현재는 40여채 정도 남아 있다. 사람들이 떠나고 대전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던 이곳은 최근 몇 년 사이 ‘뉴트로’ 성지로 떠올랐다.

소제동에는 30개의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골목길을 걸으면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대문, 움푹 팬 계단, 이끼가 잔뜩 낀 담벼락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골목에는 철도 관사 건물을 고쳐 만든 힙한 카페나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소제동 카페거리라는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가재교 쪽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멘트 기둥에 ‘관사 16호’라고 쓰인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카페와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당 안쪽에는 관사로 쓰였을 당시에 있던 녹색의 대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서까래, 온돌방 등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다. 뒤쪽에도 출입문이 있어 다른 골목으로 이어진다.

고혜봉 대전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대전이 ‘노잼(재미없음) 도시’라고 알려졌는데 대전을 자세히 보면 곳곳에 근대역사문화 유산들이 남아 있어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특히 원도심 소제동은 철도 관사라는 근대건축물뿐 아니라 1960~1970년대 골목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라고 말했다.

카페와 문화예술 공간이 된 ‘관사 16호'. 허윤희 기자
카페와 문화예술 공간이 된 ‘관사 16호'. 허윤희 기자

대나무숲이 울창한 소제동의 찻집. 허윤희 기자
대나무숲이 울창한 소제동의 찻집. 허윤희 기자

1962년에 건립된 대흥동 성당은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허윤희 기자
1962년에 건립된 대흥동 성당은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허윤희 기자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 탐방로를 안내하는 선. 허윤희 기자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 탐방로를 안내하는 선. 허윤희 기자

원도심에 은은하게 퍼지는 종소리

소제동 골목에서 나와 대전역의 서쪽으로 이동한다. 대전 중구의 은행선화동과 대흥동에 걸쳐 있는 원도심 근대문화 탐방로를 걷기 위해서다. 근대문화 탐방로는 대전역에서 출발해 중앙로를 지나 옛 충남도청사 본관, 옛 충남도청 관사촌 등 9개의 근현대건축물을 볼 수 있도록 연결한 5.17㎞의 구간이다.

중앙로 바닥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다. 근대문화 탐방로를 알려주는 안내선이다.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인 성심당을 지나 도로 쪽으로 향하는 붉은 선을 따라 걷는다. 대흥동 성당이 보인다. 1962년에 지어진 것으로 마치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이미지를 상징화한 건물이다. 이 성당은 1960년대 당시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대전 원도심 주민들에게 이곳은 종소리로 기억되는 곳이다. 성당에서는 하루 두 차례 종을 울린다. 지금은 전자식 종소리지만 2019년까지만 해도 종지기가 시간에 맞춰 종을 쳐서 울리는 아날로그 소리였다. 종지기는 2019년 말에 은퇴하기 전까지 50년간 120개 계단을 올라 종을 쳤다고 한다.

대흥동 성당 맞은편에는 1958년에 건립된 옛 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이 있다. 20세기 중반 서양 기능주의 건축에 영향을 받은 한국 근대 건축 경향을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아치형 출입구, 건물 외벽에 돌출된 상자 모양의 창틀, 햇빛을 차단하는 수직 블라인드가 눈길을 끈다. 현재는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로 사용되는데 청년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주로 열고 있다.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에서 은행선화동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대전의 대표 근대건축물을 볼 수 있다. 1932년에 건립된 옛 충남도청사 본관(등록문화재 제18호)이다. 현재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형을 간직한 몇 안 되는 도청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지어져 한국전쟁 중에는 임시 중앙청과 전방지휘사령부로 사용됐고 그 이후 2012년까지 충청남도의 행정 중심공간으로 이용되었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한국사를 묵묵히 지켜본 증인인 셈이다. 영화 〈변호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외벽이 갈색의 스크래치 타일로 된 대전근현대사전시관 현관에 들어가면 홀이 나온다. 홀 내부에는 대리석이 격자형으로 붙여져 있다. 아치형 천장과 대리석 기둥, 긴 복도를 따라 이어진 높은 창문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절제된 형태미를 추구한 1930년대 당시 모더니즘 건축 양식의 모습을 띤다. 중앙 로비 계단을 오르면 2층 중앙 로비와 그 정면에 있는 도지사 집무실로 쓰였던 공간을 볼 수 있다. 집무실 테라스 너머로 대전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전역 광장과 마주 보는 도로, 중앙로 끝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대전역까지 보인다. 대전 원도심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건물 1층에는 기획전시실이 있다. 20세기 초부터 최근까지 약 100년간의 대전의 역사와 발전상, 원도심의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역사, 건축, 디자인, 민속 등 여러 분야의 특별전도 열리고 있다.

옛 충남도청사 본관의 도지사 집무실로 사용됐던 공간. 허윤희 기자
옛 충남도청사 본관의 도지사 집무실로 사용됐던 공간. 허윤희 기자

1932년에 건립된 충남도청사 본관. 현재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허윤희 기자
1932년에 건립된 충남도청사 본관. 현재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허윤희 기자

충남도청 관사로 사용됐던 건물. 허윤희 기자
충남도청 관사로 사용됐던 건물. 허윤희 기자

도시 100년 역사를 간직한 곳

대전에서만 볼 수 있는 옛 충청남도지사 공관건물인 테미오래도 빠뜨릴 수 없는 코스다. 테미오래는 백제 시대에 지어진 테 모양의 성을 쌓고 여럿이 모여 살았던 지역의 옛말인 ‘테미’로 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다. 도지사 공관과 함께 10개 동으로 이루어진 관사촌이다. 1932년 충청남도 청사가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만들어진 일제강점기 관사 건축물로 일본식, 한국식, 그리고 서양식 세 가지 건축의 절충양식을 보여준다.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프랑스 아르데코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서양식 벽난로, 다다미방, 벽걸이형 자석식 전화, 온돌방, 원형 창을 볼 수 있다. 테미오래에서는 근대 건축, 플리마켓, 전시, 레지던스, 문화예술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무료. 동절기(11월부터 2월까지)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다.

원도심 투어를 진행하는 독립책방 ‘다다르다’의 김준태 대표는 “대전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담백한 두부 같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특히 원도심에서는 광역시라는 대도시에 있는 아날로그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를 만나는 여행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전 원도심 여행 정보

먹거리 대전은 칼국수 등 밀가루 음식이 발달한 곳이다. 2013년부터 칼국수 축제를 열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의 집산지가 대전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에 칼국숫집과 빵집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대전 원도심에는 다양한 종류의 칼국수를 파는 오래된 가게가 많다. 매콤한 국물맛이 일품인 매운 칼국수, 진하고 담백한 맛의 손칼국수, 시원하고 칼칼한 바지락 칼국수 등 여러 종류의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1961년에 문을 연 신도칼국수(동구 대전로 825번길 11/ 042-253-6799)는 고소한 들깻가루를 얹은 칼국수(6000원)가 유명하다. 미소본가 스마일칼국수(중구 보문로 230번길 82/042-221-1845)도 들깨 칼국수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손칼국수 7000원).

두부 두루치기도 대전의 대표 음식이다. 두부에 고춧가루, 마늘, 간장, 참기름 등을 매운 양념을 넣어 만든 것.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특징이다. 광천식당(중구 대종로 505번길 29/042-226-4751·두부 두루치기 1만4000원), 진로집(중구 중교로 45-5/042-226-0914·두부 두루치기 1만1000원~2만2000원)이 오래된 두부 두루치기 맛집으로 손꼽힌다.

투어 프로그램 대전시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와 떠나는 원도심 동행 투어’를 진행한다. 정기 투어 프로그램은 매일 두 차례(오전 10시, 오후 2시) 열리고 역사문화 탐방(목척교~대전 근현대전시관), 문화예술 탐방(옛 산업은행~대전갤러리) 등 3개 투어 코스가 있다. 투어 신청을 하려면 문화관광해설사 통합예약 누리집(kctg.or.kr)에서 예약하거나 여행안내소 ‘트래블라운지’(동구 중앙로 187-1/042-221-1905)에서 현장 접수를 하면 된다. 투어 비용은 무료.

대전/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1.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2.

‘미친놈’ 소리 들으며 3대가 키우는 정원, 세계적 명소로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3.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인간이 닿지 않은 50년 ‘비밀의 숲’…베일 벗자 황금빛 탄성 4.

인간이 닿지 않은 50년 ‘비밀의 숲’…베일 벗자 황금빛 탄성

[허지웅 칼럼]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5.

[허지웅 칼럼]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