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청옥산 정상 육백마지기에서 바라본 밤하늘 은하수. 홍유진 제공
일찍부터 찾아온 한여름 더위에 몸살을 앓는 요즘이다. 오전 8시만 넘어도 정수리가 따가우니 어디든 쉬이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수욕장 개장 소식이 들려오니 바다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쏟아지는 뙤약볕에 습도와 염분이 높으니 불쾌지수 역시 동반 상승하기 십상. 하늘과 맞닿아 서늘하다 못해 청량한 겨울바람마저 느껴지는 곳이라면 어떨까? 대한민국의 알프스, 강원도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로 떠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캠핑 인구가 지난 10여년간 11배나 성장했다. 이제 국내에서 캠핑을 즐기는 인구는 700만명을 넘어섰다. 캠핑카 등록 대수도 수년 사이 급증했다. 이에 발맞춰 새로운 자동차 레저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오버랜드’(Overland)가 그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육로가 되겠으나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오프로딩(비포장도로, 자연 그대로의 길 등을 차로 주파하는 것)과 함께하는 캠핑이란 의미로 통한다. 험로 주행을 즐기며 자동차 캠핑을 떠나는 것을 일컫는다.
오버랜딩의 일종인 차박 캠핑은 이미 일반화됐다. 고가의 텐트 등 여러 캠핑 장비를 살 필요가 없고 그것들을 관리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차 하나만으로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장점 덕분에 차박은 바야흐로 오버랜딩의 꽃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6월의 차박은 육백마지기로 떠나보자.
볍씨 600말을 뿌릴 수 있는 평원이란 뜻의 육백마지기는 해발 1256m의 청옥산 정상에 자리한다. 청옥이라는 산나물이 많이 자생하여 지금의 이름이 된 청옥산은 그야말로 야생화와 산나물의 천국이라고. 청옥산 입구인 미탄면사무소에서 청옥산 깨비마을을 거쳐 산 정상까지는 얼추 11㎞다. 이내 그림 같은 산마을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구불구불한 길 위에 놓인 다양한 식생과 산 능선을 따라 눈에 띄는 풍력발전기 20여기는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말발굽처럼 휘어진 구간들과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급경사로는 오버랜딩에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육백마지기는 청옥산 드라이브 코스의 끝자락이자 산의 정상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보았던 알프스산맥이 떠오른다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이 계절 육백마지기는 아름다운 하얀색 샤스타데이지로 온통 뒤덮여 있다. 산 정상이라 탁 트인 전망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주차장 바로 옆에서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그 규모에 시선을 떼기 어렵다. 능선을 타고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는 청량감을 더하는 파란 하늘과 함께 이국적인 정취가 듬뿍 느껴진다.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에도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풍력발전기가 있다는 것은 바람의 언덕이라는 의미라지. 한기가 느껴져 가벼운 패딩을 걸쳐 입었다.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흐드러지게 핀 6월의 육백마지기. 홍유진 제공
육백마지기는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금은 사계절 다양한 꽃들과 색감으로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지만 원래는 화전민의 삶터였다. 넓고 거친 땅을 직접 다 일구어 우리나라 최초의 고랭지 채소밭을 만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자란 배추는 유난히 달고 맛있었단다. 땅이 척박해진 지금은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천상의 화원으로 탈바꿈했다. 새하얀 샤스타데이지가 활짝 핀 너른 들녘을, 주변의 산들이 초록빛 능선을 그리며 에워싼 풍경을 보고 있자면 천국이 따로 없다. 화원에는 나무 데크를 설치해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사이사이 놓인 조형물이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기에 그만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대형 하트 조형물에서 인증샷을 남겨도 좋겠다. 화원의 중앙부에는 작고 귀여운 교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앞에 자리한 파스텔톤 작은 의자는 앙증맞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귀여운 인증샷 포인트로 인기가 많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는 일몰 시간대부터는 진짜 육백마지기를 오롯이 만나는 시간이다. 차 안에 누워 트렁크 뷰로 느긋하게 낙조를 감상한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산 정상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했다. 달이 없고 맑은 밤이라면 까만 하늘에 빼곡히 수놓은 별을 볼 수도 있으리. 운이 좋다면 우윳빛 은하수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다.
이렇듯 육백마지기는 자연을 온전히 느끼는 일 외에는 특별히 할 거리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왔다가 사진만 찍고는 바쁘게 사라지곤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갓지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매력인 이곳은 사실 주말보다는 평일, 한낮보다는 일몰 전후 시간대가 좋다. 가능하다면 찬란하게 빛나는 아침의 태양과 여름에 더 아름다운 이곳만의 운해도 놓치지 마시길.
홍유진 여행작가
△알아두면 좋아요
1. 인근에 편의점이나 가게가 없으므로 간단한 먹거리는 출발 전 미리 준비하거나 평창 시내 가게를 이용할 것.
2. 육백마지기는 한여름에도 아침저녁은 체감온도 초겨울 날씨다. 경량 패딩이나 긴소매 카디건 준비는 필수.
3. 산 정상답게 변화무쌍한 날씨를 자랑한다. 조석으로 맑은 날보다 구름 낀 날이 잦다. 일기예보는 적당히 참고만 할 것.
4. 정상에서 평지로 내려오는 도로의 급커브, 급경사로를 주의할 것. 자갈과 모래 섞인 도로와 비포장도로를 헤쳐 나가야 한다.
5. 비 내린 뒤 방문은 삼가는 게 좋다. 비포장도로는 특히 비가 올 때 지반이 약해지고, 진흙 구덩이가 즐비하며 땅에 골이 깊게 파여 위험할 수 있다.
6. 2019년 7월부로 아쉽게도 야영·취사가 금지되었다. 이곳에서 차 밖으로 확장 텐트를 연결하는 행위, 화기를 사용하여 취사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7. 차박을 원한다면 텐트를 사용하지 않는 순수차박 형태인 스텔스 모드가 적합하다.
8. 텐트를 사용하거나 취사를 원한다면 인근에 자리한 평창 바위공원 캠핑장(무료)을 이용할 수 있다.
9. 당일치기부터 차박까지, 육백마지기 방문 때 배출한 본인 쓰레기는 남김없이 되가져 오도록 한다.
10. 밤하늘을 수놓은 별 사진 촬영을 원한다면 달이 없는 맑은 날을 선택하여 방문하면 좋다. 은하수를 만나고 싶다면 달이 없는 월삭일 전후 7일 정도가 유리하다.(2022년 6월25일~7월3일, 7월25일~8월3일, 8월25~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