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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 바닷가 동네의 뜨거운 햇볕을 안주 삼아

등록 2022-06-18 13:00수정 2022-06-18 13:47

권은중의 화이트
이국적 풍미의 새우 요리에 차가운 샤르도네 한 모금이 주는 즐거운 상상
매콤한 은두자와 여러 향신료를 곁들인 새우, 차갑게 식힌 쿠능가힐 샤르도네를 함께 마시니 이국적인 곳에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권은중 제공
매콤한 은두자와 여러 향신료를 곁들인 새우, 차갑게 식힌 쿠능가힐 샤르도네를 함께 마시니 이국적인 곳에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권은중 제공

나에게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하면 기억나는 건 태양이다. 몇년 전 12월 말 눈보라가 휘날리던 날, 날개에 뜨거운 증기를 뿌려가며 겨우 이륙한 비행기를 타고 호주에 간 적이 있었다. ‘이런 눈보라에 비행기가 뜰까’라는 노심초사 끝에 도착한 호주에는 거짓말처럼 뜨거운 여름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의 강렬한 경험 덕에 남반구 호주 여행의 묘미는 물리적 거리가 주는 인지부조화라고 생각한다.

음식도 남달랐다. 뜨거운 태양 탓인지 ‘스파이시’했다. 서양 요리에서 보기 어려운 아시아 향신료를 다양하게 썼다. 심지어 샌드위치에도 강황과 커민(큐민) 같은 향신료를 이용해서 독특한 풍미를 줬다. 커피도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인도 원두를 많이 썼다. 스파이시한 커피 맛은 호주 날씨에 어울렸다.

호주에서는 와인도 다른 나라와 다른 독특한 기준이 있다. 무엇보다 테루아르라는 단어로 지역성을 중시하는 구대륙과 달리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호주 전역에서 포도를 모아 와인을 만든다. 이런 틀에서 벗어나려는 사고방식은 호주가 1970년대 코르크 마개 대신 스크루 캡을 와인에 최초로 도입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다.

펜폴즈(Penfolds)는 이런 호주의 와인 철학을 잘 보여준다. 펜폴즈는 영국에서 남호주의 중심 도시인 애들레이드로 이민 온 의사였던 크리스토퍼 펜폴드로부터 시작했다. 펜폴드는 1844년 치료 목적으로 와인을 만들다 입소문이 나면서 본격적으로 와인 생산에 뛰어들었다. 1950년대 초 프랑스에 필적할 만한 고품질 와인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혁신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호주 대표 레드 품종인 시라즈로 만든 ‘그레인지’다. 이 와인은 출시되자마자 세계의 유명 와인상을 휩쓸었고, 2001년에는 호주 문화재에 오르기까지 했다.

펜폴즈는 이런 노력을 화이트 와인에도 기울여 1995년 ‘야타나’를 출시했다. 그레인지와 동일하게 호주 대륙 각지에서 모은 샤르도네로 만들어 3년이나 숙성한다. 당연히 프랑스 부르고뉴 화이트를 뺨칠 만큼 고가다. 적금을 타거나 혹은 친구와 갹출해 부르고뉴 화이트를 가끔 마시는 내 형편에서는 신대륙의 ‘신포도’ 화이트 와인이다.

그렇지만 펜폴즈는 1만원대부터 10만원 후반대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화이트 와인을 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중간 가격쯤인 쿠능가힐(남호주의 지역명) 샤르도네를 이탈리아 햄인 은두자를 넣어 구운 새우와 함께 마셔봤다. 은두자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고추를 넣어 숙성시킨 맵고 구수한 돼지고기 햄이다. 새우와 함께 구운 파프리카에 작게 썬 토마토와 강황과 큐민을 섞어 만든 모로코식 탁투카(taktouka) 소스도 곁들였다. 호주 바닷가에서 먹었던 새우 요리를 떠올려 만들어봤다.

매콤한 은두자와 여러 향신료를 곁들인 새우, 차갑게 식힌 쿠능가힐 샤르도네를 함께 마시니 이국적인 곳에 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방구석에서 타국을 느끼는 기분 좋은 인지부조화는 다양한 향신료를 쓴 퓨전 음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주 이곳저곳에서 모인 포도의 경험을 녹여 와인을 만드는 호주 특유의 양조기술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권은중·임승수의 화이트 vs. 레드 칼럼을 마칩니다. 두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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