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엔 칭따오!
한자어, 고유어, 영어, 중국어. 이렇게 이루어진 말이다. ‘엔’은 영어 앤드(and)의 의미라고도, 우리말 ‘에는’의 준말이라고도 한다. 칭따오 맥주는 양꼬치로 떴다. 수입업자가 자그마한 사무실을 쓰다가 사옥을 지어도 될 만큼 급성장했다. 내가 가리봉동에 다닐 무렵인 1990년대 중후반에는 없던 맥주인 것 같다. 당시 조선족 동포 거리가 슬슬 생겨나고 있었는데, 술집에서는 대부분 소주나 이과두주, 그때 흔하던 국산 고량주를 마셨다. 양꼬치 파는 가게도 2000년대 이후에 생겨난 걸로 기억한다.
원래 양꼬치는 중국 서북부 지역 음식이고, 조선족들의 고향인 동북3성 지역에 퍼진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중국 서북부-베이징-동북3성-가리봉동의 순서로 유행이 전해졌을 것이다. 초창기 가리봉동 양꼬치집은 본토 중국요리를 먹어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엄밀히 말해 중국요리 중에서도 동북요리(둥베이랴오리)를 팔았다. 감자볶음, 달걀토마토볶음, 돼지 귀 냉채 같은 ‘샤오츠’(스낵)집 요리들. 마동석의 연기로 유명해진 영화 <범죄도시> 1편의 무대인 대림동은 그때 아직 뜨기 전이었다. 요새는 가리봉동보다 대림동이 더 커졌다.
🍖 양꼬치엔 칭따오, 그리고 쯔란
양꼬치집의 초창기 분위기는 좀 무거우면서도 동포애 어린(?) 현장이기도 했다. 한국인이 이방인인 거리. 그곳에 같이 앉아 먹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했을 것이다. 주 6일 하던 때라 토요일, 일요일에 제일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옛날 한국식으로 술잔도 건네고 안주 접시도 왔다 갔다 하다가 친해진 옆자리 동포와 노래방에 가서 목이 터져라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는 1990년대 중반 국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영화 <첨밀밀> 주제곡이기도 한데, 가수 덩리쥔(등려군)이 부르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라는 가사는 달달하기 그지없다. 그때 사귄 한 동포 친구는 싱크대 설치가 직업이었는데, 내가 일하는 식당 싱크대가 말썽을 부리면 급히 와서 고쳐주기도 했다. 그는 양꼬치를 먹으면서 쉼 없이 꼬치를 돌려서 고기가 타지 않게 하는 기술이 있었다. 탄불이래봐야 야자나무로 만든 싼 압축탄이었지만, 불땀이 좋아서 열심히 꼬치를 돌리지 않으면 고기가 탔다.
자글자글한 기름기가 많은 양고기에 맵고 진한 향신료를 듬뿍 발라놨으니 그게 타면 배기 나쁜 술집은 자욱한 논산훈련소 가스 실습장을 방불케 했다. 콜록거리면서 맥주를 부었다. 칭따오가 당시 수입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옌징인지 해당화인지 하는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양꼬치가 타지 않게 돌려주는 자동 기계가 나온 건 나중의 일이고, 당시엔 요령껏 꼬치를 손으로 돌리다가 다 익으면 2층(?)의 고정대로 옮겨야 했다. 혹시라도 양꼬치집을 안 가보신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양꼬치 불판이란 대략 이렇다.
사각의 합판 탁자 가운데 직사각형으로 구멍이 있고 거기에 금속제 구이틀이 올라가 있다. 아래에는 숯을 넣을 수 있게 되어 있고, 벌건 양념을 입은 작은 깍두기만한 양고기가 열점쯤 자전거살로 만든 쇠꼬챙이에 끼워져 수십개가 구이틀을 가로질러 놓이게 된다. 고정이 잘되도록 금속틀에는 작은 홈이 파여 있고, 거기에 꼬치를 올려서 돌려가며 굽는다. 다 익은 놈은 옆에 따로 내리면 식고 맛이 없으니 2층으로 된 구이틀 위로 올라가서 식지 않게 배려되어 있는 구조다. 꼬치를 얼른 돌리지 않으면 연기가 심하게 나게 마련이다. 껍질째 놓인 마늘을 까서 꼬치에 꿰어 굽는 것도 양꼬치집의 별미다.
양꼬치의 또 다른 별미는 쯔란이다. 나는 양꼬치를 2002년 서울 가리봉동에서 처음 먹었다. 양꼬치에 곁들이는 양념 ‘쯔란’은 허브 씨앗에 통깨, 들깨, 고춧가루, 설탕 등을 섞어 만든다. 이탈리아에서 소시지를 만들 때 넣곤 하던 알싸한 향신 씨앗인 커민이 그것인 줄 처음엔 몰랐다. 쯔란은 아마도 소아시아나 중근동 어디에선가 유행하다가 유럽으로, 중국으로 퍼졌을 것이다. 실크로드를 타고 건너와서 다시 중국 대륙의 동쪽 끝, 둥베이에 도달하더니 기어이 바다를 넘어 한국에 왔다.
🍖 ‘달빛이 내 마음을 전해요’
양꼬치 고기를 쯔란에 찍으면,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이국의 향이 퍼지게 된다. 통깨가 이에 끼어 나중에 고소함을 주듯, 쯔란 씨앗은 술자리 파한 깊은 밤에 이 사이에 살아남아서 저 이국의 술집의 여운이 되곤 한다. 양꼬치를 집에서 굽다간 배기시설 미비로 난리가 날 것 같다. 양념 바른 양꼬치를 인터넷에서도 살 수 있지만 내가 고른 방식은 양갈비와 양념을 따로 사서 안주 하는 것이다. 양갈비는 종류가 많다. 프렌치랙이라고 해서 살점이 촘촘하고 예쁜 갈비는 비싸다. 대신 어깨갈비라는 걸 산다.
왜 양의 어깨에 ‘갈비’가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프렌치랙처럼 살점과 뼈대가 똑 떨어지지 않아서 먹기 불편하고, 그래서 값이 싸다. 더러 재수 없으면 뼈가 고기보다 더 많은 놈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산 양 어깨갈비를 팬에 굽는다. 소금과 후추만 뿌린다. 인터넷에서 파는 완제품 양꼬치 소스를 사서 찍어 먹는다. 고기에 양념 발라 구우면 더 맛있지만 그랬다간 119의 방문을 받을 수 있다. 구운 고기에 쯔란을 술술 뿌려서 풍미를 더해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깐마늘을 통째로 에어프라이어에 담백하게 구워 곁들이면 좋다. 칭따오나 옌징이나 국산 맥주나 무엇이든. 나는 이과두주를 마신다. ‘월량대표아적심’의 가사를 다 잊지는 않았다.
“웬 워 아이 니요우 뚜어쉔.(당신이 내게 묻네요.)/ 워아이 니요우 지 펜.(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워디 찐 예 젠 워디 아이 예 젠.(내 사랑은 진실하답니다.)/ 웨량 따이 뱌 워 디 씬.(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하고 있어요.) … 찐찐 더 이거원 이징다동 워더씬.(부드러운 입맞춤이 어느새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어요.)/ 신신더 이 뚜안 찐 지아오 워 스 니안 따오 루진.(깊고 깊은 이 마음이 지금까지 이렇게 당신을 그립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