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겉옷 한장 깔고 요가 수련을 했다.
요가를 배우기 시작한 4년 전 가벼운 우울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질러진 방을 치울 마음이 들지 않는 게 그 신호였다.
흔히 요가의 장점으로 가로 70㎝, 세로 180㎝ 정도 크기 매트 한 장 펼 공간과 몸뚱어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어 간편하다는 점을 꼽는다. 하지만 그때 내 방엔 요가매트 한 장 깔 공간도 나오지 않을 만큼 물건이 빽빽했다. 책장이 뱉어낸 책들이 책상 위에 쌓이다 못해 방바닥까지 흘러내려 곳곳에 수북했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게 꼭 당시의 내 머릿속 같았다.
“자, 이제 우리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를 배워볼까요?”
주말마다 놀러 가듯 요가를 배우러 다닌지 세 달 정도 됐을 때 선생님은 꽤 난이도가 있는 도전 자세를 내줬다. ‘아사나(요가 자세)의 왕’이라 불리는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 자세)였다. 아직 앉아서 몸을 앞으로 숙이는 ‘파스치모타나아사나’에서도 손끝이 무릎에 겨우 와 있는데, 인스타그램에서만 보던 거꾸로 선 자세를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마음이 앞섰지만 우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동작을 따라했다.
① 매트 위에 무릎을 세워 앉고 양손을 깍지 낀 채 손 바깥 날을 매트에 내려놓는다. ② 뒤통수가 두 손바닥 사이에 들어오도록 정수리를 매트 위에 살포시 올린다. ③ 그 상태로 두 다리를 펴 엉덩이를 들어올린 뒤, 두 발 하나씩 몸통 가까이 걸어들어온다. ④ 배꼽과 허벅지 사이를 더 좁힐 수 없을 만큼 가까이 걸어들어왔다면 ⑤ 배에 힘을 준 채 한 발씩 위로 접어 땅에서 떼어 본다. ⑥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익숙해지면 양발을 모두 땅에서 뗀다. 양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는 것도 익숙해졌다면 ⑦ 무릎과 무릎 사이를 조이는 힘을 유지한 채 천천히 두 다리를 하늘로 뻗어 올린다. ①~⑦ 모든 단계에서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같게 유지한다.
글로 적어 놓아도 복잡한데, 몸으로 따라하려니 더 어려웠다. 무엇보다 ⑥ 몸을 거꾸로 세운 채 두 무릎을 접어 양발을 땅에서 떼어 올리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⑦ 두 다리를 하늘 위로 곧게 뻗어 올리는 동작으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다리를 뻗어 올리는 순간 몸이 균형을 잃고 뒤로 쿵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금세 호흡이 흐트러졌다. 그러면 두 무릎 사이, 그리고 배꼽을 조이는 힘도 쉬이 풀려버렸다. 그러다가 정말 몸이 뒤로 쿵 떨어지면 꼭 등 뒤에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아팠다.
2019년 2월, 두 다리를 하늘 위로 다 뻗어 올리지 못하던 때의 살람바 시르사아사나.
안전하게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를 연습하려면 방을 치워야 했다. 행여 몸이 뒤로 떨어지더라도 다치지 않으려면 등 뒤에 부딪힐 만한 물건이 없어야 했다. 행여 몸이 뒤가 아닌 옆으로도 떨어질 수 있으니 사방에 방해물이 없는 게 좋았다. 이쪽에 쌓인 책들을 저쪽으로 대충 밀고 그 틈바구니에 요가매트를 끼워 넣듯 깔아서는 충분히 넓은 안전지대를 확보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헌 옷과 안 쓰는 물건, 읽지 않는 책을 내다 버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써 몸에 맞지 않게 된 침대와 책상 등 가구도 하나둘 내 몸과 내 취향에 맞는 걸로 바꿨다.
타고난 성향이 외향형 인간인 이유도 있지만, 방이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집 밖으로만 나돌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어질러진 방 안에선 잠 자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방을 정돈하기 시작하니 집에 머물러도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요가매트를 깔려는 목적 하나로 확보한 공간은 뜻밖에 책 읽는 자리도, 일기를 쓰는 자리도 되어줬다. 공간이 생기자 선택지가 넓어진 것이다.
요가는 익숙한 공간뿐 아니라 낯선 공간을 대하는 방식도 바꿨다. 요가를 하기 전에는 여행을 할 때 현지에서만 즐길 수 있는 야외 활동에 목을 맸다. 하다못해 제주도를 가더라도 자전거를 빌려 이틀 사흘에 걸쳐 해안도로 한 바퀴를 돌아야 성에 찼다. 외국에서도 특색 있는 자연경관을 찾아 트레킹을 다녔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좋은 숙소를 찾아다니는 일에는 관심이 덜했다.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여행이나 출장을 떠날 때마다 수건처럼 작게 접히는 여행용 요가매트를 캐리어에 넣어 다녔다. 가능하면 현지에서 열리는 요가 수업을 찾아 들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숙소 한켠에 매트를 펴고서라도 혼자서 수련을 했다. 자연히 숙소를 고를 때도 전에 없던 조건이 붙었다. 요가매트를 깔 만큼 넓고 깨끗한지 아닌지.
2019년 5월 미국 뉴욕 출장 중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요가 수업에 참가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두 다리를 하늘로 쭉 펴는 게 무서웠다.
서울의 요가원이나 내 방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머리서기를 하며 호흡을 고르다 보면 먼 곳에 나오느라 들뜬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떠난 출장지에서의 짧은 요가 수련은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이 주는 흥분에 압도되는 일을 막아줬다. 대신 마음속으로 우선순위를 골라 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할 땐 ‘드디어 일상에서 도망쳤다’는 자극적인 해방감에 빠져드는 대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면 일상을 어떻게 더 잘 꾸려갈지 매트 위에서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
언제든 매트만 펼치면 바로 수련할 수 있다는 건, 어디서든 돌아갈 구심점을 갖게 된다는 의미였다. 최근 정든 직장을 떠나 새 직장에 자리를 잡았을 때도 그랬다. 누군가는 “직장을 옮기는 건 우주가 바뀌는 큰 일”이라고 우려했지만, 낯선 환경에 압도되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 요가매트를 펼 마음의 여유만 낼 수 있다면.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