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영(오른쪽) 작가가 노기 스파링이 끝나고 스파링 파트너와 피드백을 주고받고 있다. 박종혁 제공
주짓수와 냄새, 둘은 영혼의 쌍둥이다. 실제로 주짓수의 과도한 접촉이나 부상의 위험마저 극복한 수련자들조차 넘지 못하는 산이 냄새다. 냄새라는 건 본래 기묘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복병이자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를 살인자로 만든 운명의 방아쇠이며 완벽과 동떨어진 인간성의 물증이기도 하다.
주짓수와 냄새의 만남은 필연적이다. 주짓수 도복은 어떤 운동복보다도 두꺼운데 그런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면 자연히 불쾌한 냄새가 따라온다. 또 주짓수 도복도 냄새만큼이나 기묘한 게, 어떤 동료는 애초에 풀어지게끔 된 형태의 옷을 입고 싸우는 내내 벨트를 고쳐 묶는 게 너무 한심하고 멍청하다고 냉소했다. 듣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아직 한심함과 멍청함을 논하기엔 이르다. 진정으로 한심하고 멍청한 건 두꺼운 옷을 입고 땀을 흘리는 와중에 밀착해서 서로의 냄새를 견디는 거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유익균을 배양해서 음식을 발효하는 것 같은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악취는 두통마저 유발한다는 걸.
이쯤에서 드는 상식적인 의문은 ‘도복 말고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게 아닌가?’인데 그러잖아도 도복을 입지 않고 겨루는 ‘노기’(no gi) 주짓수가 있다. 도복을 입고 하는 게 ‘기’ 주짓수다. 기모노 발음에서 유래한 ‘기’는 주짓수의 도복을 가리킨다.
양민영 작가가 노기 스파링 중에 사이드 마운트 상위 포지션에서 상대를 컨트롤하고 있다. 박종혁 제공
노기 주짓수는 나름의 탄생 배경이 있다. 가장 주된 이유는 실전성인데 알다시피 주짓수는 옷깃·옷자락·벨트 등을 잡고 상대의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하는, 이른바 컨트롤을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누구도 가운 형태의 옷을 입지 않기 때문에 결국 주짓수가 실전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여기에 종합격투기의 인기도 한몫하면서 주짓수를 가장 주짓수답게 하는 도복을 과감하게 없앤,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슬프게도 나는 노기 주짓수가 별로다. 처음엔 도복 대신 스판덱스 소재의 래시가드를 입으면 훨씬 가볍고 상쾌할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일단 래시가드는 몸에 완전히 밀착돼 체형과 체지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포의 레슬링복만큼은 아닐지라도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티셔츠에 도복 바지를 입는 절충안으로 타협할 수 있는데, 사실 노기 주짓수를 잘하고 싶다면 반드시 래시가드를 입어야 한다. 노기 주짓수는 순발력과 민첩성을 극대화해서 상대의 컨트롤을 피하는 게 관건이다. 과장을 보태면 순발력과 민첩성은 전부 매끈하고 걸리는 게 없는 복장에서 나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신 쫄쫄이’라고 불릴 법한 굴욕적인 운동복을 입어야 한다. 그런데도 넘을 수 없는 산은 또 있다! 그건 바로 똑같이 밀착된 옷을 입은 상대와 초밀착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무겁고 두꺼운 주짓수 도복의 정체는 ‘갑옷’이었던 셈이다. 도복은 가뜩이나 접촉이 많은 주짓수에서 일종의 완충재 내지 방어막의 역할을 맡는다. 그 마지노선을 없애버린 노기 주짓수에서는 상대와 나 사이에 얇은 섬유 하나만 남는다.
자연히 노기 수업에서 여성의 출석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눈물겨운 영업과 회유로 겨우 올려놓은 성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도장은 꼭 군대 내무반처럼 남자 일색이고 많아야 한두명인 여성은 스파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그렇다고 모두가 노기 주짓수를 싫어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음식으로 치면 두리안이나 홍어처럼 마니아들이 있다. 노기에 열광하는 이들은 대체로 나이가 어리고 자기만의 주짓수 세계에 빠져 사는 괴짜들이다. 이들이 노기에 열광하는 건 체급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기 주짓수와 다르게 노기 주짓수에서는 그들이 바라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노기는 비록 체구가 작아도, 아니 체구가 작을수록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에 용이하다.
양민영 작가가 노기 스파링 중에 사이드 마운트 하위 포지션에서 탈출하고 있다. 박종혁 제공
노기 마니아들은 이러한 이점을 이용해서 기상천외한 신기술을 연마한다. 기 주짓수에서는 통하지 않을 회심의 기술을 노기 스파링에서 선보인다. 스파링 분위기를 과열시키는 자신을 모두가 싫어하는지도 모른 채로.
이쯤에서 영화 ‘식스센스’의 결말과 견줄 만한 반전을 폭로하겠다. 노기 주짓수가 넘을 수 없는 산도 ‘냄새’다. 두개의 상반된 주짓수 장르가 냄새 아래 하나로 통합되는 셈이다. 래시가드의 악취는 도복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이 냄새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애초에 땀을 흡수하지 못하는 스판덱스가 과도한 땀에 젖으면서 섬유 조직에 냄새 입자가 박히는 걸까? 설상가상으로 도복을 입는 날에도 도복 안에 래시가드를 입는 이들이 많은데 땀 냄새가 밴 래시가드가 새로 흘린 땀에 오염되고 이미 오염된 도복은 도복대로 땀에 젖음으로써 지옥의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냄새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어디에 가나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손끝이 그리 야물지 못한 사람, 좋게 말하면 시원시원하고 나쁘게 말하면 뭐든 대충인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 특유의 둔감함. 앞서 말했듯 냄새란 기묘해서 모두가 ‘나에게서 냄새가 풍길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지만 절대로 장담할 수 없다. 컨디션에 따라서, 작은 실수로 인해서 누구나 고약한 냄새를 풍길 수 있다.
그러므로 주짓수 수련자는 세탁 전문가가 된다. 두 명만 모여도 “구연산이 최고다”, “식초 물에 담가라“, “후기가 1천개씩 달린 섬유유연제를 써봤느냐” 등등의 팁을 공유한다. 또 주짓수를 하기 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준비 과정이 다름 아닌 냄새 감별이다. 되도록 공복의 상태로 후각을 최대한 날카롭게 벼린 다음 마약 탐지견처럼 운동복에 코를 박고 숨을 깊이 마신다. 혹시나 악취가 나지 않는지, 코가 둔해져서 미세한 냄새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그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도 냄새를 감지하지 못하면 그제야 겨우 안심한다. 주짓수는 이런 운동이다.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