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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가을의 오징어 내장탕, 냄비 가득 바다 내음 넘실

등록 2022-09-17 14:41수정 2022-09-17 17:15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오징어 내장탕

발효한 내장 혹은 신선한 것으로
된장·마늘·고추 넣고 자글자글
진한 감칠맛엔 맑은 소주가 제격
향이 짙은 먹물을 넣고 끓인 오징어 내장탕. 박찬일 제공
향이 짙은 먹물을 넣고 끓인 오징어 내장탕. 박찬일 제공

대부분의 내장은 맛있다. 생선 내장도 그렇다. 내장은 젓갈의 맛을 깊게 하고, 그 자체로 맛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은 그 유명한 타파스 노천 바가 많다. 관광객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구석 어느 바에 가면, 기막힌 수프가 있다. 속을 알 수 없는 검고 진득한 액체가 무서운데 한입 뜨면 지옥과도 바꿀 맛이다. 감칠맛이 미원의 열배쯤 되고, 바다 향이 혀를 깊게 적신다. 오징어, 정확히 말하면 작은 갑오징어의 내장과 먹물―먹물집도 내장과 붙어 있으므로 당연히 내장의 일부이기는 하다―을 통째로 넣고 끓인 것이다. 마늘을 몇 쪽, 파슬리를 다져서 툭 던지면 그만인. 네발 달린 짐승의 내장처럼 오래 끓일 필요도 없다. 당신이 좋아하는 소 양찜 같은 건 서너 시간을 끓여야 먹을 수 있지만, 오징어 내장탕쯤은 불을 올리고 그 옆에 붙어 서 있어야 한다. 금세 부르르 끓어오르고 맛을 뿜어낸다.

울릉도의 맛, 누런창

울릉도에서는 가을이 되면 거의 온 군민이 달라붙어 오징어 배를 딴다. 할복이라고 한다. 오징어는 빨리 배를 갈라 말려야 상품이 되는 까닭이다. 이때 솥을 걸고 오징어탕을 끓인다. 내장과 ‘파치’라고 부르는 상품화하기 어려운 찢어진 오징어를 넣는다. 이렇게 신선한 오징어 내장탕은 냄새가 동해 바다를 건너 독도까지 간다고, 현지의 한 지인이 농담을 했다. 내장은 향이 세서 경계가 없다.

정작 그들의 향토 음식은 ‘누런창’이라고 부르는 내장탕이다. 누런창은 간의 색깔이 노래서 붙은 이름이다. 간이며, 오징어 속을 훑어내어 소금에 절인다. 정소나 알이 섞이면 더 맛있다. 소금 쳐서 발효된 것으로 국을 끓인다. 속풀이에 최고다. 대신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관광객들은 호오가 나뉜다. 그래서 요새 오징어 내장탕은 신선한 것을 주로 쓴다. 희한하게 오징어 내장은 냉동하면 맛이 훅 떨어진다. 그때그때 신선한 것이거나, 소금 쳐서 가볍게 발효시킨 것이 맛있다.

요리법도 간단하다. 발효된 누런창을 쓰든, 신선한 것이든 냄비에 넣고 소주 남은 것이나 청주를 조금 넣어 끓이기 시작한다. 술이 없으면 맛술이라도, 그것도 없으면 안 넣어도 된다. 된장, 마늘 다진 것, 청양고추 썰어서 넣으면 끝이다. 고춧가루를 살짝 풀기도 하고, 후추도 왜 안되나. 오케이. 여기서 한 가지 더. 제피가루를 솔솔 뿌린다. 산초가루라고도 하고, 요새 다들 좋아하는 마라탕에 넣는 ‘마자오’ 가루도 같은 거다. 아무거나 다 결국은 제피(초피)다. 산초는 우리가 가루로 만나기 힘들고 기름을 낸다. 산초≠제피다. 하여튼 식당 가서 주인이 산초가루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제피로 알아듣자.

여기서 누런창으로 끓인 울릉도 내장탕과 내가 끓이는 것은 좀 다르다. 누런창국은 먹물을 넣지 않는다. 현지의 어느 어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오징어먹물이 예전에 아주 요긴했다고 한다.

“이쑤시개 대신 썼지.”

예? 아아. 알겠다. 우리가 먹는 오징어는 살오징어다. 이놈은 먹물집이 가늘고 길다. 그래서 말리면 이쑤시개 같은 모양이 된다.

추석이 지나고 10월이 되면 오징어가 몸을 불린다. 오징어는 대개 1년생이다. 같이 안 살아봐서 2년생까지 자라는지는 잘 모른다. 하여튼 5월에 작은 놈이 잡히고 여름 지나면 중치, 가을·겨울 되면 커지고, 사라져버린다. 사람에게 안 잡힌 놈들은 어디선가 알을 까고 죽어갈 것이다. 이게 내가 아는 오징어의 일생이다. 그래서 지금이 좀 씨알 굵고 먹을 만한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할 때다.

오징어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가을에 어민과 시장 상인들은 바빠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오징어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가을에 어민과 시장 상인들은 바빠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오징어 내장탕이나 찜을 하려면 산 오징어를 구하면 최고이겠지만, 다른 어물과 달리 산 오징어는 시장에서 도매로 파는 법이 없다. 수도권 기준으로 산 오징어는 ‘물차’로 산지직송하여 횟집에 공급되거나, 아니면 미사리 수산시장에 가서 사야 한다. 그러니, 시장에서 횟집 말고는 산 오징어를 살 방법이 없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오징어 굵은 놈이 쏟아지는 시월이면 싱싱한 놈을, 살아 있지는 않아도 구할 수 있으니까. 보통 초코오징어라고 부르는 놈이 좋다. 암갈색이 아니고, 산뜻하달까 연한 밀크초콜릿 색깔로 밝게 반짝이는 놈들이 좋다. 무엇보다 오징어 몸통이 퍼졌느냐 보는 게 중요하다. 몸통이 가능하면 원형에 가깝게 탱탱한 게 좋다. 물이 좋은 놈들은 적재하느라 눌려 있어도 덜 퍼져 있다. 이런 걸 시장에서는 ‘깔이 좋다’고 한다. 색깔이 좋아서 상품성이 높다는 뜻이다.

먹물 넣으면 더 진한 맛

오징어 내장은 고르고 바르고 할 게 없다. 이빨(흔히 눈이라고 부르는)도 그냥 먹어도 되고 먹물만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면 된다. 나는 넣는 쪽이다. 색은 검고 진득해서 좀 어색할 수 있는데 맛은 훨씬 진하다. 오징어 먹물은 상대방을 공격하고 시야를 흐려서 도망가기 위해서 뿜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내 생각은 의도가 하나 더 있다. 냄새를 풍겨서 적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먹물은 그만큼 향이 강하다. 부글부글, 자글자글, 다진 마늘 많이. 이런 음식에는 깔끔하고 짜릿한 소주가 좋다. 먹다가 남으면 찬밥을 넣고 버터나 기름을 몇 숟갈 넣는다. 잘 저어주면 이탈리아식 리소토다. 포르투갈식으로 하면 아로스 데 마리스코다.

시장에서 좋은 오징어를 구하는 것도 좋지만, 인터넷으로 살 수 있다. 산 오징어를 파는데, 집에서 받아보면 긴 여정을 오느라 대개 ‘안 산 오징어’다. 그래도 싱싱하고 내장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어서 이 방법을 추천한다. 살은 회 쳐서 드시고, 내장은 탕으로(진하게 끓이면 찜이라고 부르자). 내장만으로는 양이 모자랄 수도 있다. 서너 마리분의 내장을 끓여도 둘이서 섭섭하다. 오징어 살을 같이 넣거나 찬밥 반 덩이 넣는 걸 추천한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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