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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위해 야식하고, 야식해서 선잠 자는 비극 [ESC]

등록 2022-10-08 11:00수정 2022-10-11 11:54

자는 것도 일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시작부터 강조하련다. 다음 유형에 속하는 분들은 이 글을 읽지 마시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분, 먹성 자체가 왕성하지 않은 ‘소식좌’인 분, 주제가 이른바 ‘다이어트’인 거냐며 오독하실 분. 이 글은 불면과 체중의 상관관계를 고찰하는 글이다. 내 체중은 2년 새 10㎏ 늘었다. 팬데믹 시국 대외활동이 줄어든 탓도 있겠으나,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혹독한 불면을 겪어본 나는 안다. 원흉은 불면증이다.

배달음식? 인정한다. 많이도 먹었다. 지금도 먹고 싶다. ‘단짠단짠’ 못 잃는다. 미뢰 복지는 기막힌 쾌감을 주니까. 엔도르핀이니 세로토닌이니 도파민이니 하는 행복호르몬이 죄다 나오니까. 주로 야심한 밤이었다. 출출하면 잠이 더 안 오니 잘도 흡입했다. 불면인들이 대동단결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귀네스 팰트로를 성토해야 한다. 할리우드 배우이자 웰니스 사업가인 그가 그랬다. “여러분, 위를 비워야 잠이 잘 옵니다.”

뭡니까, 이게? 위가 비어서 꼬르륵댈수록 정신이 총총해지는 저 같은 중생은 어쩌라고요. 사람이 사람을 자괴감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그래요, 어? 솔직히 그런 밤 있잖습니까. 얼마나 먹어댔는지 위장은 팽팽해지다 못해 찢어질 것 같고, 음식물이 식도까지 차올라 유기물 덩어리에 불과한 육신이 알알이 폭발할 것 같은 밤. 와중에 잠은 왜 또 솔솔 쏟아지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밤.

나는 그런 밤이 제법 많았다. 이대로 자면 후회할 게 뻔한데. 아침이면 더부룩한 배를 움켜쥔 채 일어나며 머릴 쥐어뜯는 전개. 찝찝하다. ‘달밤에 체조할 에너지를 주시오, 제발…’이라고 해봤자 염원은 공허하고 의지는 박약하게 마련이라 이튿날 발견하는 건 조상님도 모르게 잠든 나 자신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푹. 아침이 밝을 때까지 한번도 깨지 않고 저세상 꿈나라로 가버린.

그래, 유독 잠들기 힘든 밤이면 나를 학대하는 행위에 가까운 섭식을 한 건 사실이다. 마조히즘적 포만감을 즐겼달까. 그게 오랜만에 입은 원피스가 터져야 할 만큼 잘못한 일이란 말인가? 결혼식에 참석한 날이었는데, 심지어 내가 혼주였다. 어깨솔기가 터진 줄도 모르고 하객 인사를 해댄 꼴이라니. 유리 지갑 털면서 느낀 죄책감은 또 어떻고. 청바지며 슬랙스며 지퍼가 안 잠기니 새로 사야 했다. 아, 멀쩡한 옷 두고 하는 쇼핑. 별로다. 돈 낭비, 환경 파괴로 여긴다. 그렇다고 내가 종일 먹어댔느냐. 글쎄다. 낮엔 ‘소식좌’까진 아니어도 입맛이 없는 편이다. 서러운 마음에 과학공부를 해봤다.

호르몬, 어디든 빠지지 않는 오지라퍼 또는 만능키. 역시나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잠을 못 자면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활성화되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이 줄어드는 반면 식욕을 증가시키는 그렐린은 늘어난다. 호르몬 균형이 붕괴된다. 결과는? 가짜 배고픔. 맞다, 여러분이 종종 느끼는 그거. 실제론 에너지원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이것저것 집어 먹게 되는. 밤에는 물론이고, 일하는 낮에도 초콜릿이며 빵을 주섬주섬하는.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에 따르면 4시간을 자면 9시간 잘 때보다 약 300킬로칼로리를 더 섭취한다고 한다.

배가 부르면 쉽게 잠드는 것도 과학적으로 일리 있는 현상이었다. 혈액이 위장으로 쏠리면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박해일을 탕웨이가 재워줄 때 나온 ‘해파리 수면법’을 시도해볼 필요도 없이 입면장애(잠이 들기까지 어려운 것)가 해결되는 거다. 그거면 되지 않느냐고? 설마요. 때는 숙면이 필요한 밤이잖나. 식곤증이 쏟아지는 오후와는 다르다. 자정 넘어 먹은 라면이, 치킨이, 떡볶이가 소화됐을 리 없다. 펩신이나 말타아제를 분비하는 소화기관도, 그걸 관장하는 뇌세포도 밤새 쉬질 못하니 겉으론 자는 것처럼 보여도 깊은 잠은 불가능하다는, 뭐 그런 결론인데….

아아, 망할. 숙면인 줄 알았던 시간이 가짜 숙면이었다는 뒤통수! 어쩐지 야식을 먹고 나면 통잠을 잤음에도 개운치 않더라니. 야식은 햄릿의 딜레마 같달까. 수월한 입면이냐 불가능한 숙면이냐, 그것이 문제인. 여기서 드는 의문. 보통은 야식을 먹으면 중간에 깬다고들 하던데, 나는 왜 예외일까? 돌이켜보건대, 어쩌면 내 마음속에 도사린 부정적 명령어를 내팽개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대로 잠들면 안 된다는 강박적 경계심, 중간에 깨서 움직이지 않으면 짐승에 불과하다는 자아비판에 근거한 채찍질 같은 거. 원래 인간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하지 말라면 더 한다고 하던가. 나보고 청개구리라던 어머니 말씀은 진리였다.

해결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팥으로 팥죽 쑤는 소리일지언정 야식은 멀리, 운동은 가까이하는 수밖에. 불면은 야식을 유발하고, 야식은 숙면을 방해하고, 불면은 또 신진대사와 혈액순환을 저하시켜 똑같이 먹어도 지방이 쉽게 축적되는 체질을 만든다니 이 악순환을 어째. 끊어봐야지. 노파심에 말하자면, 나는 지금 이대로 내 모습도 좋다. 체구가 좀 큰 외형이 내 자아상과 어울린다고 보는데다 뱃살이 어쨌다는 둥 내 신체를 파편화해가며 검열할 생각 따위 없다. 다만, 지금은 체지방만 늘고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은 줄어든 상태라 킥복싱과 크로스핏을 시작했다는 티엠아이(TMI)를 밝힌다. 수면 부족으로 앙상해진 뇌세포도 근육으로 살찌길 바라며.

뭐 좀 재밌긴 하더라고. “건강하려고 운동하냐, 운동하려고 건강하지.” 펭수의 명언이 쭉 옳기를. 펭빠!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

야식증후군을 조심하자. 하루에 먹는 음식 중 50% 이상을 저녁에 먹고 불면증이 동반된다면 야식증후군이다. 깔깔한 컨디션 탓에 아침과 점심은 건너뛰거나 깨작거리게 되고, 저녁은 폭식하는 일이 반복된다. 뇌세포가 야식을 소화하느라 밤에도 운동하게 되면 질 높은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감소한다.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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