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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먹을 시절이다. 가을이라 기름이 오른다. 추어탕집에 가면 두 가지 선택의 고민이 놓여 있다. 통마리냐 갈아서냐, 산초를 넣느냐 마느냐. 통마리란 미꾸라지가 보이게 통째로 끓이는 방식이다. 원래 서울(경기)식이다. 요샌 대개 갈아서 팔지 통마리는 보기 힘들다. 서울의 명물 노포인 용금옥(중구 다동 165-1)에 가면 선택할 수 있다. 구리시의 노포 충남식당(수택동 414-7)에서도 가능하다. 통마리는 당연히 갈지 않았으니까 국물이 가볍고 맑은 편이다.
미꾸라지는 기름기가 은근히 많아서 끓이면 국물이 ‘두툼’하다. 추어탕에는 보통 청양고추 다진 것을 넣게 되는데, 땀을 훔치며 먹는 맛이다. 산초가루라고 놓여 있는 것은 실은 제피(초피)다. 제피는 고추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매운맛 담당이었다. 후추는 비쌌고, 제피는 자생하는 것이 흔했다. 제피는 경상도에서 많이 먹는다. 경상도 안에서도 제피 북방한계선이 있다. 경북 문경-의성 라인 아래가 즐긴다고 한다. 제피는 톡 쏘는 매운맛이 자극적이다.
마라(麻辣)의 마가 바로 제피의 몫이다. 마라탕이니 마라샹궈니 하는 것은 결국 지구상에 있는 맵고 톡 쏘는 것을 다 때려넣은 것이다. 라는 랄(辣)이며, 맵다는 뜻이다. 고추가 담당한다. 마는 얼얼하고, 라는 맵다. 마는 앞에서 치고, 라는 뒤에서 민다. 혀를 짓이기듯 얼을 뺀다. 마취되어서 주사를 놓아도 모를 것 같다. 마라는 원래 사천(쓰촨)식이다. 그 지방정부의 보건당국은 공식적으로 마라 섭취를 줄이자고 권고한다. 위장에 안 좋기 때문이다. 듣기로, 그 지역의 병원 제산제 처방량이 제일 많다고 한다. 그래도 매운 것은 유혹적이다. 쓰촨요리는 원래 맛있기로 유명해서 베이징 같은 곳에 뿌리내린 지 오래지만 전국적으로 마라탕 열풍이 퍼진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기어이 한국에도 왔다. 요새 젊은 친구들은 매운 게 당길 때 떡볶이 대신 마라탕 먹으러 간다.
우리나라 중국집도 유행이 있다. 정통 중국요리라고 하면서도 산둥요리라고 써놓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히려 사천요리라고 써놓는다. 정작 사천요리는 거의 볼 수 없다. 그나마 마파두부는 더러 파는데, 정통의 맛이 아니다. 마가 빠져 있다. 맵기는 한데 얼얼하지 않다. 왜 그랬을까. 한국에서 제피가루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현지인의 입맛에 맞추는 게 중국식당의 표준 전략이다. 이탈리아에 가면 중국식당에서 스파게티를 판다. 이탈리아 음식처럼 코스화시킨다거나 디저트를 강화한다. 현지인들의 기호에 맞추는 거다. 마파두부에서 마가 빠진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1990년대 들어서 한국에 오기 시작한 신(新)화교가 하는 식당에 가면 마를 잘 쓴다. 요즘은 전국에 이런 식당이 많고, 마파두부는 거의 다 판다. 마파두부는 첫입에 네번 혀가 놀란다. 마가 얼얼하게 후려치면, 라가 온몸의 열을 올리게 맵게 밀고 온다. 매운 것이 뜨거우니 세번째로 혀가 놀라고, 네번째는 맛있어서 혀가 무릎을 꿇는다. 중국인들은 음식에 사연 붙이는 걸 좋아한다. 만두의 제갈공명의 남만 정벌 전설 같은. 마파두부는 옛날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에 살던 얼굴이 얽은 노파가 파는 기막힌 두부요리에서 왔다고 한다. 대체로 이 기원설은 사실로 보인다.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전하기 때문이다.
마파두부는 주문하고 직원이 가져다줄 때 이미 코부터 자극한다. 혀에서, 뜨거운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점막을 건드리다가 위를 후빈다. 우리 몸을 온전히 유린하고 사라져간다. 음식 얘기하면서 뒷얘기(?)를 해서 안됐지만, 많이 먹으면 화장실에서도 고통을 준다. 뒤끝 있는 음식이다. 마라는 강력한 중독성이 있다. 잊고 있다가 한번씩 생각난다. 대체로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지칠 때다. 그걸 우리는 ‘땡긴다’고 표현한다. 마라를 먹으면서 땀이 흠뻑 흐르고, 식어갈 때 느낌이란 마치 상처를 쥐어뜯을 때 느끼는 역설적 쾌감 같다. 내 친구는 마파두부 먹고 나가서 걸으면서 이런 기시감이 든다고 했다. “한겨울에 아버지랑 동네 목욕탕 갔다가 나오면 찬바람이 훅 오잖아. 그때 탕에서 달궈진 아직 따뜻한 얼굴에 파고드는 바람이 얼마나 청량했던가.”
마파두부는 만들기 쉽다. 레시피가 복잡한 듯하면 기성 소스를 써도 된다. 자, 내가 만드는 방식이다.
① 두부 한 모(부드러운 찌개용)를 2㎝로 자른다. 5분쯤 끓는 물에 데쳐 둔다. 그래야 모양이 잘 버틴다.
② 다진 마늘과 두반장 2큰술을 기름에 볶는다. 여기에 다진 돼지고기 100g을 같이 넣어 볶는다. 제피가루를 조금 뿌린다. 진간장도 한 큰술 넣는다. 이때 육수가 있으면 두 컵 부어준다. 없으면 물을 붓는다. 두부를 넣고 조린다. 굴소스가 있으면 넣고 설탕도 조금 넣는다.
③ 어느 정도 졸아들면 전분 1큰술을 물 5큰술 정도에 풀어서 ②에 넣어 농도를 낸다. 파와 고추기름, 후추 등을 뿌려서 마무리한다.
④ 마자오 기름 등을 요새는 인터넷이나 중국식품점에서 판다. 이걸 조금 뿌리면 훅 올라온다. 그냥 기성 소스(마파두부 소스라고 판매한다)를 사서 쓸 때는 다진 마늘, 고기, 파 등의 신선한 재료는 추가해야 하고, 마자오 기름, 제피가루 등을 더 넣어야 맛이 전통에 가까워진다.
매우니까 꼭 소주 안주로만 어울릴 것 같은데 의외로 맥주 안주에도 좋다. 나는 주로 맥주에 마신다. 뜨거운 것을 입에서 씹다가 차가운 맥주를 부어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는 셈이다. 향이 좋은 크래프트 맥주보다 시원한 맛으로 마시는 평범한 맥주가 더 잘 어울린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