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생말로의 산책길을 걷는 여행객들. OFFGstudio 김은주
“나에게 일주일간의 삶이 남았다면 생말로에서 남은 인생을 보낼 것이다.”
<인간의 조건> 등을 쓴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생말로를 향한 이런 사랑의 말을 남겼다. 인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싶은 곳이라니. 과연 어떤 곳이기에 그는 그토록 그곳을 원했을까. 생말로는 프랑스 북서부 지역에 있는 작은 해안가 마을이다. 6세기에 주교 성 말로가 화강암으로 된 작은 섬 위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마을이 생겼고, 이후 12세기에 성벽과 건축물이 들어섰다.
생말로는 프랑스 13개 행정구역(레지옹) 중 브르타뉴에 속해 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에서 가장 지역색이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영국에 살던 켈트족이 이곳에 정착해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939년에서 1547년까지 독립국인 브르타뉴 공국으로 존재했다. 고유 언어인 브르타뉴어도 남아 있다. 프랑스 속의 또 다른 프랑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거친 파도를 막기 위해 세운 참나무 방파제. OFFGstudio 김은주
지난달 27일에 찾은 생말로에는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바람이 대수랴, 생말로를 찾은 여행객들은 해안가 성벽을 걷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다에 있는 작은 두 섬. 그랑베섬과 프티베섬이다. 그랑베섬에는 생말로 출신의 소설가 프랑수아르네 드샤토브리앙의 무덤이 있다.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이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큰 해변 중 하나로, 밀물과 썰물 때 해수면의 높이가 무려 13m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거친 파도로부터 성벽을 보호하려고 세운 참나무 방파제가 있다. 수백년 전에 세운 5m 넘는 참나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풍경이다. 해 질 녘 풍경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생말로는 해적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16세기에 프랑스 왕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적국의 배에서 물건을 약탈하던 해적들의 본거지다. 이 해적들은 침략을 자주 당했던 마을을 지키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잊힌 해적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 성벽 근처에 서 있는 로베르 쉬르쿠프 동상이다. 당시 해적왕으로 악명 높았던 인물이라고 한다.
해적의 도시로 기세등등했던 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아픈 역사도 서려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점령지가 되면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의 80% 정도가 파괴되었다. 이후 30여년 동안 재건 작업을 해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생말로에 견학 온 학생들. OFFGstudio 김은주
생말로에 대해 깊이 알려면 웅장한 성벽 안쪽에 있는 구시가지를 가 봐야 한다. 생말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그곳에 있다. 작은 식당과 식료품 가게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게 벽면에는 무엇을 파는 상점인지 나타내는 중세풍의 그림 간판이 걸려 있는데,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이곳에서는 바닥도 보면서 걸어야 한다. 브르타뉴를 상징하는 동물인 담비가 새겨진 금색 징이 길바닥에 박혀 있다. 성벽 안에 이 담비가 그려진 징이 150개 있는데 관광객 명소 주변에 있다고 한다.
소도시 생말로에는 4만7000여명이 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브르타뉴 중에서도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1590년부터 4년간 “프랑스 사람도, 브르타뉴 사람도 아닌 생말로 사람이다”라고 외치며 독립공화국을 선언하기도 했단다. 생말로 관광안내소의 가이드 알렉상드라는 “생말로에서는 프랑스 국기보다 생말로 깃발을 더 높이 단다. 그런 지역은 생말로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생말로 시청사를 보니 가장 높은 곳에 달린 생말로 깃발이 바람에 세차게 펄럭였다.
관광지 주변에 있는 금색 징에는 브르타뉴의 상징 동물인 담비가 새겨져 있다. OFFGstudio 김은주
중세 시대 건축물을 볼 수 있는 프랑스 브르타뉴의 역사 도시 렌. OFFGstudio 김은주
렌의 샹자케 광장에 있는 목조가옥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 OFFGstudio 김은주
브르타뉴 여행을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행정 중심지인 렌이다. 파리에서 초고속열차 테제베(TGV)로 2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 거리에 있다. 2000년 역사를 간직한 고풍스러운 도시 렌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브르타뉴 의회. 현재 중범죄 재판이 열리는 고등법원으로 쓰이고 있다. 17세기 왕실 건축가 살로몽 드 브로스가 설계한 이곳은 당시의 예술형식을 잘 보여준다. 1883년에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역사유적으로 지정됐다. 1994년 큰 화재를 겪었지만 오랜 시간 복원 작업을 거쳐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건물 내부도 볼 수 있다. 렌 관광안내소에서 사전 방문 예약을 하면 가이드와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브르타뉴 의회 입장료는 7.20유로(약 1만원).
렌에 오면 바닥이 울퉁불퉁한 돌로 된 골목길을 걸어봐야 한다.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오래된 집들이 줄지어 있다. 그중에서 14~19세기 지은 콜롱바주 양식의 목조가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콜롱바주는 중세 시대 건축 형태인 목조건축물로, 나무 기둥으로 틀을 잡고 건초에 회반죽이나 진흙을 붙여 사이를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1720년 렌에 큰불이 나면서 목조가옥이 많이 탔는데, 다행히 불길을 피한 850여채가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샹자케 광장에 가면 렌에서 가장 유명한 목조가옥을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5~6층 높이의 목조가옥들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
렌 관광안내소의 가이드 마들렌은 “목조가옥 뒤에 있는 성벽을 없애고 19세기쯤엔 길을 트려고 공사를 하면서 목조가옥이 점점 옆으로 기울어졌다. 이 건물들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철근을 대고 시멘트를 칠해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조가옥을 보면 중세 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집 외벽에 조각상이 많을수록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조각상 개수가 부의 상징인 셈. 집의 색깔도 부를 나타냈다. 당시에 가장 구하기 힘들고 비싼 염료는 빨간색, 파란색이었다. 그 두 가지 색을 많이 칠한 집이 부유했다고 한다.
렌의 골목을 걷다 보면 빛이 바랜 목조가옥, 이끼가 낀 석조 건물들이 품은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은 버려지지 않고 카페, 식당, 로컬숍 등으로 쓰인다. 렌 골목 곳곳 오래된 집의 역사는 현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돌로 만든 웅장한 성채도 렌의 도심에 남아 있다. 모르들레즈 문이다. 가이드 마들렌은 “렌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다 무너지고 현재 모르들레즈 문만 남았다.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문이다. 예전에 모르들레즈 문을 통과해서 성당에 들어가야 정식으로 브르타뉴 공작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브르타뉴 의회. 현재 고등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OFFGstudio 김은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도원 몽생미셸을 찾은 여행객들. OFFGstudio 김은주
렌 주변 여행지로 가볼 만한 곳은 몽생미셸이다.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경계에 있는 섬이자 수도원이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가장 큰 밀물이 들어오는 대만조 때는 육지가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 마치 바다 위에 섬이 떠 있는 형태를 이룬다. 몽생미셸의 성벽 안에 들어갈 때는 무료지만, 수도원 대성당을 방문하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입장료는 11유로(약 1만5000원). 몽생미셸은 8세기인 708년에 짓기 시작해 완공까지 800여년이 걸린 1300여년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만큼 몽생미셸은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등 시대별 건축양식이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다. 유럽 건축양식의 변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될 테다.
프랑스/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취재 협조: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에어프랑스(airfrance.co.kr), A Modern Journey through An Old Land(voyage-en-bretagne.com)
※10월29일치 지면에 프랑스 서부 페이드라루아르 지역 낭트, 생나제르 여행 기사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