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당최 낭보일까, 비보일까. 불면에 시달리던 내게 과수면 증상이 찾아왔다. 휴일엔 자도 자도 졸음이 쏟아지고, 평일엔 알람을 6개쯤 들어야 일어난다. 불면이 심한 시기에는 새벽 3~4시면 후다닥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거나 알람을 맞춘 시각이 되기도 전에 눈이 떠져 억울한 날이 많았다. 알람이 사실상 무의미했다.
요새는 알람이 거대한 크레바스 같다. 빙하가 갈라지며 생긴 좁고 깊은 틈, 끝 모를 심연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얼음 골짜기. 그 틈새로 미끄러지듯 빠졌다가 기어오르기를 반복하면서도 알람에 알람이 꼬리를 무는 찰나를 의식할 새조차 없이 고요한 무덤이나 다름없는 잠 속으로 내몰린달까.
알람을 아예 못 들은 적도 있다. 저녁 자리에서 대사회적이고 외교적인 말과 함께 폭탄주 순배가 돌아간 이튿날이었다. 일어날 때만 해도 해괴한 꿈에서 헤어나지 못한 탓에 ‘뭐 이런 꿈을 다 꾼담’ 하면서 피식피식 웃었는데, 시계를 보니 당장 박차고 나가도 늦을 판이었다. 과수면을 겪기 전까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과음했건, 이유가 어떻건, 출근에 지장을 주는 상황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편이다. 회사에 다니는 내내 그랬고, 술자리에 참석한 날일수록 못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귀가 외려 더 쫑긋해져서는 득달같이 깨고는 했다. 폭우로 입은 침수피해나 장애인 시위로 인한 지하철 연착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불가항력에도 출근길 문제가 불거질 때면 자괴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고, 그렇게 소스라친 나는 샤워며 세수는커녕 양치질조차 생략한 채, 전날 옷차림 그대로, 그야말로 용수철처럼 튕겨낸 몸뚱이를 거리로 방출시켰다. 그러고는 죽어라 달렸다. 숨통을 옥죄는 심박 수를 체감하면서도 슈퍼파워라도 부여받은 히어로마냥 뛰었다. 거의 미션 임파서블 급에 가까웠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진리였던가. 사무실로 골인하니 아슬아슬 지각을 면한 시각이었다. 술 냄새 진동하지, 머리칼은 기름 떡이지, 그날 내 옆에 앉은 동료들은 코 좀 틀어막았을 거다.
불현듯 찾아온 과수면에 원인이 있을까? 통제 변인과 조작 변인이 뒤섞였으니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술이 통제 변인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혼술과 홈술은 끊었고, 업무 또는 친소관계에서 생기는 술 약속도 체력 안배에 중점을 두고 잡는다. 주관적이며 적절한 텀이 필수다. 연일 야근 아니면 저녁 미팅을 소화하다가 기립성 어지럼증을 느낀 후부터 사수하게 된 원칙이다.
단언할 수 있는 건 내 피로가 극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더벅머리에 충혈된 눈으로 나선 출근길은 내 꼬락서니만큼이나 가관이리라.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꾸벅꾸벅 조는 살풍경이라니. 겉보기엔 웬 병든 닭 하나가 떡하니 인간의 탈을 쓰고는 헤드뱅잉 하는 걸로 보이겠지만, 어쩌겠어. 눈꺼풀은 무겁기만 하고, 몸은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죄 쑤시는데. 간밤에 누군가로부터 난타라도 당한 것 같은데.
섞어찌개로 끓인 잡탕 같을지언정 추정하는 통제 변인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킥복싱과 크로스핏. 몹시 힘들다. 속근육이 빡빡 땅기면서 근력운동만이 주는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은 있으나, 운동하고 온 날은 축축 처진다. 관절이 약해서인지 몸살을 앓는다.
두 번째는 이것저것 털어 넣기 시작한 약이다. 수납장에 방치된 비타민이며, 오메가3 같은 건강보조제부터 두통약을 비롯한 몇몇 처방제까지. 5가지 남짓인데, 시간은 없지, 약은 많지, 한꺼번에 털어 먹었더니 토할 거 같더라. 동시에 먹으면 안 되는 약이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밤낮으로 띄워 먹기를 택했는데, 먹다 보니 이게 맞나 싶은 거다. 특정 시간대를 피해야 할 수면제 성분 약이 있는 것도 같고.
세 번째는 지금까지 내 몸과 영혼을 업무에 갈아 넣은 대가다. 망할 뻔한 회사를 겨우 살려놨으니 생존은 물론이고, 더 크게 성장시켜야 한다는 욕심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는 게 보인다. 내 심신의 고통을 이제야 받아들이게 된 것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이 보인다. 초과수당 없는 야근을 불사하지 않고는 도무지 소화되지 않는 업무를 굳이 다 떠안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일이란 하면 할수록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점점 더 늘어나는 거였다. 내가 옥상과 옥상을 넘나드는 곡예 활동인 파쿠르 플레이어도 아닌데, 벼랑 끝에서 벼랑 끝으로 점프해야 하는 상황이 끝없이 펼쳐지니까. 척박한 땅을 그나마 일궈놓으면 또 다른 황무지를 일궈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까.
중요한 건 내가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인간의 몸이 소모품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중하다. (친)할머니와 달리 나를 성차별 없이 사랑해주신 (외)할머니가 머지않아 돌아가실 듯하다. 삶의 불꽃이 사위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그저 짐작할 뿐이다. 인간의 몸과 삶이 유구하지 않다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그러니 내 몸과 삶을 돌볼 수 있을 때 돌봐야 한다고. 쉬어가야 할 때는 쉬어가야 한다고. 어쩌면 과수면은 나에게 소리치는 건지도 모른다. 너는 너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언제까지 이럴 셈이야?
이주의 ‘불면 극복’ 솔루션 ★★★☆☆
밤에 하는 격렬한 운동은 피하자. 자기 직전 강도 높은 근력운동을 하면 오히려 교감신경을 자극해 숙면을 방해한다. 운동은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까지 끝내는 것이 좋다. 몸이 찌뿌둥해서 밤에 꼭 운동하고 싶다면 간단한 체조나 스트레칭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강나연 <허프포스트코리아>·<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