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난생처음 장거리 트레일러닝 대회에 도전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5㎞ 안팎 거리를 일주일에 서너번 달리고, 풀 코스 마라톤도 완주했지만 바깥 활동이 줄자 달리는 빈도와 거리도 줄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뒤에도 자주 달리는 습관을 되찾기 쉽지 않았다. 대회를 두 달가량 앞두고 벼락치기 준비를 하면서 여성 트레일러닝 유튜버 ‘체체체’의 영상을 즐겨 봤다. 산을 달리다가 힘들면 남들에게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아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러보면 의외로 큰 도움이 될 거란 조언도 도움이 됐지만, 내 귀를 더 잡아챈 건 그가 최근 올린 한 영상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운동이 내 삶을 얼마나 차지하고 있나요?’
체체체는 ‘워크-라이프 밸런스’(일과 삶 균형)란 의미에서의 ‘워라밸’만큼이나 ‘워크아웃(운동)-라이프 밸런스’ 측면의 워라밸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운동을 하는 시간을 내느라 정작 직장생활이나 친구, 가족 관계 등에 지장이 갈 정도여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내 요가 선생님이 들으면 가슴을 칠지 모르지만, 일주일에 세 번씩 새벽 요가 수련을 가는 삶과 일, 친구 관계, 가족 관계 등 다른 삶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 내겐 여전히 어렵다.
“주말에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가족 모임이 생겨 장거리 운동을 못 하게 되면 그게 그렇게 아쉽고, 안타깝고, 내가 엄청나게 손해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운동이) 내 삶에서 제일 즐거운 건 확실해, 그런데 운동이 아닌 내 삶은 뭐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체체체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코로나19로 모든 실내 체육시설이 기약 없이 문을 닫은 뒤, 나는 달력에 동그라미 치는 재미로 그나마 매일 수련하는 습관을 몸에 익혔다. (10월 1일 치 ‘방구석 수련자에게도 ‘아사나’가 찾아왔다’) 오프라인 수련실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언젠가 또 타의로 방구석 수련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일과 중 요가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기 시작했다. 매달 초면 다이어리를 펼쳐 요가원 가는 날부터 적은 뒤 남는 날에만 취재원이나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친구들은 “왜 이리 얼굴 보기가 어렵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조정이 도무지 어려운 일정이 생겨 수련을 걸러야 하는 날이면 체체체의 말처럼 ‘엄청난 손해라도 본 것 같은’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요가 수련자들에게는 ‘문데이’라는 게 있다. 달이 완전히 차는 보름날과 완전히 기우는 그믐날, 한 달에 이렇게 이틀은 수련 대신 조용히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많은 요가원이 이 두 날엔 문을 닫는다. 요가 선생님은 “에너지가 지나치게 뻗치거나 가라앉는 날에 무리하게 수련을 했다가는 부상을 얻기 쉽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겐 한 달에 딱 두 번 있는 이 날이야말로 마음껏 노는 날이었다. 격조했던(?) 친구들과 필사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멀리 여행을 떠날 때도 수련이 있는 날은 피하고 되도록 문데이를 이용해 일정을 잡았다.
1년여 전, 저녁에서 새벽으로 수련 시간대를 옮겼다. 저녁 자리와 요가 수련을 두고 갈등할 필요가 없겠다고 기뻐했다. 문제는 떠들썩하게 논 다음 날이었다. 둘 모두를 좇다 보니 수면 시간을 희생하게 됐다. 몸이 비명을 질렀다. 입안은 퉁퉁 부었고, 몸은 뻣뻣해졌다. 수련 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도 다반사였다. 선생님도 ‘이럴 바엔 차라리 잠을 한 시간 더 자라’고 나무랄 정도였다. 어느 날은 숙취가 다 가시지 않은 채 꾸역꾸역 요가원에 가서 시르사아사나(머리 서기) 자세를 수련하다가 구토를 할 뻔한 적도 있다.
체체체의 말을 조금 변형하면, 워라밸뿐 아니라 워워밸, 워크아웃-워크아웃 밸런스도 내게는 큰 숙제다. 요가뿐 아니라 달리기와 등산, 수영, 웨이트트레이닝 등 다른 운동도 즐기고 싶은데, 이런 고강도 운동들은 모두 열심히 늘려 놓은 근육들을 다시 수축시켰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느라 발목과 무릎, 허벅지 등 다리에 긴장이 커진 다음 날에는, 종아리를 양옆으로 빼 엉덩이가 바닥에 닿도록 해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뒤로 눕히는 ‘숩타 비라아사나’나 몸을 거꾸로 된 활처럼 뒤로 젖히는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처럼 허벅지 앞쪽 근육을 늘리는 자세를 할 때마다 고문을 받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인스타그램 속 요기니들이 뽐내는 멋진 아사나(요가 자세)를 나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 요가 이외 다른 운동들을 과감히 ‘다이어트’ 해 본 적도 있다. 지난해 여름 하타요가 지도자과정을 밟을 때였다. 술이나 고기 중 하나를 끊으면 몸을 더 유연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란 선생님의 권유에 (술은 차마 못 끊고) 육류 섭취를 두어 달 피했다. 긴장이 적으니 몸이 확실히 부드러워졌다. 특히 ‘아르다 마첸드라아사나’와 같이 척추를 비트는 자세들에서 가동 범위가 이전보다 커졌다. 하지만 숨이 가쁘게 차오르는 운동을 하지 않으니 전반적인 바이오 리듬이 떨어지는 듯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하는 생각에 운동 다이어트를 그만뒀다.
최근 다니기 시작한 케틀벨 운동 전문 체육관 관장님은 첫 수업 시간에 “아기 엄마라면 아기를 하루에 5분 더 안아줄 수 있는 근력을 기르고, 직장인이라면 하루에 한 시간 더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을 수 있는 지구력을 기르는 게 운동의 목표여야 한다”고 말했다.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오늘 운동하는 데 에너지를 다 쓰느라 내일 일상생활을 해내는 데 지장이 있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요가도 마찬가지 아닐까? 오늘만 매트 위에 오르고 내일은 안 오를 것 아니니까, 내게 즐거움을 주는 다른 활동들과 요가 사이 나름의 균형점을 계속 찾아보려고 한다. 남들보다 뻣뻣하고 더디더라도.
글·사진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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