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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건너뛰기엔 너무 매력적이야, 오프닝의 세계

등록 2023-02-18 07:00수정 2023-02-18 11:41

커버스토리 드라마 오프닝 영상

본편 직진하느라 넘기는 건 옛말…‘건너뛰기’ 하다가 멈칫
<더 글로리> 등 웰메이드 오프닝은 ‘숨은 설명서’로 회자
“오프닝은 무늬 하나하나가 본편에 연결된 의미 있는 포장”
극 중 문동은(송혜교)이 겪었던 학교폭력의 도구로 쓰인 고데기로 꽃을 형상화한 &lt;더 글로리&gt;의 오프닝 타이틀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극 중 문동은(송혜교)이 겪었던 학교폭력의 도구로 쓰인 고데기로 꽃을 형상화한 <더 글로리>의 오프닝 타이틀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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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시간을 기다려 티브이(TV) 앞에 앉지 않아도 드라마 몰아보기가 가능한 오티티(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환경에서 오프닝 타이틀 장면은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SBS)의 유쾌한 애니메이션 오프닝 타이틀은 각종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티저 영상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로 매회 쫄깃함을 선사했던 <작은 아씨들>(tvN)은 오프닝 타이틀 속의 복선을 통해 등장인물의 생사를 추리하는 유튜브 영상이 수십만회씩 재생되었다. ‘오프닝 건너뛰기’가 일상화된 지금이지만, 오히려 건너뛰기를 잊게 하고 볼수록 새록새록 의미가 솟는 오프닝 타이틀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즈음이기도 하다. 미드 부럽지 않은 매력적인 오프닝 타이틀을 만드는 이들이 궁금하지 않으신지?

예고편 버금가는 ‘복선’ 그리기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의 시청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일터로 향하는 우영우(박은빈)의 하루를 오프닝 시퀀스로 제일 처음 만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본편을 통해 고래를 사랑하고 김밥을 고집하며 소음에 예민한 주인공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본편을 보고 다시 오프닝을 보면, 그의 시야와 내면을 반영하는 오프닝 속 숨은 고래 찾기는 처음보다 훨씬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오프닝을 처음 볼 땐 꽃의 형상이 등장하는 장면을 무심코 넘겼으리라. 하지만 이게 극 중 문동은(송혜교)이 겪었던 잔혹한 학교폭력의 도구, 고데기와 다리미였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촘촘한 복선으로 가득한 <빅마우스>(MBC), 미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재벌가 구성원들의 으스스한 초상화가 등장하는 <재벌집 막내아들>(JTBC), 수학 일타 강사의 교재에 반찬이 어른거리고 반찬가게 사장의 레시피에 수학 공식이 스미는 <일타 스캔들>(tvN)은 또 어떤가. 오프닝 타이틀은 드라마에 몰입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주는 선물 같은 장면들로 시청자에게 재발견되고 있다.

이런 드라마 오프닝 타이틀을 제작하는 ‘오프닝 장인’들이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의 오프닝 타이틀을 제작한 ‘언디자인드 뮤지엄’ 조경훈(39) 대표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디피>(D.P.)의 오프닝을 만든 ‘비주얼스 프롬’의 정진수(35) 감독을 만나, 그저 ‘건너뛰기’ 하기에는 깊고도 넓은 오프닝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스토리 보드. 언디자인드 뮤지엄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lt;일타 스캔들&gt;의 오프닝 타이틀 중 한 장면. tvN 제공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오프닝 타이틀 중 한 장면. tvN 제공

“그 자체로 볼거리이자 재미 요소”

모션그래픽 스튜디오인 언디자인드 뮤지엄은 유독 영화나 드라마 오프닝 타이틀 작업이 많은 곳이다. 조경훈 대표는 영화 <국가대표>로 시작해 올해로 17년차 제작자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 오프닝은 미국 문화·패션 월간지 <배니티 페어>의 ‘오스카 영화제에 타이틀 시퀀스 부분이 있다면’이라는 기획 기사에서 베스트5에 오르기도 했다.

―언디자인드 뮤지엄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리의 최종 결과물이 기술적으로 훨씬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래도 해당 작품만의 콘셉트를 준비할 줄 아는 점이 감독님들이나 클라이언트에게 어필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작품을 분석하는 것을 굉장히 중시한다. 1970~1980년대 미국 타이틀은 영화 전체를 함축하는 특징이 있었는데, 제가 그 방향을 좋아하고 그쪽 공부를 많이 했다. 최근작 중에는 <더 글로리>도 작품을 분석하고 상징이나 코드를 많이 심어놓는 의도로 만들었다.”

―<더 글로리>의 오프닝 시퀀스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드라마를 해석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본 적이 있다.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는지.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그 드라마가 잘돼야 한다.(웃음) <더 글로리>는 복수극이기도 하지만 문동은의 성장기라고 보았고, 시각적으로 어떻게 풀까 생각한 답이 꿈꾸던 일을 이루는 동화였다. 차갑고 잔혹한 동화. 소녀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레퍼런스로 넷플릭스 시리즈 <빨간 머리 앤>의 오프닝 타이틀을 떠올리고 영감을 받기도 했다.”

―<빨간 머리 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드라마이기도 하고 오프닝이 기억나는데, 둘 사이의 연관성은 떠올리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 오프닝 타이틀은 표절 논란이 잦았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골든 크로스>(KBS)가 미국 <에이치비오>(HBO) 채널의 <트루 디텍티브> 오프닝을 컷 단위로 베꼈던 건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말씀하신 드라마 말고도 정말 많은 표절이 있었다. 인체 실루엣에 풍경 등을 겹치는 이중 노출 기법은 <트루 디텍티브>가 처음이 아니다. 멀리는 ‘007 시리즈’에서 여성의 신체에 빔프로젝터를 쏘는 방식도 연결된다. <트루 디텍티브>는 그 기법을 활용해서 해당 드라마에 딱 맞는 멋진 작업을 만든 건데, 재해석이나 변화 없이 결과물을 베끼니까 표절이 된다. 작품 분석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인데, 그 작품만의 맥락을 찾아가야 표절이 안 나온다.”

―오프닝 건너뛰기가 가능한 오티티 환경에서 오프닝 타이틀의 중요도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클라이언트 중에서도 다들 건너뛰기 하는데 오프닝에 왜 돈을 쓰는가 하는 분들도 있다. 반대로 건너뛰기를 하든 안 하든 내 작품에 걸맞은 좋은 오프닝을 가져가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의 윤종빈 감독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타이틀은 그 자체로 볼거리이기도 하고 본편의 즐길거리를 더해주는 요소라 생각한다. 작품을 감싼 오프닝 타이틀이 그저 예쁜 포장지가 아니라 무늬 하나하나가 본편에 연결된 의미가 있는 포장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오프닝 타이틀 작업은 외주이면서도, 40초에서 1분 남짓한 시간에 본편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창작의 영역에도 걸친 것 같다.

“돈을 받고 제작해주고 저작권은 모두 클라이언트가 가져가니까 제작 대행이 맞지만, 일할 때는 창작이라고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식으로 연출했는데 피드백은 양식에 쓰는 재료를 넣어달라고 한다. 요구대로 반영하고 손을 놓는 성격이 못 되니까 스스로 납득하고 말이 되는 결과물을 내놓으려는 고집이 있다.”

드라마 &lt;디피&gt;의 오프닝 타이틀.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디피>의 오프닝 타이틀. 넷플릭스 제공

“센 작품이라면 오프닝이 숨 쉴 틈”

정진수 감독은 비주얼스 프롬에서 인디밴드부터 케이팝 스타까지 다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이다. 그의 감각은 드라마 오프닝 타이틀에서도 빛이 나는데, 마음 어딘가를 먹먹하게 하는 서사를 잘 그린다는 평을 받는다. 정 감독은 감상자의 정서를 먼 곳 어딘가까지 데려갔다 오곤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디피>의 오프닝 타이틀은 입영식을 치르는 무리 속에서 초연하게 돌아보는 안준호(정해인)의 모습이 회마다 다른 상념으로 이끌었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클래스 1>은 학교 안팎의 폭력에 휘말리는 세 친구들의 좋았던 시절이,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 아픈 아내를 위해 서툴지만 신중한 요리를 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매번 다르게 사무친다. 그가 시청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이 궁금해 물었다.

―<디피> 오프닝 타이틀은 입대 경험이 있건 없건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정서가 있다. 가족이나 연인을 배웅했던 경험이 아니라도 어수선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기억 속에서 끌어올리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영상은 점점 더 또렷하고 선명해지고 그 수준이 굉장히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디피>의 시대 배경은 지금보다 좀 더 과거 시점이니까 경계선이 무너지고 해상도가 떨어지는 영상으로 시간 차를 내보고 싶었다. 기억에 시간이 더해지면서 낡고 흐려져 추억이 되듯 영상에 시간을 입히는 방법으로 캠코더를 가져가 찍었다. 오프닝 타이틀의 앞부분은 익명 느낌의 파운드푸티지(출처 불명의 묻힌 영상)들이 들어가니까 마지막에는 집단 속의 개인이라는 느낌이 주인공과 연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도열한 무리 속에서 정해인 배우가 돌아보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촬영본에 필터로 노이즈를 만든 게 아닐까 했는데, 캠코더 영상이라니 뜻밖이다. 어쩐지 입소식 장면의 카메라 무빙이 입대하는 이의 가족이 찍은 듯 어설프기도 했다. 혼자 입대한 안준호가 남의 가족 캠코더 영상에 담겼다고 생각하니 더 짠하다.

“제가 가족에 빙의했다.(웃음) 한준희 감독님이 시간을 빼주시고 동의해주셔서 가능했다. 좀 더 좋은 카메라도 가지고 와보는 게 어떠냐고 하셨는데, 좋은 걸로 찍으면 나중에 좋은 걸로 쓰고 싶어지니까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동트기 전 새벽의 짙푸른 색조로 시작하는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클래스 1>은 등교하는 인파 속에 주인공 세 사람의 이목구비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침침한 오프닝 타이틀이 파격적이었다. 매회 계속 보다 보니 마치 어둠 속에서 눈이 익숙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실루엣은 계속 인식할수록 깊게 나눌 수 있는 이미지다. 공부에 몰두하는 연시은(박지훈), 격투기를 했던 안수호(최현욱), 왕따를 당해 전학 온 오범석(홍경). 이 셋은 그냥 그런 아이들 속에서도 나름 특별한 아이들인데 오프닝에서는 새벽 등교하는 검은 실루엣 무리 중에 하나인 것처럼 보이게 해서 그 특별함을 오히려 지워버리려 했다. 학교폭력을 다루는 이야기가 어디에나 있고, 우리 학교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로 오프닝에서 다가갔으면 했다.

―극 중 셋이 같이 하교하는 장면은 있었지만 등교하는 신은 없었다. 안수호는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새벽에 학교에서 씻고 잠드니까 등교하는 시간이 어긋난다.

“그러니까 같이 등교하는 장면은 성립할 수 없는 장면인데, <디피>에서 정해인 배우가 돌아보면서 집단 속의 개인을 도드라지게 했던 방식과 반대로 셋이 무리 속으로 섞여 분간하기 어렵게 하는 장면을 오프닝에 쓰자고 유수민 감독님과 제작사에 제안을 드리고 노순택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 어두운 역광 실루엣을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기도 했었다.”

―앞선 오프닝 타이틀은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의 영상과 배우의 얼굴이 붙는다. 배우가 도드라지고 튈 것 같은데 의외로 배우들의 모습이 익명과 다수의 얼굴에 이질감 없이 섞이고 한 개인이자 모든 이들의 보편적인 삶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융화가 가능한지?

“우리가 보는 배우들의 얼굴은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잘 세팅된 카메라와 렌즈, 조명의 컨디션하에서 만들어진 섬세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해서 말씀하신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자연광하에서 촬영하거나 카메라의 질감을 좀 더 보통의 것으로 접근했다.”

드라마 &lt;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gt;의 오프닝 타이틀 중 한 장면. 왓챠 제공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오프닝 타이틀 중 한 장면. 왓챠 제공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의 오프닝 타이틀은 음식을 만드는 남자의 신중한 움직임 속에 살짝 당근 조각이 튀거나 계란 껍데기 조각이 빠지는 장면에 눈이 간다. 덕분에 실제 요리를 하는 느낌도 있다.

“실수가 우스꽝스러워 보이면 안 되니까 오프닝 촬영하는 대역배우분에게 잘 설명을 드렸고, 계란 껍데기 같은 디테일은 요리를 하시는 어머님들이 보시면 ‘아이고’ 하실 만한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오프닝 타이틀에 공감과 접점을 만드는 한편,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에 감성적인 오프닝으로 이질적인 분위기를 충돌시키는 것도 흥미롭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저는 직설적인 것보다 갭을 만드는 것이 레벨이 올라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편이다. 센 작품이라면 그렇지 않은 오프닝이 숨 쉴 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 회차마다 한컷씩 쌓이면서 드라마와 함께 완성되는 오프닝을 구상해보기도 했다. 좀 더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어서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짧은 비디오들이 있다. 2주 후에 ‘테이크 어 브레스 티브이’(takeabreath.tv)라는 사이트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궁금하신 분들이 들러주시면 감사하겠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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