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수리하는 김수미 ‘긴쓰기’ 공예작가.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여러 조각으로 깨진 유리컵, 한 줄 금이 간 접시, 이가 나간 밥그릇, 손잡이가 떨어진 찻잔…. 한쪽 벽에 있는 나무 선반에는 상처 난 그릇들이 가득했다. 깨진 것도, 금 간 선 모양도 각기 다른 그릇들. ‘그릇 병원’ 같은 이곳은 어떤 곳일까.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공예 작업실. 김수미 ‘긴쓰기’(킨츠기·金継ぎ) 공예작가가 그릇의 금 간 부분에 금가루를 칠하고 있었다. 금가루가 묻은 그릇 단면의 선이 도드라졌다. 손상된 그릇을 수선하는 긴쓰기 작업 과정이다. 긴쓰기는 금으로 이어 붙인다는 뜻으로, 이가 나가거나 금이 가거나 깨진 도자기를 수선하는 일본의 전통 공예 기법을 일컫는다. 옻칠로 이어 붙이고 금이나 은가루를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여기에 있는 건 수선을 의뢰한 기물들과 수강생들의 기물들이에요. 누군가 아끼던 고가의 그릇이거나 선물받은 그릇, 다도를 배우며 쓰던 찻잔 등 다양해요. 버려지지 않고 이곳에 온 기물들은 수선을 거쳐 새로운 그릇이 돼요.” 김 작가가 말했다.
그릇 수선은 그릇을 고쳐 다시 사용하는 실용적 측면뿐 아니라 모든 과정이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아날로그적 감성까지 느낄 수 있는 취미생활로 인기를 얻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강조되는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새것을 사기보다는 낡고 망가진 것을 고쳐 쓰는 일상의 문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깨지거나 손상된 그릇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금 간 그릇에 금가루를 칠하는 모습.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김 작가가 그릇 수선을 알게 된 건 2017년 무렵이다. 그 당시 일본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도자기가 종종 가마 안에서 갈라지거나 터졌다. 도자기의 상처 부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을 할 때 일본 교토에 있던 친구가 긴쓰기를 알려주었다. 마침 교토에 있는 긴쓰기 장인과 인연이 닿아 그에게 혼긴쓰기와 간이긴쓰기 두가지 기법을 배웠다. 혼긴쓰기는 천연 옻을 이용하여 금이나 은과 합성하여 바르는 방법이고, 간이긴쓰기는 합성 옻이나 접착제로 깨진 부분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릇 수선은 어떻게 이뤄질까. 간이긴쓰기의 과정을 살펴보자. ①에탄올로 깨진 단면을 깨끗이 닦는다. ②깨진 단면에 순간접착제나 에폭시 젤 타입을 이용해 부착한다. ③5~10분 후에 접착제를 깨끗하게 없앤다.(접착제가 기물의 겉면에 절대 남으면 안 된다.) 이후에 만약 이가 나간 곳이 있으면 점토를 이용해 살을 만들고 굳힌 뒤 칼로 원래 기물의 상태 모습과 같게 만든다. ④깨진 면 없이 깨끗하게 되면 이후에는 깨진 선을 따라 합성 옻으로 정성스럽게 그려준다. ⑤가습기가 있는 습한 곳에 15~20분 정도 놔둔다. ⑥순금 가루를 분털이나 실크 솜을 이용해 올려준다. ⑦작업이 다 된 상태라면 2~3주 정도 습한 곳에서 단단하게 굳어지도록 놔두고 이후에 가볍게 물로 헹궈서 사용한다.
그릇 수선의 과정에는 기다림과 느림이 필요하다. 옻칠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붓질을 섬세하고 꼼꼼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요가 수련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수선할 때 빨리빨리 하면 망쳐요. 그래서 수강생분들에게 작업할 때 마음속에 큰 돌멩이를 꾹 누르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차분해지거든요. 단기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도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해요. 손재주보다는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에요.”
수선할 때 마음은 고스란히 그릇에 드러난다. 서둘러 한 작품은 나중에 보면 투박하고 매끈하지 않은 부분이 보인단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 없다. 수선할 때 실패는 없다. 다시 하면 된다. 상처 난 그릇을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음이 중요할 뿐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엔 쉽지 않다. 김 작가도 긴쓰기를 배우던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에는 금을 올리면 모든 게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금이 안 어울리는 기물이 많은데 말이죠. 기물을 요리조리 봐야 해요. 상처 났다고 해서 그 부분에 금을 너무 과하게 칠하면 ‘욕망의 킨츠기’가 돼요.(웃음) 나중에 기물을 보면 다시 작업하고 싶어져요.”
무엇보다 깨지고 금 간 그릇의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 작가는 “깨진 기물에도 약간의 여백, 빈 곳의 여유를 둔 채 한곳에 포인트를 두는 미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완벽하기보다는 비워냄으로써 얻는 여백의 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릇 수선에 사용하는 도구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의 취미생활은 그릇 수선이다. 차를 즐기면서 찻그릇을 모았는데 아끼던 잔이 깨져 그걸 고치려고 그릇 수선에 관심을 갖게 됐다. 3년 전에 김수미 작가의 긴쓰기 수업을 들으며 수선을 시작했다. 요즘은 지인들의 그릇을 무료로 수리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그릇 수선에 관한 내용을 올리고 있다.
“한번은 일면식도 없는 분이 인스타그램 디엠(DM)을 통해 찻잔 수리를 의뢰했어요.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분이었는데 차를 즐기셨던 어머니의 유품이라 깨진 채 간직하다가 수리를 맡기었다고 하더군요. 수리를 다 한 뒤 그분을 만나 찻잔에 얽힌 추억부터 요즘 근황까지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며 인연을 맺었어요. 깨진 조각을 이어 마음까지 이어가는 따뜻한 작업이었어요.”
그는 수선한 뒤 그릇을 볼 때마다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흉터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 다치거나 아프지 않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처의 미감 같은 걸 가지게 되고 이게 우리의 인생사와도 닮은 듯해 신기합니다. 마음이 깨지고 난 후 천천히 수리하면 이전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깊이와 경험치가 생기잖아요. 수선을 마친 그릇을 보면 다양한 사연으로 상처를 받은 뒤에도 잘 아물어 더 깊어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을 거라 믿게 됩니다.”
그릇을 고치는 일은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깨지고 다친 도자기를 치료하면서 제 마음이 치유돼요. 처음에는 못 쓰게 된 기물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결과에 기뻤는데 이제는 그 못지않게 과정에서 큰 위로와 즐거움을 느껴요. 그릇이 다쳐서 누워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에서 희열과 뿌듯함이 커요.”
일본의 긴쓰기 작가 나카무라 구니오도 <킨츠기 수첩>에서 ‘긴쓰기의 치유력’을 강조한다. 긴쓰기는 “무언가를 재생시키는 의식적인 행위를 통해 정신적인 연결을 복구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행위”라는 것. 오래 사용하고 아끼던 그릇은 소유자의 마음과 깊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서하나 일본어번역가가 수리한 유리 화병. 서하나 제공
<느긋하고 자유롭게 킨츠기 홈 클래스>를 번역한 서하나 일본어번역가는 2021년 브런치에서 ‘킨츠기: 우연의 이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손상된 그릇을 고쳐서까지 사용하고 싶어 하는 이들과 그들의 그릇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한 작업이다.
“킨츠기는 우연의 이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한 사건을 통해 그릇에 금과 조각이 생기고 수선을 거쳐 금 가거나 깨진 부분을 ‘이음’으로써 선이 만들어지잖아요. 사람과 기물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어딘가에서 우연히 만나 일상의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손상을 입으면 그 이야기가 멈추고 수선을 한 뒤에는 처음과 다른 표정을 지닌 사물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요. 킨츠기는 그릇을 수선해 잇는 것뿐 아니라 소중한 사물과 사람의 이야기도 함께 잇는 것 같아요.”
그릇을 고치며 ‘수선의 이야기’도 점점 쌓여간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친구의 깨진 유리 화병을 수선한 일이다. “그릇 수선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친구가 유리 화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그 화병을 수선하기 어려워 친구한테 돌려주었어요. 그리고 1년 정도 후 친구가 본래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되더라도 유리 화병을 꼭 수선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다시 맡겼어요.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산산이 부서졌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마다 작은 성취감이 생기고, 조각을 붙이고 선을 그리고 다듬는 과정을 거칠 때마다 제 머릿속도 마음도 함께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수선이 끝난 유리 화병은 조각이 사라진 부분도 있어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수선을 통해 새로운 표정을 지닌 오브제가 됐어요.”
서 번역가는 최근 일본인 친구의 그릇을 수선했다. 그 친구와는 코로나19 기간에 ‘갈매기 자매’라는 이름으로 블로그 매거진을 만들어 서울과 도쿄의 특별한 장소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친구가 종종 저에게 그릇 수선을 맡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열린 ‘도쿄아트북페어’에서 3년 반 만에 만났고 그때 수선할 그릇을 받았어요. 이제 곧 친구와 다시 만나는데 그때 수선이 끝난 그릇을 전해주려고요. 친구가 새로운 표정이 된 그릇으로 어떤 일상의 이야기를 이어갈지 기대됩니다.”
킨킨 작가가 수선한 그릇. ‘클래스 101’ 제공
“그릇 수선의 나눔, 또 다른 기쁨”…긴쓰기 온라인 강의하는 킨킨 작가
공예품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킨킨(필명) 작가는 그릇을 고쳐 쓴다. 수선할 때 “편안하고 고요한 몰입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그릇 수선을 한 지 5년여. 현재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 101’에서 ‘킨킨의 그릇 수선 교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긴쓰기(킨츠기·金継ぎ)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느 날 도자기 이미지를 검색하다 수선을 한 그릇 이미지를 봤어요. 깨진 그릇을 수선해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신기했어요. 그렇게 긴쓰기를 알고 수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무척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특히 마지막 금분 작업을 할 때 가장 재미있어요. 금가루를 실크 솜에 묻혀 살살 바르면 그릇이 아주 고급스럽게 변해요.”
―
수선한 그릇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처음 수선한 그릇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미국에 있는 큰이모에게 선물받은 접시인데 쓰다가 몇개가 깨졌어요. 버릴 수 없어 5년 정도 갖고 있었어요. 수선을 배우고 그걸 먼저 고쳤어요. 깨진 부분을 이어 붙였는데 높이 차이가 크게 났어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수선을 끝내니 넓게 바른 접착제 부분 때문에 더욱 독특한 그릇이 되었어요. 처음 수선한 작업이기도 하고 못나 보이는 점이 장점이 돼 더 정이 가요.”
―
그릇을 수선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줄질을 하거나 사포질을 할 때 단순한 움직임을 지속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더 맑게 깨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잘 쉬었을 때 드는 충만함으로 채워져요. 그뿐인가요. 작업을 끝낸 뒤 정리된 그릇의 상처 부위를 볼 때면 개운함과 만족감도 느껴지고요.”
―
처음 긴쓰기를 하는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수선의 팁이 있다면?
“그릇 수선을 배우고 깨져서 마음 상했던 그릇을 고치고 나면 더는 작업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주변 분들의 그릇을 고쳐보세요. 수리를 여러번 할수록 고치는 기술이 점점 늘어요. 지인들이 기뻐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요.”
―
수선한 그릇을 다시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나요?
“수선한 그릇은 열에 약해서 전자레인지나 식기세척기에 넣으면 안 돼요. 순금 분이나 순은 분으로 마무리한 경우 수세미로 닦으면 스크래치가 생길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