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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실험실 동료들과 미국의 한 정원에서 열린 오키드쇼(orchid show)에 다녀왔다. 오키드쇼는 난초를 전시하는 축제다. 우리나라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축제가 매화 축제라면 서양에서는 오키드쇼라 할 수 있다.
난초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귀하게 여기는 식물이다. 지구에는 약 2만 5천 종이 넘는 야생난초가 있으며 각각이 가진 독특한 형태와 향기 때문에 전 세계인이 난초를 사랑한다. 축제는 꽃이 거의 피지 않은 이른 봄에 온실과 같은 실내에서 열린다. 전시장은 모양과 색상이 화려한 각양각색의 난초로 꾸며지는데 이 난초는 대부분 열대지방 원산이며 도입 후 오랜 기간 개량된 원예품종이다. 그래서 어떤 오키드쇼에서는 예쁜 품종을 새로 개발한 원예가에게 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축제 한쪽에는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난초 화분이나 관련 기념품, 음식을 판매하며 축제 분위기를 더한다. 오키드쇼엔 겨우내 꽃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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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처럼 작은 난초 씨앗
내가 속한 실험실에서도 전시 부스를 꾸렸는데, 난초꽃이 만발한 축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공간이었다. 관람객에게 난초에 대한 식물학적 이야기와 야생난초 보전 방법을 알려주는 과학자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는 북미난초보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북미에 자생하는 난초를 보전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선임연구원인 데니스 위검 박사의 노력으로 우리 실험실에서는 오랫동안 오키드쇼와 같은 대중 행사에 맞춰 교육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화려한 난초꽃이 전시된 다른 부스에 비하면 우리 공간은 다소 얌전해보였다. 그러다보니 처음엔 관람객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의 적극적 태도에 곧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난초꽃 종이 모형, 현미경, 곰팡이 표본, 인근에서 자생하는 야생난초가 생장 단계별로 담긴 실험 용기 등을 전시했다. 이 가운데 난초꽃 종이 모형은 교육용으로 실험실 식물학자들과 디자이너가 협업하여 개발한 것이다. 이 모형은 조립하는 동안 어려운 난초꽃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암술과 수술이 합쳐진 구조인 예주, 독특하고 화려하게 따로 발달하는 한 개의 꽃잎은 난초꽃만이 가진 특성이다. 전시공간에서 난초꽃 종이 모형을 소개하고 현미경을 통해 난초 씨앗과 난초 관련 곰팡이를 보여주었다. 난초 씨앗은 먼지처럼 작아서 스스로 싹을 틔울 에너지가 없다. 땅속 곰팡이는 균사를 뻗어 씨앗으로 들어가 물과 양분을 전달해준다. 관람객들에게 작은 야생난초가 든 유리병을 보여주며 우리가 사는 지역에도 난초가 많으니 집 뒤뜰이나 근처 숲을 산책할 때 찾아보라고도 말해주었다.
관람객에게 난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과학자.
난초도 식물인데, 왜 사람들은 난초가 열매와 씨앗을 맺는다는 것에 새삼 놀랄까? 오키드쇼 기간 관람객들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위검 박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오랫동안 대중교육에 힘써 온 그도 “사람들은 난초를 사랑하지만 모두 꽃에만 관심을 두더라”며 안타까워 했다. “야생난초는 집 뒤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안타깝지.”
온대지방엔 온대지방에 자생하는 야생난초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100여 종이 있고 워싱턴 디시(DC) 인근엔 50여 종이 있다. 그 꽃들도 무척 아름답다. 열대지방 원산의 원예품종을 잔뜩 사 안고 큰 기대 없이 우리 부스에 들른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에 무척 놀란 모습이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한국에도 이런 오키드쇼가 있나?” 쇼가 끝날 때쯤 위검 박사가 물었다. 나는 한국에 춘란이라고 부르는 봄에 피는 난초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봄과 난초를 연결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봄의 서막인 오키드쇼가 없다는 말에 위검 박사는 놀랍다는 표정을 했다. 그러나 곧 오키드쇼의 난초가 대부분 미국 원산이 아닌 열대지방 난초라는 걸 생각하면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고 했다. 열대지방 난초는 온대지방으로 도입되어 겨우내 추위를 견디다 기온이 올라가는 봄에 온실에서 일제히 꽃을 피운 것뿐이다. 원래 살던 열대에서는 종마다 다른 시기에 꽃을 피운다. 애초 온대지방의 봄과 열대지방의 난초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긴 하루를 보내고 연구소 숙소로 돌아와서 인도네시아 출신의 과학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해양생물학자지만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는 식물 얘기를 나누며 금방 친해졌다. 화려한 오키드쇼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온대지방에서 열리는 오키드쇼 난초 중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원산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는 도대체 온대지방의 봄과 우리나라 난초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웃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열대성 난초를 서양란이라고 부른다고 하니 그는 왜 인도네시아 원산 난초를 서양란이라고 부르냐며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 오래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많은 서양인이 인도네시아 난초를 가져갔었다고 씁쓸하게 얘기했다. 아마도 서양에서 개량되어 한국에 수출되었기에 한국인들이 서양란이라 부르는 것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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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대로 꽃을 사랑하는 걸까
열대지방 난초가 유럽과 미국 등 온대지방 국가에 소개된 후 19세기에 이미 그 원예품종은 10만 종이 넘었다. 2만 5천 종인 야생난초보다 훨씬 많은 품종이 사람의 손에서 개량되어 태어났다는 말이다. 2023년인 지금도 원예품종은 개발되고 있다. 우리가 꽃가게에서 마주치는 난초 대부분이 그렇다. 난초뿐만이 아니라 판매되는 많은 꽃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꽃을 사서 관찰하거나 그리지 않는다. 원예품종은 야생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에게 무의미하다. 오키드쇼에서 야생난초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발되는 품종, 사람들의 열렬한 난초 사랑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꽃을 사랑하고 있을까?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신혜우 식물분류학자
미국 스미소니언에서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쓰고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