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접어든 스미스소니언 식물 연구소 인근 메릴랜드 숲에서 푸른 빛을 발하고 있는 호랑가시나무.
이제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득 메웠던 나뭇잎들이 모두 땅 위로 내려앉았다.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연구소의 숲은 튤립나무, 대만풍나무, 레드 메이플, 화이트 오크 등의 낙엽활엽수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잎이 풍성한 여름에 초록빛이 찬란하고 가을엔 단풍이 가득하지만, 잎이 사라진 겨울엔 나뭇가지만 남아 아주 쓸쓸하다. 이 나무들은 대개 아래쪽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의 나무 기둥으로 곧고 높게 자란다. 겨울에 숲속을 걸으면 나무 기둥들이 로마 신전의 기둥처럼 느껴진다. 회갈색 나무 기둥들 사이로 나뭇잎에 가려졌던 풍경이 저 멀리까지 보인다. 잎이 져버려 기둥만 남은 나무들은 구별이 잘되지 않아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그 사이에서 유난히 초록으로 반짝거리는 나지막한 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나무는 분명 여름에도 그곳에 있었지만 다른 나무들의 초록 물결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 겨울에 홀로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초록빛을 발해 겨울의 주인공이 된다. 바로 호랑가시나무다.
처음 메릴랜드에 도착한 날 나는 이곳이 서울보다 따뜻하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 왜냐하면 공항에서 연구소로 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아메리칸 홀리’(American Holly)라 불리는 미국호랑가시나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온실이 아니면 야외에서 호랑가시나무를 만나기 힘들었지만 따뜻한 남쪽에 살던 어린 시절엔 정원에서 호랑가시나무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정원수로 먼저 만나서일까. 나는 호랑가시나무가 한국 식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어쩐지 그 형태도 서양 식물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 제주도와 남쪽 해안가에 식물조사를 가서 야생 호랑가시나무가 숲속에서 자라는 걸 처음 봤을 때 새삼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실 호랑가시나무와의 인연은 내가 인식하게 된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나는 호랑가시나무를 실제로 만나기 전부터 호랑가시나무를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어릴 때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선물했다. 종이접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이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카드 만들기는 큰 즐거움이었고 거기엔 호랑가시나무가 빠지지 않았다.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글을 쓴 후에 그 주변 장식으로, 혹은 크리스마스 리스(화환)로 호랑가시나무의 잎과 열매를 그려 넣었다. 그때 빨갛고 동그란 열매는 그리기 쉬웠지만 가시가 많은 잎은 어려워서 꽤 고민하며 그렸다. 가시가 특징인데 자칫 가시가 너무 작거나, 덜 예리하거나, 그 수가 많거나 적으면 호랑가시나무 잎처럼 보이지 않기 일쑤였다. 그렇게 뾰족뾰족한 초록 잎을 열심히 그리면서도 왜 호랑가시나무의 잎에 그런 모양의 가시가 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식물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뒤 우리나라에 완도호랑가시나무라는 자연 잡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가 야생에서 수정되어 만들어진 잡종인데 가시가 날카로운 호랑가시나무와 가시가 없는 감탕나무의 중간쯤 되는 형태의 잎을 가진다. 가시가 호랑가시나무에 비하면 좀 덜 뾰족하고 그 수도 적은 것이다. 유전자가 섞여 그 중간 형태가 나온다는 게 신기했고 한편으론 내가 어릴 때 그린 호랑가시나무 중에 잘못 그렸다고 생각한 건 완도호랑가시나무였다고 우기면 되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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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연히 호랑가시나무 잎의 가시에 관한 한 논문을 읽게 되었다. 호랑가시나무 한그루 안에서 가시가 많은 잎도 있고 적은 잎도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밝힌 스페인 과학자들의 논문이었다. 대체로 나무의 아래쪽 잎에는 가시가 많고 위쪽 잎에는 가시가 적다고 한다. 내 키가 닿는 곳의 가지를 주로 채집해 왔던 나는 식물조사 때 그런 호랑가시나무 잎의 형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두 종이 섞인 완도호랑가시나무와 달리 이 과학자들이 연구한 건 한나무 안에서 발생한 잎의 변이였다. 그러니 가시가 많은 잎도, 적은 잎도 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도 높이에 따라 잎의 형태가 달라지는 건 환경에 반응한 유전자 발현의 차이다. 초식동물이 잎을 먹지 못하도록 아래쪽에는 가시가 많은 형태를, 초식동물이 뜯어먹지 못하는 위쪽에는 가시가 없는 형태를 만들어 낸다. 환경에 적응한 호랑가시나무의 지혜인 셈이다.
겨울을 나는 호랑가시나무는 다른 지혜도 발휘한다. 잎이 떨어져 숲이 비워지면 햇빛이 낮은 곳까지 닿는다. 햇빛을 가로채는 경쟁자가 없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느려 키가 작은 호랑가시나무는 겨울 햇빛이 강하지는 않아도 혼자 오롯이 햇빛을 받을 수 있다. 겨울에 낙엽수들이 잎을 떨어뜨릴 때 홀로 푸른 잎을 지킴으로써 여유롭게 광합성을 하는 것이다. 대신 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잎을 단단하고 도톰하게 만든다. 겨울에 홀로 푸르면 초식동물의 눈에 띄어 표적이 되기 쉬운데 잎의 가시가 이를 방어한다. 많은 식물이 빽빽하게 자라는 숲속에서 호랑가시나무는 경쟁을 피하고 천천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덕분에 겨울을 나는 새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겨울에도 풍성하고 가시가 많은 잎 때문에 나무는 새들에게 폭풍과 포식자를 피하는 피난처가 된다. 또한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처럼 선물로 빨간 열매를 주는데 이것은 새들의 겨울 양식이 된다.
겨울에 서양에서 호랑가시나무는 예수를 상징한다. 예수가 머리에 쓴 가시 면류관을 연상시키고, 붉은 열매는 예수가 흘린 피, 뾰족뾰족한 잎 형태는 불꽃을 닮아 불타는 사랑을,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초록 잎은 영생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한다. 호랑가시나무류를 통틀어 영어로 홀리(holly)라고 부르는데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홀리(holy)와 철자와 발음이 닮았다. 그러나 이런 인간이 만들어 낸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호랑가시나무는 겨울을 나는 지혜와 너그러움을 몸소 보여주는 성스럽고 아름다운 나무다.
글·사진 신혜우 식물분류학자
미국 스미소니언에서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쓰고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