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제작 스튜디오 에이치더블유와이디(HWYD)의 ‘데스크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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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3학번 대학원 신입생이 되었다. 전통문화와 문화유산을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전공이라 옛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들의 지혜가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도 빛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싶은 다짐도 해본다.
20여년 만에 공부하는 신분을 갖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설레 다채로운 공상에 빠졌다가 나만의 공부방, 서재를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는 책상도 없고, 그걸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놓을 공간이 없는 상황이라 이사를 가지 않는 한 계속 공상에 그치겠지만 나의 서재를 그려보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공부가 즐겁다. 서재의 이름은 나의 이름 중 한 글자인 ‘새벽 효’를 따서 효서재라 지어본다. 이 글자에는 깨닫고 이해한다는 의미도 있어 날이 밝아지듯 새로운 것을 깨달아가는 공부와 자기 수양을 위한 공간에 제격인 작명이라 내심 뿌듯하다.
가구와 소품도 조선 시대 선비의 서재인 사랑방의 가구를 닮은 공예품에서 골랐다. 공부가 직업이자 삶이었던 그들이 공부에 최적화해 디자인한 곳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사랑방은 평생 독서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해야 하는 유학 이념을 바탕으로 구성해 검박함과 더불어 주인의 안목을 담은 높은 격조가 핵심이다. 사회지배층임에도 청빈을 덕목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구에는 절제의 미덕이 담겨 있고, 방안을 번잡하게 배열하지 않음으로써 선비의 곧고 맑은 정신을 표현했다. 시를 지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 활동도 즐겼던 터라 경직되지 않고 우아함이 깃들었다. 공부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조선의 선비는 공부방 인테리어에서도 근사한 지혜를 전수한다.
가상의 서재, 효서재를 채울 가구 중 가장 중요한 책상은 가구 제작 스튜디오 에이치더블유와이디(HWYD)의 ‘데스크 +001’이다. 가는 다리 선에서 사방탁자의 모습이 연상되는 간결하고 담백한 디자인이다. 이전 초기작은 ‘반닫이'라는 전통 가구 형태를 차용해 현대적으로 표현했고 여기서 발전시킨 작품이라 반듯함과 고담의 멋이 느껴진다. 수납도 깔끔하고 간소하게 할 수 있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거 같다. 책상과 같은 소재인 호두나무로 조명도 함께 배치한 구성미가 탁월하고 편리하다. 오른쪽에 가죽으로 만든 해먹 같은 수납공간은 위트를 더하는 묘미다.
당장 읽고 공부해야 하는 책들만 간소하게 꽂아둘 책장은 가구 브랜드 도잠의 ‘올리다 모듈러 테이블'이다. 이름이 테이블인 이유는 조선 선비의 책상인 서안을 닮은 세 개의 테이블을 쌓았기 때문이다. 제작 방식도 조선의 목가구와 같은 짜맞춤 방식이라 못을 쓰지 않았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공예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던 도잠의 이정혜 대표는 합판을 선택해 조선의 목가구를 재현했고, 고운 생김새만큼이나 좋은 가격이 마음에 쏙 든다. 애초에 테이블이기 때문에 티테이블이나 소파 테이블 등으로 분리해 사용해도 된다.
선비의 사랑방에서 가장 키가 큰 가구인 사방탁자를 빼놓을 수 없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이자 초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님은 조선 탁자를 ‘비례의 아름다움'을 지닌 세계 독보적인 조형이라고 일찍이 예찬했다. 책은 물론 방 주인의 안목과 취향으로 선별한 도자기나 수석 등을 올려두는 용도였지만 나의 사방탁자는 소품보다는 책을 품는 역할에 더 충실할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가구와 리빙 제품을 디자인하는 임형묵 작가의 ‘뉴-사방탁자'다. 층마다 널찍하게 트여 있는 기존의 사방탁자와 달리 알루미늄 기둥을 자유롭게 배치해 책을 재미있게 꽂을 수 있는 것이 색다른 비례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차분하게 공부에 집중하다가도 잠시 쉬며 눈길이 머물렀을 때 활기를 전해줄 수 있는 아이템도 필요하다. 각종 귀한 물건을 모아 그린 ‘책가도(책꽂이 그림) 병풍’이 선비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것처럼 말이다. 효서재에는 아트퍼니처 디자인 그룹 슈퍼포지션의 ‘병풍’이 펼쳐질 것이다. 그들이 한국적인 전통 요소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그래픽을 책가도처럼 배치해 아크릴 소재 병풍에 입힌 작품이다. 전통과 디지털이 접목된 재기발랄함에 반했고, 이들의 행보와 작업도 이목을 끈다.
또 다른 책가도는 소소영 작가의 ‘사물놀이 책거리_무병장수 복숭아’다. 결혼이나 명절 같은 중요한 날에 길상의 의미를 담아 병풍을 세웠던 조상들의 마음처럼 좋은 의미를 뜻하는 그림을 조각보를 이용해 바느질로 그려냈다. 화사하고 경쾌한 색상 덕분에 책 보느라 침침해진 눈을 말끔하게 씻어줄 거 같다. 벽이나 창문에 걸거나 공간을 나눌 때도 유용하고 아름답게 쓸 수 있는 이 작품을 작가는 ‘복을 부르는 책거리 조각보’라고 설명한다.
조선 선비들은 공부하는 삶을 위해 공들여 사랑방을 꾸몄을 것이다. 그렇게 정립된 사랑방의 간결한 선과 쾌적한 비례, 단순한 구조는 요즘 각광받는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인 미니멀리즘과 닮아 있어 우리 일상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고려의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백제 궁궐을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멋스러우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고 표현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미학이 조선의 사랑방에 들렀다가 오늘에까지 닿은 듯해 새삼 감탄스럽다.
소소영 작가의 ‘사물놀이 책거리_무병장수 복숭아'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사진 각 브랜드와 작가 제공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