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를 뒤로 젖혀 아래로 떨어지는 드롭백 자세를 연습하는 모습.
어떤 운동을 할 때건 두 눈 딱 감고 중력에 몸을 내맡기거나, 반대로 중력을 거스를 줄 알아야 하는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암벽등반을 할 때 내 팔다리 길이만으로 집을 수 없는 먼 홀드(돌)를 집으려면, 벽을 디딘 한쪽 손과 발을 믿고 다른 쪽 손이나 발을 옆이나 위로 폴짝 뛰어야 한다.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를 앞서 떠올리면, 두려움으로 몸이 얼어붙어 되레 부상을 입거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기 십상이다.
수영을 할 때 내게 가장 큰 벽은 스타트다이빙이었다. 다이빙대에 올라서서 허리를 굽혔다가 온몸을 쭉 펼치며 물속으로 힘차게 뛰어들어야 할 때면 두려움이 밀려왔다.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 어떡하지?’ 양팔과 머리가 물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턱을 쇄골 방향으로 당긴 자세를 유지해야 물을 최대한 적게 튀기며 매끄럽게 다이빙할 수 있다. 그런데 수면에서 50㎝ 높이의 다이빙대에 올라서기만 하면 왜 그리 높게 느껴지는지. 두려운 마음에 고개를 조금이라도 위로 들면 바로 ‘배치기’를 하게 된다. 옆 사람에게 물을 한껏 튀기는 민폐도 끼쳐야 한다. 10년 넘게 물질을 했어도 두려움을 좀처럼 떨칠 수가 없어 선생님이 스타트다이빙을 시킬 것 같은 날에는 수영장에 가기가 싫어졌다.
자전거를 탈 때도 중력에 내 몸을 믿고 맡길 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에서 힘을 효율적으로 나눠 쓸 수 있다.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메디오폰도(100㎞ 미만 중거리) 대회에 참여했을 때 다른 라이더들은 내리막에서 페달질을 멈추고 상체를 최대한 숙여 저항을 줄이며 속도를 냈다. 이어 그 속도가 만들어 준 탄력을 이용해 오르막을 올랐다. 반면 겁이 많은 나는 내리막에서 양쪽 브레이크를 반쯤 잡고 최대한 천천히 내려갔다. 내리막이 끝나고 오르막을 맞았을 때 이어받을 탄력이 없으니, 높은 언덕을 오직 내 다리 힘만으로 꾸역꾸역 올라야 했다. 미련한 주행법이었다. 그 결과 나보다 두 배 거리를 달린 그란폰도(100㎞ 이상 장거리) 대회 참가자들과 비슷한 시간을 소요해서야 결승선에 겨우 들어왔다.
요가는 정적인 운동이니 두려움을 느낄 일이 없지 않냐고 묻는다면 큰 착각이다. 무릎을 세우고 바닥에 누운 채 손바닥을 얼굴 옆으로 가져와 팔을 펴며 몸을 거꾸로 들어 올리는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거꾸로 된 활 자세)를 하려면, 내 몸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눈으로 전혀 보지 못하고, 감각으로 느끼기만 한 채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중간에 고개를 들어 자세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목을 바닥 쪽으로 늘어뜨린 채 호흡하는 시간을 10초에서 30초, 1분, 2분으로 늘려 가야 비로소 허벅지부터 배, 가슴, 목까지 몸 앞면 전체를 길게 늘이는 후굴(뒤로 젖히는) 자세의 시원한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에 접근하는 게 익숙해지자 더 큰 도전 과제가 찾아왔다. 두 다리를 골반 넓이로 벌려 선 채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팔을 아래로 뻗어 바닥을 향해 거꾸로 접근하는 ‘드롭백’(아래로 떨어지기) 자세였다. 이어 하체를 바닥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채 다시 양손을 동시에 바닥에서 떼어, 다시 선 자세로 돌아오는 ‘컴업’ 자세까지. 힘과 유연성을 동시에 기르기에 좋아, 많은 하타요가 수련자들은 시퀀스 마지막에 이른바 ‘드롭백 컴업’을 배치한다.
다른 수련자들보다 힘은 좋지만 유연성이 부족한 나에게 드롭백은 2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가슴을 천천히 열어 뒤로 젖힌 상체를 조금씩 아래로 내려보내다가 어느 순간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려서 중력의 도움을 받아 뒤로 뻗은 팔을 땅에 내려놓아야 하는데, 수영장 스타트다이빙대에 올라선 그때처럼 오만가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팔이 내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실제로 몇 번은 팔이 아닌 정수리로 바닥에 꽝 부딪히기도 했다. 상체를 뒤로 잘 보내고 있다가도 실수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유연성 대신 힘으로나마 버티고 있던 상체가 스프링처럼 다시 위로 튀어 올라왔다.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거꾸로 된 활 자세)에 머물며 호흡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갔다.
부족한 유연성과 지나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선생님은 여러 우회로를 만들어줬다. 어떤 날은 벽을 등지고 선 채 팔을 뒤로 뻗어, 손으로 천천히 벽을 타고 내려가 바닥에 접근했다. 또 어떤 날은 정수리 박치기를 하지 않도록 선생님이 내 허리 아래에 양 손 또는 수건으로 받침대를 만들어 상체를 빨랫줄에 대롱대롱 걸듯 지지해 줬다. 그래도 두려움을 없애지 못하자 어떤 날은 선생님이 내 상체 앞쪽 위에 버티고 눕다시피 하며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걸 막아주기도 했다.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서 얼마나 더 내려가야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는지 계산을 해 본 날도 있다. 선생님이 분명 10㎝만 더 내려가면 된다고 했는데…아무리 봐도 사진 속 땅과 손 사이 거리가 30㎝는 돼 보이는 날에는 수련이 다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 다시 매트를 폈다. 큰 책장을 등지고 서서, 책장 선반을 한칸 한칸 타고 내려가며 다시 연습을 했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좀처럼 접근이 어려운 드롭백 자세를 요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다른 수련자가 쉽게 완성해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요동치기도 했다. 두려운 마음에 비교하는 마음까지 더해지면 중력에 몸을 내맡기기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 흐트러진 정신을 호흡과 함께 가다듬어 ‘내 수련/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남들과 비교하며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땅에 가 닿을 듯 말 듯 한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다시 튀어 오르기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다른 수련자들이 조마조마해 하며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어느 순간 느껴졌다. 1년 넘게 눈인사만 나누던 동료 수련자들이 사바아사나(요가 수련 마지막에 송장처럼 가만히 누워 이완하는 자세)가 끝나고 다가와 “허벅지 앞면 힘을 더 써 보세요. 조금만 더 하시면 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따뜻한 격려와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오늘도 매트 위에서 두려움과 싸우다가 튕겨 올라오길 반복했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은 몇개월이면 완성하는 자세를 붙잡고 2년 넘게 씨름하면서까지 매트 위에 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어떻게 보면 또 다른 방식의 용기이니까.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빅테크팀에서 국내외 정보기술(IT) 산업을 취재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등산,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