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우리 풋살팀 멤버들이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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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 최고 연장자, 나를 포함해 ‘언니들’ 포지션을 맡고 있는 3명이 한 헬스장에서 만났다. 나는 무릎 재활을 위해 한 달 전부터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맏언니인 유리 언니도 근력 보강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개인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 유리 언니의 운동을 돕기 위해 헬스와 크로스핏을 꾸준히 해 온 보미 언니가 같은 헬스장을 등록했다. 나는 가끔 두 언니가 운동하는 헬스장에 찾아가 함께 운동하고 있다.
보미 언니의 주도로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뻑뻑해지도록 운동한 날, 밥을 먹으면서 여느 때와 같이 풋살 고민으로 가득한 대화를 나눴다. 풋살 실력은 더디게 느는데 나이가 빨리 느는 것만 같아 걱정이었다. 풋살을 시작한 지 이제 2~3년이 된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 겨우 어느 정도 기본기를 장착했지만,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했기에 마음이 조급한 게 사실이다. 풋살을 더 잘하고 싶어 개인 운동까지 시작했지만, 이런 노력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하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이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현타’의 순간까지 다다랐다. 정말… 난 뭘 위해서 취미인 풋살을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을까?
풋살을 시작하고 한순간도 재미없거나 하기 싫었던 순간이 없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진 적이 오랜만이었다.
풋살을 시작한 시기에 나는 업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체되고 있다고 느꼈고, 그 정체기를 벗어나기 위해 하는 노력이 스스로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잘하고 싶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부담으로 작용해 머리를 짓눌렀다. 일상적으로 해오던 작은 결정의 순간들이 무겁게만 느껴졌고,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일정의 막바지에 결과물을 붙들고 괴로워했다. 동시에 나를 한동안 옥죄었던 건 ‘성장’의 압박이기도 했다. ‘지난 프로젝트, 지난 분기보다 나는 성장했나?’라는 질문에 스스로 시원하게 답하지 못할 때면 잘못된 트랙에 올라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빨리 다른 방향으로 틀어야 하는 건 아닌지 초조했다.
이제 막 시작한 취미인 풋살을 할 땐 달랐다. 초심자이기에 서툰 건 당연한 일이었고, 공을 가지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성장이었다. 운동장 안으로는 다른 걱정이 끼어들 새가 없었다. 내가 풋살이 재미있다고 느낀 데에는 이 순수한 몰입이 8할일지도 모르겠다.
<몰입의 즐거움>을 쓴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몰입을 위해서는 △도전적이지만 동시에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자신의 능력과 도전의 난이도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쉽지 않은, 내 능력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도전이어야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시기에 나는 내 능력치를 넘어서는 듯한 업무 앞에서 끙끙댔지만, 운동장 위에서는 매번 작은 성장을 맛볼 수 있는 도전을 만날 수 있어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던 셈이다.
물론 작은 것 하나에도 성장을 맛보고 만족감을 느끼던 왕초보 시절이 지난 뒤에는 도전의 수준이 점차 높아졌다. 이제는 혼자서 공을 드리블하는 것을 넘어 앞의 수비를 제칠 수 있어야 하고, 정확한 패스에 이어 수비수를 끌고 갈 줄 알아야 한다. 또 팀 전체가 함께하는 유기적인 움직임을 공격 상황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과제, 이를 해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에는 공을 다루는 기본기 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도전을 대하는 태도다.
지난해 9월 우리 풋살팀 멤버들이 새 유니폼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18번은 막내라인 민지, 19번은 유리 언니, 20번이 필자 장은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면 지금 내가 거쳐야 하는 이 초보자 레벨의 단계가 보잘것없어 보이고 눈만 높아지기 십상이다. 아직 슈팅 실력을 장착하지 못한 나로서는 임팩트와 궤적이 완벽한 슈팅을 구사하는 사람 앞에선 부러움과 위축감을 동시에 느끼는데, 그러다 보면 좋은 슈팅 기회에도 이상하게 몸이 굳어 더 삐끗하게 된다. 풋살과 축구는 멘털 싸움인 만큼 자신감이 내 플레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해서 이렇게 남과 비교해 위축되고 몸이 굳으면 할 수 있는 것도 안 된다. 가능성 있는 목표를 설정했다면 내 능력을 믿고 그저 성실히 해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 태도를 장착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팀 유리 언니다.
지난해 5월 우리가 첫 대회를 마치고 나눈 대화를 종종 떠올린다. 대회 소감을 묻는 내게 언니는 “배운 것들을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잘 안 돼서 답답하다”고 이야기하며 덧붙였다. “계속 해봐야지, 안 해봐서 못 하는 거니까. 나는 풋살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당연히 나보다 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나도 계속 해봐야지.” 언니의 말에서 ‘안 해봤으니까, 먼저 시작한 사람들 만큼 시간을 들이지 않았으니까 부족할 뿐 노력하고 연습하면 해낼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느껴졌다. 그 믿음으로 지금 이 순간 몰입해 훈련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태도 또한 능력이란 생각이 드는 답이었다.
과거 그 대화 이후로 언니는 정말 성실하게 운동했다. 쇄골 골절로 잠시 쉬던 시기를 제외하고, 언니는 팀 훈련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3~4회 공을 찬다. 최근엔 근력운동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거의 운동선수의 스케줄과 다름없다.(이런 언니의 운동 스케줄을 따라다니다 내 무릎이 고장 났다) 주 3~4회 훈련 때 만나 그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풋살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풋살을 잘하기 위해 근력운동까지 하는 우리. 취미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누구든 피치 위에서 몰입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한번이라도 맛본다면 아마 동의할 거다. 잠깐의 현타 따위, 우리를 막을 순 없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 우리가 좋다.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에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숏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현재는 영상 제작사 ‘두마땐필름’을 운영한다. 3년 전 풋살을 시작한 뒤로 인스타그램 @futsallog에 풋살 성장기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