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5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2023 철원평화컵 전국여자풋살대회’에서 필자의 팀 알레그리아에프에스가 경기 전 전의를 다지고 있다. ‘2023 철원평화컵’ 제공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8월 첫주 주말, 강원 철원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철원평화컵 전국여자풋살대회’가 열렸다. 최대 규모라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성부 대회에만 무려 56팀이 출전했기 때문이다! 3년 전 여자 풋살팀 전국 지도를 만들 때 겨우 그러모아 정리한 팀이 60여 팀이었는데, 몇 년 새 한 대회에 출전하는 팀만 56팀이 된 거다. 한 팀당 최소 10명으로 어림잡아도 560명의 풋살 하는 여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여자 풋살 저변이 얼마나 확대되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규모였다.
우리 팀은 작년에도 이 대회에 참가했는데, 팀 창단 후 두 번째로 출전한 대회였고 심지어 감독 없이 팀원들끼리 똘똘 뭉쳐 나간 첫 대회였기에 각오가 남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지난해 우리는 이 대회에서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했다. 상위리그 8강전에서 패하며 마무리했지만, 꽤 만족스러운 여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장기 부상자도 늘고 새로운 팀원도 들어오면서 팀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던 터라 올해 철원컵 출전이 팀워크를 다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팀 주장 은비는 두 달 전부터 숙소 예약을 서두를 정도로 철원컵을 기다리고 있었다. 엠티를 겸해 모두 함께 우승하러 가자며 으쌰으쌰 분위기를 북돋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김이 팍 식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 팀은 총원이 15명인데 부상이나 개인일정이 있는 이를 제외하고 이번 대회에 4명만 출전 가능했다. 풋살은 5명이 피치 위에서 뛰어야 하는 종목이다. 이대로라면 참가 자체가 불가능해 부랴부랴 외부에서 선수 2명을 초빙했다. 외부 선수 2명을 제외한 우리 4명은 미리 금요일 밤 철원의 허름한 민박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내일의 경기를 대비했다. 인원이 적다고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훈련했던 움직임과 전술 등을 되짚어 보면서 해볼 만하겠다 싶은 것들을 골랐다. 아이패드 위에 그림을 그리며, ‘내일 경기는 무조건 이 움직임으로 시작하는 거다. 할 수 있어!’ 마음을 다지며 서로를 북돋웠다.
지난 8월4일 대회 하루 전 철원에 도착한 필자와 팀원들이 다음날 경기 작전 회의를 열었다. 장은선 제공
대회 당일, 뙤약볕 아래 빨간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 팀은 6명의 엔트리로 전반 10분, 후반 10분의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골키퍼를 제외하면 교체 자원은 단 한 명. 힘들어도 서로를 위해 견뎌야 한다. 첫 경기 휘슬이 울리고 최선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전반 초반에 상대편 프리킥에 눈을 세게 맞는 바람에 교체됐고, 팀원들은 남은 시간을 교체 없이 뛰어야 했다. 후반에는 다시 투입됐지만, 이미 뜨거운 날씨 아래 팀원들이 지쳤다는 것이 느껴졌다. 첫 경기는 0 대 0 무승부.
두 번째 경기에서는 골키퍼를 맡았다. 뒤에서 보니 실시간으로 팀원들의 다리가 무거워지는 게 보였다. 수비 전환의 속도도 느려지고, 공격을 나갈 때도 힘겨워 보였다. 큰 목소리로 팀원들을 북돋우며 내가 다 막아주겠다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한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과는 0 대 1 패. 그 후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까지 골을 내지 못하며 0 대 0 무승부가 됐다. 우리는 조 3위로 조별 예선을 마쳐야만 했다.
조별 예선 1, 2위만 본선에 진출하는 기존 대회 방식이었다면 우리 팀은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으로 더이상 경기의 기회가 없게 된다. 그러나 철원평화컵은 조별 예선 1, 2위 팀끼리 경기하는 본선 상위리그와 별도로 3, 4위 팀들끼리 경기를 치르는 본선 하위리그를 마련해 하위리그의 우승자도 가릴 수 있게 했다. 참가팀들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주는 방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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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예선을 아쉬운 성적으로 마치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동갑내기 팀원인 희정이의 눈이 빨개져 있는 걸 발견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니 은비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뜨거운 날씨에 교체 자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세 경기를 소화한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희정인 속상하고 분하다고 했다. 정규훈련 외에 다른 요일 훈련에도 참여하면서 열심히 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은 것 같고, 열심히 했는데 이 정도라면 이게 내 한계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다.(희정이는 풋살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은비도 아무리 인원이 적었어도 그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우리만의 플레이가 있었을 텐데 그런 게 나오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나는 예선 결과보다 스스로 의심하며 사기가 확 꺾인 팀원들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속상했다.
다행히도 하위리그 본선이 펼쳐지는 다음날엔 팀원 한명이 더 왔다. 하위리그 본선 두 경기에서 승리하며 8강에 올라갔고, 8강전에선 골 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1 대 2로 패했다. 이젠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고 얼굴은 벌게진 채로 경기장 옆 스탠드에 축 처져 앉아있었다. 응원단으로 와준 유리 언니가 “고생했다”고 다독이며 말했다. “전체적으로 여자 풋살팀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었네.” 불현듯 이 말이 내 눈을 뜨이게 해주었다. 그래, 우리 팀 인원이 부족해서 힘들었던 것도 맞고, 내 실력의 부족도 맞는데, 무엇보다 전국에 여자 풋살팀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그 실력이 향상된 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다른 대부분의 팀에도 코치진이 있었다. 과거엔 다소 순수 동호회 중심이었다면, 이젠 더 많은 지도자가 직접 팀을 만들거나 동호회도 코치를 섭외해 체계적으로 훈련하며 실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 흥미롭기도 하고 조금 억울하기도 한 부분이지만 여자 풋살 동호인들은 대부분 돈을 내고 배운다. 공을 차는 많은 남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몸으로 익혔던 것들을 우리는 돈을 내고 공부하듯 익힌다. 물론 그 덕에 독학하는 것보다 빠른 성장을 맛볼 수 있지만.
내가 번쩍 눈이 뜨였던 이유는, ‘인원이 부족해서, 힘에 부쳐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며 이유를 찾기보다 어쩌면 지금 내 실력이, 우리 실력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날 피치 위를 뛰어다녔던 56개팀 수백명의 여자 풋살러들이 풋살에 너무 진심인지라, 예전만큼 해선 현상 유지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슬프지만 이 문제 앞에 답은 오직 하나. 훈련 또 훈련뿐이다.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에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숏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현재는 영상 제작사 ‘두마땐필름’을 운영한다. 3년 전 풋살을 시작한 뒤로 인스타그램 @futsallog에 풋살 성장기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