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정가네 밥상’의 스마트팜. 정가네 밥상 누리집 갈무리
예로부터 싱싱한 채소는 흙밭에 씨앗을 뿌린 뒤 잡초를 뽑고 키워냈다. 병충해로부터 작물을 보호하려고 때로 농약을 쓰기도 했다. 이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마트팜’이 전통 농업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작물의 생육환경을 관측하고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는 과학 기반 농업 방식이 스마트팜이다. 도시에서 손쉽게 채소를 키워낼 수 있는데다 자연재해와 환경오염의 영향 없이 안전하게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선호도가 높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를 보면, 국내 스마트팜 면적은 2018년 4900㏊에서 2021년 6485㏊로 꾸준히 늘고 있다.
스마트팜은 식물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3요소인 재배 용액과 적당한 빛, 바람을 실내에서 인공적으로 조성해,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식물을 재배한다. 햇빛 대신 엘이디(LED) 빛을 쬐고, 흙 속에서 수분과 미네랄을 빨아들이는 대신 미네랄 액체로 영양소를 흡수한다. 인공 바람을 맞으며 온도조절장치를 통해 적당한 생육 온도에서 성장한다. 흙과 햇빛이 필요 없기 때문에 실내에서 재배할 수 있다. 최적의 생육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식물이 담겨 있는 용기에 다양한 센서를 설치하는 건 필수다. 식물이 흡수하는 영양소가 충분한지, 성장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온도와 바람은 적당한지 등 센서에서 수집된 정보를 점검한다. 정보통신 기술로 식물의 성장부터 상태를 실시간으로 챙길 수 있는 셈이다.
스마트팜은 전통 농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기후 여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올해 상추의 경우, 폭염과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여름 한달 새 가격이 2배 이상 오르며 ‘금상추’로 불렸다. 스마트팜이 자리를 잡는다면 이상기후로 인한 가격 폭등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스마트팜은 생산 밀도가 높고 수확 주기가 짧아 효율적이다. 스마트팜은 실내에서 노판을 수직으로 배열해 공간 집약적인 재배로 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 5~6주에 한번씩 수확하기 때문에 밭에서 재배할 때보다 생산 주기도 짧다. 병충해로부터 안전한 편이고 공기 중 오염물질인 미세먼지나 산성비의 영향도 없어서 품질이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 19일 경기도 광명시의 가구·생활용품 전문점 이케아에 있는 스마트팜 식당 ‘파르마레’에서 잎채소 카이피라가 자라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경기 광명시 이케아의 식당 ‘파르마레’에서 판매하는 연어 크루아상 샌드위치.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카이피라를 넣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생육환경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지리적 한계 없이 다양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형 잎채소인 ‘버터헤드 양상추’나 ‘카이피라’다. 버터헤드 양상추는 잎이 도톰해 쉽게 짓이겨지지 않아서, 카이피라는 아삭한 식감에 은은한 단맛이 나 샐러드 재료로 많이 쓰인다.
최근에는 식당 안에 스마트팜을 설치해 채소를 키워서 바로 식재료로 쓰는 농장형 ‘팜 식당’이 늘고 있다. 채소 생산지와 소비자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진 것이다.
경기 광명시의 가구·생활용품 전문점 이케아에는 샐러드용 채소를 직접 키워 음식을 만드는 ‘파르마레’가 있다. 파르마레는 스웨덴어로 ‘농부’라는 뜻이다. 파르마레의 농부는 삽을 들지 않는다. 먼지를 제거한 깨끗한 작업복을 입고 작물이 자라는 노판의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온도는 적당히 유지되고 있는지 살피는 업무를 맡는다.
파르마레의 채소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 안에서 재배된다. 통유리창 너머에 있는 4층의 수직형 농장에는 층층이 초록빛 채소가 자라고 있다. 파르마레에선 유럽에서 나는 카이피라를 재배한다. 이제 막 싹이 튼 채소부터 다 자라 수확을 앞둔 것까지 성장 단계도 다양하다.
넓고 복잡한 식당 한쪽에 수직으로 만든 스마트팜은 마치 벽면을 한가득 채운 거대한 그림 액자를 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밝은 엘이디 불빛을 받아 싱싱하게 자라는 초록색 채소를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여기서 나온 채소로 건강하고 먹음직한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완성된다.
‘파르마레’ 이용객이 메뉴를 주문하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파르마레를 방문해 식사를 한 양시우(8)양은 “채소 기르는 곳이 밝아 보여서 눈길이 갔다”며 “흙 없이 채소가 자라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양양의 아버지 양일혁(43)씨는 “식당 안에서 농약 없이 식물을 바로 키워 먹는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게 좋아 보인다”며 “환경오염과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는 요즘 이런 시설이 늘어나는 게 반갑다”고 말했다.
파르마레에서 한달 동안 수확하는 채소의 양은 평균 200㎏이다. 한 해 2t 이상 수확하는 것이다. 40일 정도면 결실을 맺는 짧은 수확 주기 덕이다. 파르마레와 이케아 식당(이케아 푸드)이 요리에 사용하는 카이피라의 30%가 파르마레의 스마트팜에서 공급된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스마트팜을 설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제주의 ‘정가네 밥상’은 스마트팜을 설치해 운영하는 한정식 식당이다. 쌈채소 등 상차림에 채소를 많이 내는데, 식당 안에서 자란 채소를 이용하는 최고의 이점은 신선함에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 샤부샤부 전문점 ‘꽃마름’의 스마트팜. 늘푸른채 누리집 갈무리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샤부샤부 전문점 ‘꽃마름’도 스마트팜 식당이다. 샤부샤부는 특히 채소가 많이 필요한 음식이다. 꽃마름은 손님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스마트팜을 설치했다고 한다. 식재료로 쓰이는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며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방문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도역 지하에는 샐러드 카페 ‘메트로팜’이 있다. 메트로팜에선 샐러드와 샌드위치, 직접 갈아 만든 음료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채소를 이용한 메뉴다. 자동판매기에서 채소를 살 수도 있다. 과거 이곳은 지하철 역사 내 유휴 공간이었다. 서울교통공사의 아이디어로 스마트팜 카페가 문을 열 수 있었다. 상도역 메트로팜 성공 사례를 거울삼아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역사 내부 스마트팜 설치를 늘려가고 있다. 을지로3가역에 최근 스마트팜 카페가 들어섰고, 답십리역·천왕역·충정로역·남부터미널역에선 스마트팜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스마트팜을 설치하는 곳이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씨제이(CJ)프레시웨이’는 서울 본사 라운지 공간에 스마트팜을 설치해 이곳에서 자란 채소를 식재료로 쓰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농기계 업체 ‘대동’의 구내식당에도 스마트팜이 들어섰다. 신선한 채소를 안정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게 팜 식당의 최대 장점이다.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채소로 만든 씨제이프레시웨이 구내식당 샐러드. 씨제이프레시웨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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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팜 시설을 갖춘 식당은 채소 이용량이 많은 곳이다. 채소는 주변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식재료인데도 스마트팜을 갖추고 직접 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마트팜은 도시에서도 손쉽게 실내 재배 방식으로 채소를 키울 수 있다. 교외에 있는 식당에서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상에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그런 방식의 신선한 채소 공급은 불가능하다. 도시 식당에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스마트팜인 셈이다. 흙에서 키우지 않기 때문에 씻기도 쉽다.
환경을 위해 탄소를 절감하려 노력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식당들이 설비를 갖추는 한 요인이다. 농약을 쓰지 않고 배송 과정이 없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채소 재배에 필요한 물도 밭에서 기를 때보다 10분의 1 정도 든다. 파르마레에 스마트팜 설치를 담당한 ‘팜에이트’의 홍보 담당자는
“물을 한번 쓰고 버리지 않고 순환해서 재사용하기 때문에, 동일 면적의 밭에서 작물을 재배할 때보다 물을 90%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 밭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경우 실제 작물이 흡수하는 물은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팜은 ‘21세기 진화한 온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온실 속의 화초’는 병약한 생물의 대명사였다. 스마트팜에서 키운 채소는 어떨까? 우선 엘이디를 쬐며 자란 잎채소는 햇빛을 받으며 재배된 것보다 과육이 부드럽다. 채소 심지의 질긴 식감도 덜하다. 밭에서 자란 채소는 개체마다 크기와 잎의 개수 등이 변동 폭이 크지만, 스마트팜에서 자라는 채소는 동일한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개체의 크기도 비슷하게 유지된다.
스마트팜이 설치된 서울 마포구 씨제이프레시웨이 라운지. 씨제이프레시웨이 제공
영양 성분도 채소가 쬐는 빛의 종류에 따라 성분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 밭에서 자라는 채소는 햇빛에서 나오는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까지 다양한 파장의 빛을 쬔다. 반면 스마트팜에서 햇빛 구실을 하는 엘이디는 식물별로 가장 적합한 파장대의 가시광선만 집중해서 비춘다. 햇빛을 쬘 때보다 노출되는 파장대가 좁은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상추를 기를 때 붉은빛을 비추면, 파란빛 또는 초록빛을 비출 때보다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안토시아닌은 식물 세포 속에 생기는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제 작용을 한다. 또 자외선을 쬔 상추는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비타민시와 토코페롤 함량이 높다.
스마트팜에서는 빛에 따라 식물의 영양 성분이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시설원예연구소의 최경희 박사는 “스마트팜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빛을 집중적으로 쬐어주는 시설로 작물의 광합성 즉 생산에 특화돼 있는 시설이라고 볼 수 있다”며 “스마트팜으로 성분의 비율은 조절할 수 있지만, 없던 성분을 생기게 하거나 특정 성분을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팜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 매력적인 대안 농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식당에 설치되어 식재료를 제공하기 시작한 스마트팜이 도시 농업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지 기대된다.
목정민 객원기자 겸 과학 콘텐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