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욱 셰프가 만든 훈연 이베리코 요리와 산토리 위스키. 산토리는 위스키 생산 100돌을 맞아 한정판 ‘야마자키 12년’과 ‘히비키 21년’도 출시했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최백호 노래 ‘낭만에 대하여’의 한 구절이다. 노래가 등장한 때는 1994년. 1970년대 단종된 위스키를 가사에 넣어 그 시절 낭만을 추억하는 노래다.
‘도라지 위스키’는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의 제품 ‘도리스 위스키’의 이름을 도용한 술이다. 원액을 배합하지 않고 위스키 향과 맛을 내는 색소와 향료, 주정만을 섞은 술이다. 1960년대 도라지 위스키의 인기는 대단했다. 오죽하면 유사 제품 ‘백양 위스키’ ‘쌍마 위스키’ ‘오스카 위스키’ 등이 출시됐을까. 하지만 197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원액이 수입되면서 이들 ‘낭만’ 가득한 ‘가짜 위스키’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도라지 위스키의 도용 대상인 도리스 위스키를 제조한 산토리가 올해 위스키 생산 100돌을 맞았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아시아 위스키’의 선두주자가 산토리다. 국내에서도 산토리가 생산하는 야마자키, 히비키 등은 ‘일단 사두는 게 이득’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다. 산토리는 창업주 도리이 신지로(1879~1962)가 스코틀랜드 유학을 다녀온 양조자 다케쓰루 마사타카(1894~1979)를 영입해 일본 최초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 증류소’를 세운 1923년을 위스키 생산의 원년으로 삼았다. 산토리는 100돌 기념행사로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 이목 스모크 다이닝의 유용욱 셰프, 에스엔에스에서 ‘다니엘 오마카세’로 유명한 다니엘(필명) 등과 위스키 페어링을 지난 7일부터 6일간 서울 강남구 ‘킨포크 도산’에서 진행했다.
음식과 페어링하는 주류는 주로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는 그저 취하도록 마시는, 때로 정치인의 협잡에 동원된 ‘비싼 술’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홈술’ 문화와 젊은층 사이에서 색다른 것을 즐기고자 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위스키는 ‘오픈런’의 대상이 되는 등 인기 상품이 됐다. 음식 문화는 시대에 따라 진화하기 마련. 위스키와 페어링도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임정식 셰프는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자칫 음식 맛을 죽일 수 있어 고민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쳐 답을 찾았다. “풀 보디(full body, 입안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위스키에는 치즈 등 눅진한 음식, 스모키향 가득한 위스키에는 훈제 옥돔 요리를 골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페어링은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는데, (정식당표) 김밥 등과 매칭해 우리 감성을 녹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유용욱 셰프는 ‘수비드(저온 숙성 조리)한 후 3시간 참나무 연기를 입힌 소갈비’ ‘스페인 이베리코(야생 도토리 등을 먹고 자란 흑돼지) 목살·삼겹살·항정살을 소금에 5일간 절인 후 8시간 훈연한 육류 요리’ 등을 마련했다. 빔산토리코리아 박진우 브랜드 앰배서더는 “일본 위스키 하면 일식하고만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육류와 의외로 궁합이 좋다”며 음식을 먼저 먹고 마시기를 권한다. ‘스트레이트 양주’는 음식을 먼저 먹은 뒤에 마시는 게 좋다는 얘기다. 반면 ‘미즈와리’(술에 물을 타서 희석한 것)는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마셔 “입안을 코팅하면” 좋다고 한다. 하이볼이 대표적인 미즈와리다.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는 칵테일로, 지난 수년간 산토리 제품 가쿠빈을 재료로 한 하이볼이 큰 인기를 얻었다. 박진우 앰배서더는 “산토리가 찾아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와 물 배율 레시피는 1 대 4”라고 한다.
영국 위스키 전문가 에디 러들로는 ‘위스키 테이스팅 코스’를 통해 “살라미나 절인 돼지고기는 달콤한 싱글 몰트 위스키와, 향신료 강한 고기는 달콤한 버번과 마시면 좋다”고 조언한다. 또 “파스타나 생선처럼 가벼운 요리는 ‘가벼운 위스키’와, 붉은 고기가 재료인 무거운 요리에는 알코올 함량이 높고 풀보디감 싱글 몰트와 어울린다”고 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