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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술과 맛있는 안주가 있는 곳 [ESC]

등록 2023-12-09 09:00수정 2023-12-09 21:09

이윤화의 길라잡이 맛집 막걸리 주점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막샵의 막걸리와 안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막샵의 막걸리와 안주.

요즘 어떤 막걸리를 마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마치 대형백화점 지하에서 디저트를 고르는 것처럼 선택지가 다채롭다. 종류도 종류지만 막걸리에 대한 인식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10여년 전에 강원도 고성의 양조장을 방문했을 때 무려 반세기 동안 막걸리를 만들어온 어르신 말씀이 인상 깊었다. 당신이 오랜 세월 만들어온 막걸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당시 국가 곡류 공급량을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식량으로써의 곡류가 우선이었기에 금주령이 내려졌고 일제강점기에는 곡물의 공출과 가양주 제조 제한으로 술을 제대로 만들 수가 없어 이 시기에 우리 술의 명맥도 다수 끊어지게 됐다. 해방 이후로도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식량난과 맞물려 1960년대에는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도록 강요받았고 한때는 고구마 막걸리가 권해졌다. 나라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 업으로 술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막걸리는 만들고 싶은 재료로 만드는 술이 아니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쌀의 여유가 생겨 쌀막걸리가 허용됐지만 보통 팽화미(고온·고압 상태에서 팽창시킨 쌀)와 같은 가공미나 공공비축미가 주를 이뤘다. 양조장 어르신의 일생을 보듯, 막걸리란 시대의 잉여 곡물로 만드는 술이었다.

서울 서초구 요리주점 담은의 세가지 젓갈과 두부.
서울 서초구 요리주점 담은의 세가지 젓갈과 두부.

그러던 막걸리가 약 15년 전부터 붐이 일기 시작했다. 좋은 쌀과 개성 있는 누룩, 고문헌의 술 재현 등 현대식 재료와 기술로 우수한 술을 만들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술과 제조법의 명맥을 이어가며 사라진 전통을 복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막걸리 교육 기관에 수강자가 몰려 등록대기 현상이 생기고 각종 우리 술 경연대회로 막걸리 마케팅의 열기도 달아올랐다. 특히 걸쭉한 이화주, 탄산 듬뿍 막걸리, 고급화된 패키지 등으로 막걸리의 지평이 넓어지고 종류만큼이나 가격대도 천차만별이 됐다. 더 이상 주머니 가벼운 술꾼의 요기나 나이 지긋한 중년 아저씨의 전유물이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술로 그 입지가 달라진 것.

전남 여수 풍년마차의 연포탕과 차돌박이.
전남 여수 풍년마차의 연포탕과 차돌박이.

막걸리의 종류만큼 주점의 양상도 변했다. 100여종 이상의 전통주를 구비한 대형 주점, 모던한 분위기와 다양한 콘셉트로 시선을 끄는 전통 술집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주점은 다른 식당보다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매우 중요한 곳이다. 1년에 한 번 가든 매일 가든 흥겨운 분위기에 금세 동화되는 주점. 흔히 그런 곳은 화려하거나 톡톡 튀는 세련미가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세련된 감각을 은근슬쩍 구수한 막걸리 분위기 속에 감추며 고객이 분위기에 동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고수의 ‘맛 주점’이다. 오늘은 언제 가도 막걸리가 당기는 맛 주점 세 곳을 추천해 본다.

막샵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막샵은 황톳빛 창문 넘어 안쪽의 주당들이 손짓하여 부르는 듯하다. 고기와 두부가 들어간 촉촉한 ‘깻잎전’, ‘빨간 수제비’ 등 모든 요리를 손수 하는 아내와 고객을 흥겹게 대하는 남편이 콤비를 이룬다. ‘가성비’ 좋은 막걸리와 안주 구성에 흡족한 20~30대 술사랑꾼들이 모여 문전성시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길 17/02-888-6201/모듬전 2만원, 꿀막걸리 8천원

요리주점 담은

신세대 요리주점의 선배 격인 곳. 입문반·중급반·고급반으로 정리된 다양한 막걸리를 베테랑 직원들이 고객에게 그날의 분위기까지 맞춰 추천해준다. 울외장아찌 기본 찬부터 ‘돈담은 육전’, ‘보리새우미나리전’ 등 작은 차이가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안주도 다양하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189 반포쇼핑타운 4동 지하/0507-1445-7502/돈담은 육전 1만9천원, 세 가지 젓갈과 두부데침 1만9천원

풍년마차

여수 토박이가 자신하며 추천하는 주점. 기본 세팅 안주가 파전, 오징어 데침, 생선구이와 조림, 게장, 달걀찜 등 아홉 가지에 이른다. ‘연포탕&차돌박이’에는 산낙지와 활전복이 풍성하다. 주점 안 손님들은 대부분 주인장과 막역한 단골인 듯하며 흥겨운 표정이 만취 일보 직전이다.

전남 여수시 관문서7길 8-2/061-663-2468/연포탕&차돌박이 4만5천원, 가오리찜 2만원

글·사진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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