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첫 직장, 첫 부서에는 나 같은 신입동기가 넷 있었다. 기사 하나 완성하는데도 수십년씩 걸리는 초보들이라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밤일을 할 때면 부서 외상 장부를 달아놓고 저녁을 먹는 식당이 있었다. 백반이나 찌개와 함께 삼겹살을 파는 집이었다.
선배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갈때는 찌개가 주로였지만 우리끼리 갈 때는 늘 삼겹살을 시켰다. 대학 때 삼겹살이란 누군가 아르바이트 첫월급을 탔을 때나 한두점 얻어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던 터라 원없이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건 월급보다도 뿌듯한 ‘직장인의 긍지’였다. 약간 부풀리자면 한 달의 반은 삼겹살을 먹은 거 같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나니 까칠하던 네 사람의 얼굴은 문자 그대로 ‘개기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문 모르는 선배까지 “얼굴에 웬 기름이 그렇게 많이 껴?”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래도 그 개기름이 부의 상징인 양, 어려운 취업 관문을 통과한 것에 대한 훈장인 양 개의치 않고 열심히 먹어댔다.
요새는 ‘웰빙 바람’에, 깔끔한 부서원들 취향까지 겹쳐 한 달에 한 번 삼겹살 구경하기도 어렵다. 그때 그 친구들의 얼굴에도 이제는 개기름이 빠졌겠지? 정말로 오랜만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요즘, 문득 삼겹살이 먹고 싶어진다.(부서원들, 이번 마감 끝나고 어떻게 한번 안 되겠니?)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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