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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진실을 묻다

등록 2007-06-13 17:48수정 2007-06-13 19:10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이보다 더 재밌는 휴가는 없었다’ 우수작

“들었어? 하이재킹이래!” 자고 있던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비행기는 벌써 30분째 케이프타운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도 여행 안내인처럼 수다를 떨던 기장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공항 활주로가 봉쇄됐고 그렇게 공중을 선회한 지 1시간 반, 이윽고 “곧 착륙합니다”라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테이블마운틴에서 케이블카를 타는데 1시간도 넘게 헤매고 케이프 포인트 등대의 한국어 낙서를 보고 반가워했다. 케이프타운 여러 곳을 구경한 뒤 사파리 투어를 하러 크루거 국립공원으로 갔다. 차를 운전하며 동물들을 설명하는 레인저(총을 지닌 가이드)는 영어로만 이야기했다. 남편은 레인저가 뭔가 설명할 때마다 “음~!”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나중에 조용히 “뭐래?”라고 물어오곤 했다. 몇 가지 단어를 주워듣고 조합해서 이해하는 척 설명하다가 나 역시 혼란에 빠졌다. 사자(lion)를 선(line)으로, 수컷(male)을 마일(mile)로 잘못 들으면서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했다. 레인저는 예전에 어떤 부부가 사자를 보고 돌아와 겁을 먹고 다음날 게임 드라이브를 안 나가고 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떨었다고 했는데, 나는 “어떤 부부가 선을 넘어갔다더라, 리조트 철조망을 넘어서 위험했나봐”로 설명했고, 레인저가 지금 수컷 한 마리를 찾아 1시간째 헤매고 있다고 말할 때 나는 “우리가 1시간 동안 1마일을 헤매고 있다”고 설명했다. 뒤늦게야 내 실수를 깨달았지만 진실은 묻어뒀다. 고개만 끄덕이던 남편이 계속 고마워할 수 있도록.

임소정 / 서울 강서구 화곡3동 초록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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