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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공존을 위하여

등록 2007-07-04 22:22수정 2007-07-04 22:31

썰물이 되면 경안동굴로 가는 길이 열린다.
썰물이 되면 경안동굴로 가는 길이 열린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우도 관광이 체류형으로 바뀌길 바라는 주민들, 각종 체험 이벤트 기획 중

성남훈의 사진은 아프면서도 아름답다. 인도네시아 민주화 투쟁 당시 총구 앞에 가로막힌 시위대 사이로 불쑥 얼굴을 내민 소녀, 코소보 난민촌 언덕을 뛰어가는 두 소년을 찍은 사진을 보면, 이토록 비인간적인 현실이 왜 이리 아름다운지 잠깐 혼란을 느낀다.

사진작가 이상엽은 다큐 사진작가 모임인 ‘이미지프레스’의 무크집 <사람들 사이로>에서 성남훈의 ‘아트 다큐멘터리 성향’을 경계한다. 다큐 사진은 근본적으로 사회의 비합리와 모순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성을 띠고 갤러리에 걸릴 때, 사진가가 목격한 현실의 참혹성은 증발하고 미학만 남는다.

해녀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다.
해녀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다.

당신도 해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상엽은 성남훈의 작품에서 ‘소격 효과’를 발견한다. “사진을 보고 즉각적인 감동이나 분노를 유발하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사진에 담긴 이야기들을 분석하고 비평하게 하는 힘”이 그의 작품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작가 브루스 데이비드슨을 인용한다. “내 사진은 설교를 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예술인 척하지도 않는다”. 이 말을 우도로 바꿔 보자. “우도는 리얼리티의 세계도 아니지만 판타지의 세계도 아니다”.

우도는 일상과 탈일상이 공존하는 곳이다. 주민들의 고단한 일상과 여행자들의 들뜬 탈일상이 (누구의 눈에는) 섞여 있고 (누구의 눈에는) 평행선을 긋는다.

늦은 오후 해안도로에 나가면, 천초(우뭇가사리)를 등에 지고 걸어가는 해녀들을 볼 수 있다. 힘에 겨운 할망(할머니) 해녀들은 천초 더미를 유모차에 싣고 간신히 걸어 나간다. 그 옆으로 빨간 비틀을 탄 젊은 남녀가 ‘붕’ 하고 지나간다. 어떤 젊은이들은 자전거를 타다 말고 천초를 말리는 할망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예나 지금이나 물질이 주 수입원인 김양순(50)씨가 말했다. “예전보다 사람들이 섬에 많이 들어오지만, 우리 살림살이엔 크게 보탬이 안 돼요.”

쇠머리오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있는 관광객들.
쇠머리오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있는 관광객들.
지난해 우도 인구 1700명의 294배인 50만 명이 우도를 다녀갔다. 한해 제주 관광객 500만명의 10분의 1이다. 이 정도면 제주 관광 필수 코스다. 하지만 주민들의 빈한한 삶엔 변화가 없다. 20여개의 펜션 가운데 절반은 외지인이 세운 것이고, 주민들의 전통적인 여름철 수입원이었던 민박집은 이 앞에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 렌터카나 스쿠터를 타고 두세 시간 만에 떠나 버리는 여행자들은 우도에서 돈을 쓰지 않아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윤복일 우도면 주민자치위원장은 “주민들은 우도 관광이 체류형으로 전환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우도면은 올해 여름부터 해녀 체험과 원담 고기잡이 체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도의 민속적 일상을 여행자들과 나눠 보겠다는 것이다.

우도 관광이 체류형으로 바뀌길 바라는 주민들, 각종 체험 이벤트 기획 중
우도 관광이 체류형으로 바뀌길 바라는 주민들, 각종 체험 이벤트 기획 중
해녀 체험은 할망 해녀의 도움을 받아 잠수복을 입고 얕은 바다에 들어가 소라나 해초를 캐는 것. 원담 고기잡이는 자연석으로 댐을 쌓고, 밀물 때 들어왔다가 갇힌 감성돔, 벵에돔 등을 잡는 전통 어로 체험이다.

우도의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섞일 때는 여행자들이 우도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응시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우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람과 어우러질 때, 물질하던 할망 해녀의 참았던 숨소리가 들리고 돌담 밑에서 땅콩을 캐는 아낙이 눈에 들어오는 바로 그때다.

우도=사진 박미향·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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