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쫓던 노마드의 흔적
[매거진 Esc] 여행에서 건진 보물
민속학자 주강현의 샤먼의 북
민속학자 주강현의 샤먼의 북
1993년 러시아 야쿠츠크 자치공화국의 야쿠츠크시에 갔어요.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는 외국인이 더욱 들어가기 힘든 지역이었지요. 거기서 난 시베리아 샤먼(무당)을 처음 만났어요. 스탈린 시절 봉건제의 유산으로 치부돼 청산됐던 얼마 남지 않은 북극권 에벤크족의 무당이었지요.
그때 그가 우리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손에는 거대한 북이 들려 있었지요. 한 시간 가까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더니, 어느 순간 하늘을 향해 올라가려고 했어요. ‘둥둥’ 하는 북소리가 분위기를 절정으로 몰아갔지요.
‘샤먼의 북’이라고 합니다. 신을 내리는 악기지요. 2003년 여름, 러시아 이르쿠츠크 향토박물관에서 샤먼의 북을 사왔답니다. 한국 돈 2만~3만원 밖에 되지 않는 모조품이지만, 나에게는 시베리아 민속에 천착한 계기를 준 상징물입니다. 그때 가져온 북을 집에 걸어두고 있어요.
북의 문양을 보세요. 순록 가죽으로 만든 건데, 그 위에 순록이 그려져 있습니다. 순록을 재료로 삼았다는 건 수렵 사회의 흔적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랍니다. 옛 사람의 영혼을 울렸을 북소리. 가장 원시적인 악기이고, 가장 원초적인 악기지요. 나는 여기서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떠올려요. 반구대 암각화에도 여러 마리의 사슴이 나타나거든요. 한국 문화의 근저에도 수렵 문화가 존재한다는 증거죠. 동물을 찾아 헤매던 노마드의 일상 말입니다. 왜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개마고원에는 포수가 많았잖아요?
언젠가 독일인 민속학자들과 시베리아의 한 사슴 농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독일인들은 집 안에 걸어두려고 사슴뿔을 사 가는데, 한국인들은 보약으로 달이려고 잘게 썰어 달라고 하더군요. 슬쩍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 한국인들, 노마드의 원형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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